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044 - 역사 기록 보존과 문서관, 1995

향토학인 2016. 6. 2. 02:49

인지의 즐거움044

  (19950601)

 

역사 기록 보존과 문서관

 

김희태

 

현재의 기록물도 중요하다

 

지난해 11월 23일, 한국역사연구회 주관으로 역사학계와 정부기록보존소 등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나라의 역사 기록 보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과거의 역사 기록이 중요한 만큼 현재의 기록물 역시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 결과였다. 지방에서의 정리 사례와 보존에 관한 내용을 제시해 달라는 학회 측의 연락을 받고 토론자로 참여하였지만, 분에 넘치는 자리였다. 그 때 논의되고 강조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우선 발표 주제와 내용을 보자

1부는 세계 각국의 역사 기록 보존 실태를 주제로 하여 미국의 문서관제도(배용수, 서울대), 프랑스 고문서 보관소 제도(주경철, 서울대), 독일의 문서 보존 체제(김유경, 서울대), 러시아의 기록 보존 업무(조호연, 한국 외국어대), 일본의 기록 보존과 문서관법(김광옥, 배제대), 중국 당안(檔案)제도와 당안관(이승휘, 세종대), 한국의 역사 기록 보존 실태와 전망(김재순,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등이 발표되었다.

 

2부는 토론인데, 한국의 역사 기록 보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만길(고려대), 이만열(숙명여대), 김인걸(서울대), 김희태(전남도청), 박찬승(목포대, 사회)이 참여 하였다.

 

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발표 내용중 몇가지를 간추려 보자.

미국은 1934년 국립문서관법을 제정하여 그 이듬해 조직과 기구를 만들었다. 1985년에는 국립문서기록청이라는 독립기관이 있으며 그 산하에 12개의 지역문서관이 있다. 지방정부의 문서는 각 주나 도시에서 따로 설치한 문서관이나 도서관에서 관리한다. 국립문서관은 보존은 물론 그것을 공개하여 널리 활용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자료를 복사하거나 재생해서 지역문서관이나 주요 연구기관이나 대학(정부간행물자료실)에 배치하며 대통령도서관도 관할한다. 연방정부의 각 기관은 대개 문서가 생산된지 30년이 지나면 기록보존소에 이전하며, 국립문서관은 이를 검토하여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만 수집하는데 그 분량은 전체의 2-3%정도이다.1966년에는 공공정보법을 제정하여 외교정책상의 이익이나 개인 또는 기업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자료에 대한 공개를 제한하였다. 국립문서관은 소수의 역사학자들만이 아니라 각 분야 연구자와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자료목록이나 참고서적, 신문(연방일보) 등을 발행한다. 대학에서도 민간단체나 개인으로부터 수집한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고문서학사 자격을 주는 프랑스 고문서학교

 

프랑스에서는 중세부터 국왕이 왕실문서보관소를 설치하여 문서들을 수장하였고, 프랑스혁명기에 국립고문서보관소가 설치된다. 1796년에는 각 도의 중심도시에 도립고문서보관소를 세웠다. 현재는 문화공보부 산하에 프랑스고문서국이라는 중앙정부기관이 중앙집중적으로 관리하고 그 밑에 국립문서보관소, 도립문서보관소, 시립문서보관소가 운영되고 있다. 도립문서보관소는 도청이나 중앙기구의 도 소재기관 및 기타 지방기구들의 공문서를 보관하는데 각 도의 중심지 100곳에 설치되어 있고 3곳의 별관이 있다. 시립고문서보관소는 각 시청과 단위 기구들의 공문서들을 보관하는데 원칙적으로 각 시마다 한곳씩 존재하는데 고무서국을 둔 곳만도 120곳 정도이다. 문화통신부 전체예산의 3%가량이 고문서보관소에 할당되는데 1980년의 경우 우리돈으로 126억원에 이르렀다. 지방에서는 각 도 문화예산의 20%정도가 고문소보관소 운영비용으로 들어간다. 보존된 문서량은 국립의 경우 약 2만톤,도립은 6만톤에 이르는데 무료로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비공개원칙도 정해져 있고, 보통 30년간 문서의 비밀을 보장하지만 사생활이나 경찰, 세금관련 기록은 60년, 개인의 의료관련기록은 150년 등 제한을 두고 있다. 청소년 역사교육 프로그램, 전시회 등 대중화를 위한 활동도 전개한다. 전문인력인 고문서담당관은 1821년에 세워진 고문서학교에서 양성되는데, 古文書學士 자격을 준다. 입학과 함께 준공무원의 지위가 주어지고 월급도 받는데 졸업 이후 공직 취업이 의무화되어 있다.

 

독일의 문서 보존체계는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연방문서 보존소나 주정부가 운영하는 주문서보존소는 모두 국립문서보존소로 분류된다. 2차대전 후인 1952년 연방문서 보존소가 설립되었는데 연방정부와 소속기관에서 생산되는 문서는 물론 구독일제국의 행정 사업 군사 관련문서까지 수집정리, 학문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예산은 1984년 기준으로 155억 6천만원, 직원수는 1980년 기준으로 378명이다. 이 가운데 전문종사원은 283명, 문서보존요원은 70명이다. 지방에도 주 문서보존소가 설립되어 있다. 각 지방에 산재한 대학에는 지방사연구소를 설립해서 史籍해제, 고문서해독법, 고문서학 등 훈련과 강좌가 지방소재 문서보존소와 협조하에 이루어 지고 있다. 전문요원의 양성은 2곳의 문서보존요원양성학교에서 이루어진다. 1950년도에 3학기 18개월 과정이었는데 1981년에 전문대학급으로 강화되어 3년과정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 설치된 일본의 문서관

 

일본에서는 패전직후부터 문서관 설립이 활발해 졌는데, 1948년 전국의 사료조사를 하여 보관기관으로 국립사료관이 1951년 설치되었으니 뒤에 국문학연구자료관의 시료관으로 추고되었다. 1963년에는 국립공문서관을 설치키로 하여 1971년에 개관했으나 법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아 각 부처의 문서를 이관받지 못하였다. 1987년에는 문서관법이 제정되는데 그 이전에 많은 문서관이 설립되었다. 1976년에는 문서관 담당자들이 역사자료이용기관연락협의회(약칭 ‘史料協’를 설치했는데 이단체가 기록보존운동이나 문서관법 제정과정에서 중심적인 일을 해 나갔다. 1987년 12월 의원입법의 형태로 성립된 공문서관법은 본문 7개조항과 부칙으로 된 간단한 내용으로 원칙을 강조한 법률이었다. 그러나 각 부서 문서의 이관이나 전문가 양성이나 자격여부에 대한 규정이 명확ㅎ지 않고 기업이나 민간소유의 사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문서전문가의 양성은 국립사료관에서 연수과정(8주, 2주)을 설치해 운영하는데 1994년부터는 장기과정 이수과목은 대학원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립문서관에서도 교육을 실시하며, 1992년부터 기업사료협의회에서도 3개월과정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일부대학에도 ‘문서과정’, ‘문서관학’, ‘사료관리학’ 등이 개설되어 있다. 지방에서의 문서관은 1960년대부터 설치되었는데 우리의 도단위인 都道府縣 46개소 중 절반가량이 설치되었고, 市町村에도 많이 설립되고 있다. 최초로 설치된 곳은 1959년 山口縣문서관이다.

 

중국에서는 당안법(1987)에 의해 문서를 보존하는데 당안이란 ‘과거와 현재의 국가기구, 사회조직 및 개인이 정치 문화등 각종 활동에 종사하며 형성한 보존가치가 있는 역사기록’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역사당안’과 ‘현행당안’으로 구분한다. 건국직후 정무원 비서청 하에 당안과를 두었고, 1954년 11월 국무원 직속으로 국가당안국을 설립한다. 1990년 기준으로 당안사업관리기구는 중앙국기기관이 92개소, 성급이 30개소, 지구급이 370개소, 현급이 2,496개소등 3천여개소에 이른다. 당안을 수집 보관 정리 공개 편찬사업을 행하는 실무기관인 당안관은 1990년 기준으로 중앙국가기관이 21개소, 성급 148개소 등 3,297개소에 이른다. 당안전문인력은 1952년 11월 중국인민대학 전수과 당안반이 개설되면서 양성되는데, 전국의 당안 전문직원은 46,440명에 이른다.

 

기록보존학을 정립하자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가 설립된 이후 역사기록보존의 중요성이 인식됐다. 입법 사법부와 행정 각부가 독자적인 법률로서 기록보존을 하고 있으며 1987년에는 ‘사료의수집및보존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다. 지방자치기관으로는 서울툭별시가 경북 청도에 문서고를 갖고 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기록물 현황은 3백 8십 2만여건으로 일반문서류는 30만 6천여권이며 이 가운데 정부수립후 수집된 것이 30만 9천여건이다. 앞으로 기록보존법의 제정과 기구를 설립해야 하고, 전문인력의 양성, 그리고 관련학계의 참여와 기록보존학의 정립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토론에서는 국립기록청을 설립하고 사료가 되는 것만을 보존하며, 광복이전의 문서는 한군데로 모으고, 광복 이후문서는 중앙정부 지방, 입법부, 사법부가 각각 보존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공인들의 문서를 보존해야 하고 국사편찬위원회나 정신문화연구원, 그리고 정부기록보존소의 상호관게 설정, 일원화된 법체계와, 보존요원의 양성도 제기되었다.

 

지방에서의 문서보존관리 실태에 대해서도 논의되었다. 전남도청 문화체육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1천여책의 문서 생산되었는데, 도청안에 40여개의 과가 있으니 문서생산량은 매우 많음을 알 수 있다. 1천여책 가운데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된 것은 15권, 마이크로 필름 촬영이 완료된 것은 59권에 불과하다.

 

ㄴ보존관리되어 활용되고 있어야 할 문서들이 폐기처리된 문서에 대한 전체내용을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한 일이다. 그런데 현장조사에서 의외의 자료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장평면의회 회의록』(전남 장흥군)은 1952년부터 1961년까지 79회의 회의록인데, 장흥문화원에서 장평면지를 간행하기 위해 조사한던 중 기관장의 서가 한켠에서 발견된 바 있다.『전라남도의회 본회의 회의록』은 1952년 5월 20일 개원 이후 본회의 회의록을 수집하여 재판간행을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40여권을 간행했으나 2회부터 12회까지의 회의록은 아직 수집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존문서로서 회의록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당시 의원 또는 의회에 관계했던 인물들을 통해 수집 또는 대여 받아 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관심’을 넘어 ‘법제화’를 추진할 때

 

인력 양성차원에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서학’이나 ‘기록보존학’ 등의 해당학과 설치도 고려되어야 하고, 관련학과(사학과, 문헌정보학과 등)에 설강되어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들 과목은 일반적인 문서학과 기록보존 등에 대해서도 다뤄야 하겠지만 해당 지방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기관단체와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과 ‘현실’이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관에서 문서와 기록보존에 관한 내용을 배운 학생이 해당기관이나 본인과 연고가 있는 지역 기관에 아르바이트를 통해 실습을 하고 추후에 그 기관에 근무할 수 있게 되도록 해야 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전문인력을 전문직으로 임용하는 법적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하지만 실제 문서를 다루고 생산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식견이 중요하다. 자기가 취급 또는 생산하는 하는 문서가 뒷날 중요한 역사기록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없이 단기간 보존후 폐기하는 일반문서로 분류되어 버린다면 훈련된 전문인력의 손을 거치기도 전에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공무원이나 관련된 기관단체의 신규직원 채용시부터 자기 지역과 문서기록보존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규채용시의 시험과목에 ‘문서기록보존학’, ‘지방문화론’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단위도 중요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중 광역자치단체(도, 광역시)는 물론 시군 단위의 문서까지도 보존되어야 한다. 그 이하의 작은 기관들, 면사무소, 지서(파출소), 초등학교, 여러 형태의 조합 등의 기록자료 역시 중요하다.

 

관련 법규의 제정 관련하여서는, 기본법의 제정, 법조문의 체계화, 활용 및 공개연한, 사문서 보존, 사유권 등의 손해배상, 사진. 영상자료 처리, 분야별 전문인력 양성, 전문인력 채용의 의무화, 강제규정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법의 제정과 함께 문서기록보존을 담당할 국가(국가기록청) 및 지방기구(공문서관) 설립되어 야 한다. 아울러 활용의 측면에서는 사료의 해독과 번역을 담당하는 국가기구, 예컨데 국립번역청도 함께 설립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현재의 역사기록물에 대한 정리와 보존, 그리고 활용에 관해서는 관련된 기관이나 개별연구자의 ‘관심’ 정도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심포지움을 계기로 이같은 ‘관심’이 ‘법제화’될수 있도록 더더욱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김희태(운영위원, 한국사), 역사 기록 보존과 문서관-<학술대회 참관기>-, <서남문화연구소회보> 창간호, 199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