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37 - 지나온 70년의 찬란함, 담양 문화원 70년사

향토학인 2024. 1. 31. 01:45

인지의 즐거움337

 

지나온 70년의 찬란함, 담양 문화원 70년사를 읽고서

 

김희태

 

담양문화원은 1950년에 처음 설립되었다. 지방 문화원들의 처음 건립한 시기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담양은 195041일 정확한 설립 내력이 있다. 그리고 개원 이후 1954년의 사진이 70년사에 올라있다. 담양문화원은 물론 담양의 중요한 역사 현장이자 기록유산이다. 이같은 기록과 자료를 찾기 위한 담양문화원의 노력은 지난 70년간 계속되어 왔고, 그것이 오롯하게 담양문화원 70년사에 담겼다.

 

우리나라 지방문화원은 1950년대에 설립의 단초가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온다. 지방문화원은 지역의 문화활동을 위하여 자생적으로 생성되어 활동하기 시작한 비영리조직이다.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하여 자생적으로 출범한 초기에는 정부로부터 지원은 거의 없었고 봉사 차원에서 지역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한켠에는 미국공보원 산하에서 활동한 공보관들이 일정 역할을 한다.

 

1960년대 들어서 지방문화사업조성법(1965) 제정되면서 지방문화원의 설립과 정부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1990년대 지방문화원진흥법 제정(1994)되고 각 지자체별로 지방문화원 지원 조례 등이 만들어지면서 활발한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졌다. 현재, 전국에 지방문화원은 231개가 설립 운영되고 있으며, 각 시도연합회도 16개 광역자치단체별로 구성 운영되고 있고 세종문화원도 설립되어 광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별로 문화원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담양문화원은 19504l일 설립하여 6월부터 초대원장(박종호님)의 임기가 시작된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광복이 되고 난 뒤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때이기도 한데, "문화"를 매개로 지역에서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무렵 5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기도 한다. 담양에서는 담양군 농민회와 담양군 기자단이 창립된다. 대한한약협회 담양군지부도 활동을 한다. 담양문화원이 설립되던 해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어려움이 있겠지만, 문화원 초기의 활동상에 대한 자료를 더 찾았으면 한다.

 

설립초기 사진을 보면 유엔회관현판이 눈에 띈다. 시기는 19541125일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라 문화원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사진의 입간판 위쪽에 세가지의 단체 명칭이 보인다. “유엔한국협회”, “자유문화관”, “자유도서관이다. 유엔회관은 담양읍 천변리 전 남일여객 정류소 옆에 있었다고 한다.

 

유엔한국협회는 원래 194711월에 국제연합대한협회로 발족했다가 19498월에 국제연합 한국협회로 개명한 단체이다. 유엔의 여러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국내외 민간운동 전개, 국민에게 유엔의 이념과 국제협력의식 고취, 세계평화의 확립과 국제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도 외교부 등록 비영리사단법인으로 활동[http://www.unarok.org]하고 있다. 이같은 단체가 담양에서도 활동하였고, 그래서 건물 현판도 유엔회관이라 한 것 같다. 한국유엔협회와 함께 표기된 자유문화관이 문화원과 관련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문화관자유도서관에 대해 더 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문화원의 역사를 정리한 글에 따르면, 1946년부터 1962년까지 전국 각지에 문화관, 문화원, 공보원 등의 명칭으로 78개의 자생적인 민간문화기관들이 미국공보원의 지원을 받아 각 지역의 향토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담양의 경우, 유엔회관 입간판에서 보듯이 자유문화관이 그 시원이 아닐까 싶다. 1950년대에는 미국공보원 입장에서는 미국 문화의 전파가 목적이었을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반면에 지역 차원에서는 문화운동의 한 방편으로 지원을 이용하여 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담양문화원 70년사 발간을 추진하면서 수집한 50년대 주민계몽영화 상영을 위한 미공보원 차량지원”, “50년대 야간 상영영화를 관람 중인 주민들등의 사진이 그 생생한 현장 기록이라 할 것이다. “당시 박종호 원장은 정만선 2대 원장, 박채규 전 담양문화원 지방부장 등과 함께 영사기 기술을 배워 시골 오지를 찾아 마을 공터와 학교운동장 등에서 대한뉴스와 홍보용 프로그램을 상영하고, 홍보 책자를 나눠주며 계몽운동에 앞장섰다.”는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960년대 들어 국정의 홍보와 전파라는 목적이 더 드러나면서 자생 민간단체에서 법인격이 부여되는 정부 지원단체가 된다. 1965년 제정된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이 모법이 된다. 지방문화사업조성법에는 지방문화원의 활동은 영사활동 월 4회 이상, 전시활동 월 2회 이상, 문화활동 월 2회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영사활동은, 그 이전의 공보원 시절의 활동과 연관선상에서 규정으로 오른 것 같다.

 

1950~60년대의 담양문화원은 유엔회관을 거쳐 담양읍 천변리 현 담양중학교 앞에 자리를 잡는다. 1954122일이다. 다시 반년이 지나 195555, 담양읍 지침리 광주은행 담양지점자리로 옮긴다. 이 자리에서 15년을 활동한다.

 

1970109일에는 담양읍 객사리 전 담양주산학원, 198097일에는 담양읍 지침리 전 여성회관, 199115일에는 담양읍 지침리 112-6 군민회관, 199497일에는 담양읍 지침리 전 군수관사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지만 문화활동은 쉬지 않고 한다. 1997년에는 한국대나무박물관 안에 문화원 청사를 마련하여 199811월에 준공 개원하기에 이른다.

 

담양문화원에 대한 관련 기록을 국가기록원 누리집[https://www.archives.go.kr]에서 검색해 보았다. 기록물철 제목에 담양문화원(전남)”이 보인다. 생산기관은 공보부, 생산연도는 1965, 종료연도는 1990년이다. 기록물형태는 일반문서이고 보존기간은 준영구, 보관 문서실은 성남 나라기록관이다.

 

정리하자면 1965년 문화원 설립부터 임원 취임 승인 등 1990년까지 관련 법에 규정된 문화원 운영의 제반사항에 대한 문서철로 보인다. 모두 495쪽이고 13건의 문서가 합철되어 있다.

 

1-1 법인설립허가, 2-1 지방문화사업자 신고사항 변경신고서 제출(회신), 3-1 신원 조사 의뢰, 4-1 지방 문화사업자 변경 통보, 5-1 담양문화원 정관변경및 임원 취임승인 신청에 대한 중간회신, 6-1 담양문화원 임원 취임승인신청에 대한 서류 보완 통보, 7-1 신원조사 의뢰, 8-1 지방문화원사업자 변경사항 승인, 9-1 서류보완 및 신원조사의뢰, 10-1 문화원 임원취임승인, 11-1 신원조사 의뢰, 12-1 정관 변경허가, 13-1 임원 취·해임 승인

 

이 문서가 생산된 1965년은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이 제정되던 해이다. 자생 단체로서 유엔회관에 설립되었다가 담양공보원을 거치면서 자생 민간단체 형태였는데 1965년 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법인격을 부여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는데, 그 무렵의 문서가 국가기록원 성남나라기록관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당시 문화원 업무를 맡았던 중앙부서인 공보부에서 생산한 자료로서 보고나 허가, 승인과 관련되는 일부 자료이이겠지만 담양문화원 역사기록자료로서는 중요하다 하겠다. 이 문서기록은 부분공개로 설정되어 있어 이미지가 제공되는 것은 아니고 방문하면 열람이 가능하다.

 

담양문화원의 활동은 다양하다. 관련 법규에 규정된 사항 외에도 담양의 향토학과 지역학에 대한 기초자료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발간하고 있는 <담양의 맥>, 매년 전문가는 물론 회원과 군민들의 글을 모아 발간하는 <담양문화> 등이다.

 

모두가 다 중요한 향토 자료이지만, 2013년에 낸 문화원형대계-담양의 마을 이야기-가 주목할만하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문화원형자원(문화자원, 자연자원)과 활용자원(산업자원, 관광자원)으로 크게 구분하고 다시 중소 분류를 한 분류표에 따라 나누어 살펴 보면서 350여개 마을별로 정리한 것이다.

 

정리 순서는 마을 형성 및 입향조 이야기, 마을의 지명과 지형물 소개, 신화·전설·민담 등 마을의 설화, 마을의 세시풍속과 민속 및 신앙, 마을의 인물, 마을의 문화유적 및 유물, 기타 마을내력 이야기 등이다. 그야말로 발로 뛰면서 찾아가서 묻고 밝혀내어 적은 기록이다. 이같은 문화 활동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2009년에 낸 면앙정 삼십영송순선생의 면앙정에서 읊은 하서 김인후, 석천 임억령, 제봉 고경명, 사암 박순의 삼십영을 일반인도 보기 쉽도록 해설한 것이다. 한시 전공자(임준성님)가 번역하고 현대 문학가(고재종님)가 운율을 다듬고 사진작가(최옥수님)가 혼이 깃든 경관을 곁들여, 면앙정 공간을 뛰어 넘어 천지자연까지 읊었던 삼십영의 감성을 살린 것이다. 16세기 강호가도의 선구적 현인들의 관점과 정신이 이어진 것이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어져 가리라 기대한다.

 

담양문화원 70년사, 묵직한 원고를 들추었다. ‘감수라 했지만, 사실은 공부하고 싶은 욕심에 동의를 하고 보내 달라 한 것이다. 감히 70년의 담양 지역학의 자료를 엮은 노고에 무어라 덧댈 것이 있겠는가. 담양 문화원, 지나온 70년의 찬란함, 다가올 70년 넘어 700년 이어지리라.

 

* 출전 : 담양문화원 70년사, 담양문화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