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12 - 오야! 그 한문 책 얼릉 갖고 오소. 경찰서에서 난리 나부렀네야..

향토학인 2023. 9. 25. 19:48

인지의 즐거움312

 

향토사가와 연구자들 손때 묻은 귀한 자료

2만 3천여권 모은 보물 창고, 호남 국학기초자료센터 역할 - 한국학호남진흥원 향토사자료실

 

김희태

 

향토사자료실에 대한 소개 겸 호남 지역 자료에 대한 글 요청에 대하여, ‘보고’, ‘보물로 여기고 있다는데 감사하면서 글을 써 본다고는 했지만, 웬지 저어 된다. 날씨 탓 만은 아니다.

 

40년전의 일이 생각난다. 늦게 입문한 역사학의 길에서 맞닥뜨린 사연이다. 고향 장흥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오야! 그때 그 한문 책 어쨌어’ ‘응 지금 보고 있는디. 으째서.’ ‘다행이구만. 얼릉 갖고 와야겄네’ ‘그래, 먼 일이여’. ‘경찰서에서 난리가 나부렀담 마시. 으짜든 바로 좀 갖고 와

 

전화를 건 이는 자응(장흥)’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죽마고우였다. 아버지 대를 이어 시장통에서. 지금의 정남진 토요시장 공연 무대 자리쯤이다. ‘고물을 수집하는 직원[일꾼]들이 군내 곳곳을 돌아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이 고철이나 가전제품’, ‘헌책’, ‘옷가지등을 가져오면, 빨래비누나 엿을 대신 주고 받아 와서, 시장통 고물상에 들러 고물은 납품하고 돈으로 받아가는 품팔이였다.

 

남면인가 어느 시골 동네 할머니께서 헌책을 한뭉치 들고 와 가져가라 하기에 엿 두어 토막 드리고 받아 왔던 게 화근이 되었단다. 직원이 놓고 간 헌책을 떠들어 보니 왼통 한자 투성이라 바로 닫아 버렸단다. 한문본 전적이었던 셈이다. 며칠 뒤 한구석에 놓여 있는 그 고물을 보다가 친구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단다. 좋게 직장 생활하다가 늦게사 먼 대학이냐고 핀잔을 하긴 했지만, ‘역사어쩌고 한 것 같아서 혹 필요할지 모르니 와서 보라는 것. 한달음에 달려 갔다. 장흥 출신 선비들의 문집이었다. 통째로 들고 와서 무안 청계의 자취방에 놓고서 이따금 들여다 보곤 했는데, 급작스런 전화가 온 것.

 

그 사연은 이렇다. 헌책 고물을 내어 준 할머니의 자녀들이 주말인가 시골에 왔단다. 그들은 이런 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나오다가, ‘헌책과 바꾼 이야기를 그 할머니는 자녀들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할머니가 내다 버린 듯 과 바꾸었던 그 고물 헌책, 자녀들은 집안의 가보인데, 어느 날 불한당이 와서 그네들의 어머니를 겁박하여 절취해 가버렸다는 것으로 윤색되어 경찰서에 신고를 해 버린 것이다. 경찰서에서 출두 연락이 와서 가보니 그리 되어 있었고, 어떻든 현품이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하니 급하게 연락을 했던 것.

 

늦깍이 공부를 한다는 친구를 생각해 주었던 고마움은 어디로 가버리고, 그 일꾼은 절취자, 그것도 강제로 훔친. 고물상 주인인 친구는 절취한 직원의 회사 대표이자 절취물 취득 장물애비, 김희태는 장물 취득 보관자. ‘! 세상이란 이렇구만.’ 전적을 돌려 주고, 그때는 한잔씩을 할 때라 그 친구와 마주 앉아 권커니 잣커니 밤이 샜다.

 

그때 그 고물 헌책20여책이었다. 주로 문집류로 기억된다. 처음 가져 오자 마자 복사를 해 두었다. 목포대학교 앞에서 한동안 복사를 전담하다싶이 했던 통대사복사센터. 그때 사진도 찍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내가 소장하려니 하고 표지만 찍었을 게다. 그 사진도 찾아 봐야겠다.

 

자료를 수집하거나 대출해 오면 습관적으로 복사를 한다. 지금은 디카나 스마트폰으로 현장에서도 쉽게 촬영하고 컴퓨터 화면으로 띄워 볼 수 있지만, 3~40여년전 그 시절에는 열람만 하려 해도 몇 번을 오가야 했다.

 

한국학호남진흥원 향토사자료실을 소개하면서 조금은 길게 엉뚱한 이야기로 실마리를 열었다. 그런데 그때 장물취급되었던 그 문집류의 복사본이 이 향토사자료실에 있어서이다. ‘집안의 가보로 둔갑하여 경찰서까지 넘나들었던 그 자료의 원본은 지금도 그 동네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내용은 복사본을 통하여 한국학호남진흥원 향토사자료실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학호남진흥원 누리집에는 열린자료실이라 하였다.

 

보통 도서관이나 자료실에서는 원본을 귀히 여긴다. 그런데 모든 자료를 원본 중심으로만 볼 수 없다. 수많은 고전 문집 등 전적류는 영인본을 통하여 조사나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연장선에서 보면 호남 곳곳의 자료들을 사본으로라도 모은다면 그야말로 보물 전당이 될 것이다. 고물 헌책’ ‘문집 전적사연은 1983년이다.

 

장흥과 강진의 문집류에 대해서도 생각이 난다. 장흥의 문집 사본은 6백여권쯤 될 것이다. 1996년인가, 장흥문화원에서 문집 수집과 함께 장흥문집해제를 책으로 냈는데 해제 작업을 필자에게 맡겨 주었다. 당시 청헌 이상구 원장님과 화산 윤수옥 부원장님은 문림고을의 자산인 문집류 수집을 하여 사본을 제작하였는데, 장흥 문집 사본 일습을 통째로 제공해 주신 것이다. 공부를 하라는 격려이자 배려일 것이다. 그 문집 사본이 향토사자료실에 있다. 강진 문집 수집과 해제 작업도 사연이 있다.

 

공공으로 간행된 문집류 자료도 있다. 민족문화추진회, 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간행한 표점영인한국문집총간 350, 속집 150. 경인문화사의 한국문집총서 초창기의 전라도 문집(400~450) . 지금은 디지털 이미지를 컴퓨터는 물론 오가는 버스속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바로 볼 수 있지만, 초창기 발간시에는 보기가 어려웠다.

 

헌책과 문집 전적으로 실마리를 열었지만, 향토사자료는 다양하다. 처음 근현대사자료라 했는데 웬지 낯설어 향토사자료라 명칭을 제안했다. 근래 지역학이라는 용어가 더 성행된듯하지만, 기관명칭과 관련하여 호남학’, ‘호남국학이라는 용어에 지역학의 의미가 이미 담겨 있기 때문에 향토사자료라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학 그러면 무언가 학문적이고 차원이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향토사’, ‘향토학그러면 누군들 가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져서이다. 내가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흔한듯 일상적인 자료들도 모으고 정리한다면 미래의 역사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때를 빼고 광을 낸다면, 그게 바로 나의 생활사요, 우리 지역의 문화자산이요, 지역학이자 호남학이 될 것이기에.

 

향토사자료실 도서 가운데 성춘경선생님 자료가 있다. 평생을 전라남도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봉직하시면서 전남 문화유산의 가치가 드러나도록 하신 분이다. 특히 불교미술분야에서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분이다. 필자의 문화재 은사님이기도 하신다. 평생 보시고 모은 전남 문화유산 자료, 불교미술분야 자료의 기증에 대해 논의를 해 오셔서 한국학호남진흥원으로 연결되었다. 자식같은 자료들에 대해 논의하면서 울먹이시던 그날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도불교문화연구회 창립 회장을 하셨고, 마침 천득염원장님도 남불회 회원이자 회장을 하셨던 터라 더 귀한 자리가 되었다.

 

또 한 분야의 자료는 남도의 민속학을 일구셨던 박래경선생님 자료이다. 전국에서는 가장 먼저 태동된 향토문화개발협의회(향문회)의 창립 회원이자 남도민속연구의 산파역을 하셨던 분이다. 교직에 계시면서 전국의 향토사와 민속문화 자료는 물론 문화유산과 생활사 자료들을 정성을 다해 모으셨는데, 그 가족(박광렬)들이 유품으로 남은 자료를 기증한 것이다. 향문회는 1972년 장성에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광주에서 전국 유수의 향토학술단체로 자리매김하였다. 50여년에 걸친 향토사와 민속생활사 자료들이 즐비하다. 학술지 <향토문화>202241호를 발간하였다.

 

초대 원장 이종범교수님의 기증 도서는 근대사 자료가 많다. 2대원장 천득염교수님의 자료는 건축학과 문화유산 관련 자료이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직원들이 자료를 챙겨서 향토사자료실을 살지게 하고 있다.

 

첫머리에서 글쓰기가 저어된다고 언급하였다. 향토사자료실을 소개한 것은 좋지만, 왜 나에게 글을 의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 자료실의 첫 단추를 꿰었고, 필자의 자료가 많기 때문에 아전인수내 보이려하는 쪽으로 흐를 염려도 있어서이다. 그래도 글을 쓰고자 한 것은 향토사자료실이 호남국학 연구에 있어 또 다른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서사(敍事)로 풀어 보자. 수도권에서 전남의 어느 마을 조사를 하려는 연구자가 있다. 그는 전라남도지는 물론 해당 지역의 군사, 면지. 마을 유래지, 역사인물 행적, 문집과 기록 자료, 민속과 설화 자료, 고가옥 자료, 사찰 자료, 문화유산 자료 등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 자료 대분분이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있다면, 당연히 호남진흥원 향토사자료실을 찾을 것이다. 이처럼 호남국학의 기초자료센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모아진 2만여권의 향토사자료는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5, 6의 기증자가 있다면, 향토사자료가 늘어난다면 한국학호남진흥원의 향토사자료실은 호남국학 보물창고에서 나아가 호남국학 보물전당이 될 것이다.

 

*출전 : 김희태 , 향토사가와 연구자들 손때 묻은 귀한 자료-2만여 권 모은 보물 창고, 호남 국학 기초자료센터 역할-, 온빛-한국학호남진흥원 소식지- 창간호, 20239, 60~63.

 

향토사자료실에는 성춘경선생, 박래경선생 등 호남 국학연구의 선구자들이 평생 모은 자료들도 있다.

2021년 한국학호남진흥원 도서 기증의 날에 열린 성춘경선생님 도서 기증식과 기증도서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모아 온 귀중한 자료들을 기증했다. 김희태 향토사자료(목포 부영당 서재, 2018)
한국학호남진흥원 소식지 <온빛> 창간호
한국학호남진흥원 6주년 및 소식지 창간호 온빛 발간 기념행사(202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