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60 ; 유달산➅ - 朝鮮에 몇군데 風光, 저물녁의 유달산 一景-1937년 5월 7일 유달산을 바라본 야나기 무네요시-

향토학인 2021. 12. 24. 00:40

인지의 즐거움260 ; 유달산➅

 

朝鮮에 몇군데 風光, 저녁무렵의 유달산 一景

-1937년 5월 7일 유달산을 바라본 야나기 무네요시-

 

김희태

 

1937년 5월, 일본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3~1961)가 유달산을 바라보며 탄미의 글을 남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1937년 5월 48세 때 우리나라 여행을 한다. 5월 2일 부산으로 도착하여 여수, 순천, 담양, 곡성, 광주를 거쳐 5월 7일 오후 목포 유달산을 본다. 다음날까지 목포에 머물다가 광주, 이리, 전주, 임실, 운봉, 남원을 거쳐 5월 12일 서울로 간다. 이듬해 3월 『공예(工藝)』82호[日本民藝協會]에 “전라기행(全羅紀行)”을 기고한다.

 

1937년 5월 7일 저물녁 야나기 무네요시가 본 유달산 경관이다. 저녁 햇빛을 받은 儒達山의 광경. 날카로운 암벽이 우뚝 솟은 두 봉우리. 일등바위를 말함이리라. 사람과 자연이 서로 끌어안는 듯 신기한 아름다움을 가진 장면. 그 자리에 오래 서서 바라본다.

 

1937년 5월 7일

… 차는 남으로 남으로 저녁 햇빛을 받고 달렸다. 언덕 사이에서 바다가 나타나서는 다시 사라진다. 고개로부터 내려다 본 후미는 호수처럼 아름답다. 부드러운 빛을 받아 섬들은 조용히 떠오르게 하고, 꿈과 같은 畵境을 우리들에게 보낸다. 이것은 잊혀지지도 않는다. 木浦로 다 와서 마지막 고개를 넘었을 때, 문득 우리들 앞에 전개된 것은 저녁 햇빛을 받은 儒達山의 광경이다. 날카로운 암벽이 우뚝 솟은 두 봉우리의 후미진 산골에, 마치 담쟁이 덩굴이라도 오르는 것처럼, 작은 민가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겹쳐지고 엉켜지고 있다. 저 회색의 부드러운 우산을 쓴 버섯이, 온 언덕에 모여 무성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산에 잠자는 집, 집을 보호하는 산, 사람과 자연이 여기서는 서로 끌어안는다. 저 집들이 없으면 저 산들은 없고, 저 산들이 없으면 저 집들은 없다. 이렇게도 신기한 아름다움을 가진 장면이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金剛山으로 朝鮮은 유명하지만, 木浦는 儒達山으로 유명해서 좋다. 아니 전 朝鮮에 몇 군데 風光을 헤아린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저녁 무렵의 儒達山을 그 一景으로 보탤 것이다. 화가였더라면 붓에 먹을 묻혔을 것이다. 木浦의 거리는 잊는다 하더라도, 저 신비한 儒達山은 잊지 않으리라. 좌우에는 멀리 물이 흐려 보인다. 우리들은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柳宗悅著, 이대원역, 『한국과 그 예술』, 지식산업사, 1954, 252쪽)

 

1971년에 제주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영감놀이> 본풀이 신화에 “서울 남산 먹자고을에서 허정승의 아들 7형제가 태어났는데, 큰아들은 백두산 일대를 차지하고, 둘째아들은 태백산 일대를 차지하고, 셋째아들은 계룡산 일대를 차지하고, 넷째아들은 무등산 일대를 차지하고, 다섯째아들은 지리산 일대를 차지하고, 여섯째아들은 유달산 일대를 차지하고, 일곱째아들은 제주 한라산 일대를 차지하여 영감신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1971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내려온 민속무형유산에 기반할 것이다. 이는 유달산이 백두산, 태백산, 계룡산, 무등산, 지리산, 한라산과 함께 전국적으로 알려진 역사문화명산으로 인식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