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85 - 1885년 7월 28일의 소안도 풍경-도암 앞바다에 침몰한 이양선-

향토학인 2022. 8. 30. 14:47

인지의 즐거움285

 

1885728일의 소안도 풍경-도암 앞바다에 침몰한 이양선-

 

김희태

 

어느 해건 7월이나 8월은 지금처럼 찌는듯 했을 것이고 장마에 태풍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한 여름철, 예전의 소안도에서는 혹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소안항일운동기념 전국학생문예백일장 수상 작품집에 들어갈 글을 대동문화재단으로 부터 부탁받았던 터. 연전에는 소안도 당사도 등대를 소개했었는데, 그 연속으로 새로운 자료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언뜻 호남계록(湖南啓錄)이 생각났다. 전라감영에서 조정에 올린 보고문서 장계(狀啓)한 기록한 책이다. “소안도로 검색하니 몇 건이 올라온다. 그 가운데 1885728일 소안도 도암 앞바다에 이양선(異樣船)이 표류하여 침몰한 기사가 보인다.

 

728일 이른 새벽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동일 미시(未時)쯤에 그쳤는데, 같은 달 29일 오시(午時)쯤 본도(本道) 맹선리(孟仙里) 임장(任掌) 강무중(姜武仲)이 치고(馳告)하기를, ‘이양선 1척이 풍랑에 배가 뒤집혀서 곧바로 본리(本里, 맹선리) 도암(道巖) 앞바다에 표류하여 침몰하였습니다.’

 

연도는 고종 22, 1885년이다. 138년전 여름. 당시는 음력이니 8월 말경이다. 728일 새벽부터 비바람이 크게 일어 미시, 즉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그쳤는데, 그 사이에 이양선 한척이 풍랑에 뒤집혀 도암 앞바다에 표류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 맹선리의 임장 강무중이 보고를 한다. 임장(任掌)은 지방의 동리에서 호적(戶籍) 등 공공 사무를 맡아보던 소임이다. 오늘날의 이장격이다.

 

이 날의 표류 사고는 소안도 영장(領將) 김학주(金鶴周)에게 보고 되고 82일 청산도 첨사(靑山島僉使) 김대식(金大植)에게 올라간다. 810일 전라우수영(右水營) 이용관(李容觀)이 문서로 보고하고 826일 승정원에 도달하다. 한 달쯤이 걸린 것이다. 처음 표류했을 때는 보길도의 풍헌(風憲) 강양신(姜良信)이 삼도진 별장(三島鎭別將) 황윤형(黃潤亨)에게 보고한 내용도 있다. 풍헌은 각 면()의 일선 행정 실무를 주관하는 직임이다.

 

이 배는 일본 대판부(大阪府)의 돛을 단 사선(私船)이었다. 6월에 대판을 출발하여 인천항에 가서 721일에 콩 4백 석과 쌀 140석을 되돌아가던 길에 27일에 이 섬의 바다 가운데에 이르렀고 28일 풍랑으로 배가 뒤집혀 표류하다가 침몰했다.

 

뱃사람 8명 가운데 6명이 바다 가운데 엄몰하고 2명이 목숨을 보존하여 보길도 공작지(栱作只) 포구가에 표류하다 도착하여 29일 소안도로 건너왔다. 그들은 유리상길(由利常吉)과 보하천서태랑(保賀川西太郞)이다. 당시 풍랑으로 일본의 어선 7척이 정박하고 있었는데 동래(東萊)에 사는 김순여(金順汝)가 고용인으로 배에 타고 있어서 통역을 할 수 있었다.

 

전라우수사는 문정관(問情官)으로 전라우수영 우후(虞候) 이현의(李鉉儀)를 보내려 했으나 신병이 위중해져서 교체하여 고금도 첨사 신종문(辛鍾聞)을 차정하여 역학(譯學) 한철현(韓徹鉉)과 주진장(主鎭將) 청산도 첨사 김대식과 함께 가서 장계를 작성하여 올린 것이다.

 

장계에 따르면, 바다에 표류한 사람들은 두발은 싹 다 깎았고 모자는 쓰지 않았으며 몸에 착용한 것은 단지 백양목(白洋木)으로 만든 단삼(單衫, 홑적삼) 1, 청면목(靑綿木) 홑두루마기 1건이었다.

 

그 문정기(問情記)호남계록에 있다. 1885(광서 11) 913일 기록이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4책으로 18852월부터 18874월까지의 계문을 수록하고 있다. 소안도 이양선 내용은 2책에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영인한 각사등록(各司謄錄)18집에 원문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DPTJ 볼 수 있다.

 

호남계록에 나타나는 주요 보고 사항은 상례적인 내용과 별례적 성격의 사안이 있다. 일반적인 사항은 관리들의 근무고과[포폄], 강우량과 농형(農形)에 대한 보고, 천신(薦新)ㆍ월령(月令)ㆍ방물(方物)ㆍ진상(進上) 등의 상납 물목, 조창의 조세 수납, 유배인에 대한 처리, 조정 지시사항 처리, 수령 변장의 도임 등에 대한 것이다.

 

특별한 사항은 선박의 치패, 이양선 출몰과 치패, 표류인 호송, 도적의 체포와 문초, 사학인(邪學人)을 오가작통으로 형찰한 일의 보고 등이다. 소안도 이양선 표류를 통하여 당시의 정황과 대외관계를 파악해 볼 수 있다.

 

문정기(問情記)

 

너희는 어느 나라 어느 지방에 사는 사람인가?

일본국(日本國) 대판성(大阪城) 사람이다.

 

몇 월 며칠에 무슨 일로 어느 곳을 향해 가다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이르렀는가?

올해 6월 일에 장사를 하기 위해서 대판성에서 발선하여 인천항에 가서 721일에 콩 4백 석, 140석을 배에 싣고 되돌아가던 길에 27일에 이 섬 바다 가운데에 이르렀고 28일에 풍랑에 떠밀려 선척이 바다 가운데에서 침몰하여 뒤집혔는데 겨우 목숨을 보존하여 여기에 이르렀다.

 

당초에 배에 탈 때에 몇 사람이었고 모두 생존하였는가?

같이 배에 탄 사람은 8명인데, 그 가운데서 6명은 바다 가운데 엄몰(渰沒)하고 2명은 보길도(甫吉島) 도례작지(島禮作只) 포구 가에 표류하여 도착하여 지난달 29일 해당 도() 사람의 선척을 타고 우리나라 어선(漁船) 사람들이 거처하고 있는 이 섬으로 와서 머물고 있다.

 

선척이 침몰하여 뒤집히고 여섯 사람이 엄몰하였다니 듣건대 매우 놀랍고 슬프며, 두 사람이 생존하였다니 진실로 매우 다행할 뿐이다. 여기에 머문 뒤에 질병은 없었는가?

병은 없었다.

 

보길도 도례작지라는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가?

섬사람에게 물어보고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이 생존하였는데 한 사람은 어느 곳에 가고 너만 이곳에 머무는가?

한 사람은 배를 건져내는 기계를 얻어오기 위해서 이달 초1일 동래 부산항으로 향해 가고 나는 포구에 머물며 선체(船體)를 간수(看守)하고 시체를 수탐(搜探)하였다.

 

엄몰한 사람의 시체는 몇 명을 찾아냈는가?

시체 하나는 이달 초5일 보길도 사람이 흘러오는 것을 보고 건져내어 알려주었으므로 가서 해당 섬의 사람과 함께 그 섬의 불등(佛墱)에 매장하였다.

 

너의 선척은 공선(公船)인가 사선(私船)인가?

돛을 단 사선이다.

 

선주는 누구이고 곡주(穀主)는 누구인가?

선주와 곡주는 산근춘길(山根春吉)이다.

 

선호(船號)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또한 선표(船標)와 공문(公文)이 있는가?

선호는 경환(競丸)이고 선표는 물속에서 흘러가 잃어버렸다.

 

생존한 두 사람과 엄몰(渰沒)한 여섯 사람의 성명, 나이, 거주지를 각각 보이라.

다음과 같다. 생존한 사람은 유리상길(由利常吉) 29, 보하천서태랑(保賀川西太郞) 22. 엄몰한 사람은 산근춘길(山根春吉) 26, 산근호길(山根虎吉) 28, 덕영희태랑(德永喜太郞) 33, 춘수언태랑(春水彦太郞) 42, 중강금태랑(中岡今太郞) 28, 영전등길(永田滕吉) 30. 모두 거주지는 대판성(大阪城)이다.

 

당초에 배에 탄 여덟 사람 가운데 부자나 형제가 같이 온 사람이 있는가?

같이 온 사람은 없다.

 

너의 성명은 무엇인가?

유리상길(由利常吉)이다.

 

대판성에서 너희 나라 경성(京城)까지 거리는 수로와 육로로 각각 몇 리나 되는가?

대판성에서 경성까지 정도(程道)는 사이에 절도(絶島)가 많아 가히 1천 리가 된다.

 

배에 실은 물건은 쌀과 콩 외에 또 무슨 물건을 실었는가?

별달리 다른 물건은 실은 것이 없다. 그런데 풍랑에 놀라고 두려웠던 나머지 정신이 어지럽고 혼미하니 많이 묻지 말기 바란다.

 

배가 침몰하여 뒤집혔는데 실은 물건 가운데 흘러가서 잃어버린 근심은 없는가?

바다 가운데에서 배가 침몰하여 뒤집힐 때 물건과 의복 등을 담아서 봉한 상자를 작은 배에 부려 놓았으나 작은 배도 바람에 따라 보길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표류하였는데, 봉한 상자가 같이 떠내려가서 아직까지도 수색하여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제 막 각 포구에 신칙하여 널리 더 수색하여 찾아서 흘러오는 대로 건져서 주도록 하였으니 안심하라.

물건이 이미 작은 배와 더불어 같이 표류하였으니, 응당 보길도 포구 가에 있을 것이니 찾아서 주기를 바란다.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침몰하여 뒤집혀 척량하기 어렵다. 높이와 장광(長廣)이 각 몇 파()이며 범죽(帆竹)은 몇 개인가?

배의 본판에 1()을 붙였는데 길이 12파이고, 높이와 장광은 정신이 어지럽고 혼미하여 파수(把數)를 기억하기 어렵고 범죽은 2개이다.

 

이제 뒤집힌 배를 건져 일으키려고 하는데 배가 이미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데 다 바다도 깊고 험해서 손을 대기가 어렵다. 어떻게 하면 건져 일으킬 수 있겠는가?

반드시 우리나라 큰 배의 기계가 있은 뒤에야 배를 건져낼 수 있다. 그래서 기계를 청해 얻기 위해서 나의 동류 보하천서태랑(保賀川西太郞)이 이미 부산항에 갔으니 그가 도착하면 건져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뒤집혔는데 혹시 풍랑에 떠내려갈 염려는 없겠는가?

철정(鐵碇) 4개를 좌우에 세워서 심어 놓았으니 그럴 걱정은 전혀 없다.

 

배가 침몰하여 뒤집혔으니 수로로 되돌아가든 육로로 되돌아가든 되돌아가는 일은 너희가 원하는 대로 호송하겠다.

나의 동류 보하천서태랑이 3, 4일 사이에 생각건대 반드시 돌아올 것인데, 이 뒤집힌 배를 건져낸 뒤 우리 배를 타고 되돌아가겠다.

 

*출전 - 김희태, 1885728일의 소안도 풍경-도암 앞바다에 침몰한 이양선-, 민족의 화산 소안도-2022(13) 소안할일운동기념 전국학생문예백일장 수상 작품집-, 국가보훈처 광주지방보훈청, 완도군,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편집 대동문화재단, 2022.08, 8~12

 

*2022 13회 소안항일운동기념 전국 학생 문예백일장은 2022. 4. 1.()~6. 20.() 공모하여 모두 89(총 시상금 640만원)의 입상자를 시상하였다. 참가대상은 전국 초··고등학생, 참가부문은: , 수필, 그림, 독후감상문, 응모주제는 ·수필 : 내가 소안면민이 되어 소안도를 소개한다면?, 그림 : 소안도가 아름다운 이유는?, 독후감상문 : <노래를 품은 섬 소안도>를 읽고 나서 이다. 시상식은 2022 31회 소안항일운동기념 추모식과 함께 2022715() 소안항일운동기념공원 일원에서 열렸다. 대상은 남악중학교 1학년 권건희(운문, 소안도 이야기)가 수상하였다.

 

소안도 이야기(권건희)

 

 

대동여지도(186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인용)의 소안도(==). 조선시대에 소안도, 보길도, 노화도, 청산도는 영암에 속했고, 완도(본섬)와 고금도, 신지도는 강진에 속했다.

조선후기 영암지도(1872, 규장각 소장)에 보이는 소안도(중앙), 왼쪽에 보길도, 오른쪽에 청산도()가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소안도, 보길도 등은 영암군에 속했다.

 

소안도 표류 이양선 선인 문정기 앞부분(호남계록, 1885913일조)

소안도 이양선 장계 앞부분(호남계록, 1885826일조), 8孟仙里, 9道岩前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