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국가유산

새문화재 -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보물 지정, 2021.04.21

향토학인 2021. 4. 21. 16:24

새문화재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보물 지정, 2021.04.21

- 고대 신발 유물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된 것은 처음 -

 

보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羅州 丁村古墳 出土 金銅飾履)’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것이다.

 

5∼6세기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복암리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되었다. 그중 정촌고분은 1,500여 년 전 백제‧마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이면서 도굴 피해를 당하지 않아 매장의 원형을 알 수 있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무덤이다.

 

* 나주 정촌고분: 1996년 나주 복암리 3호분을 조사하던 전남대학교박물관이 처음 확인. 이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09년부터 영산강유역 고분 정밀분포조사를 진행하면서 고분의 규모를 직접 확인했으며, 2013년 5월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발굴조사를 실시. 2006년 12월 30일 나주시 향토 문화유산 제13호로 지정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되었으며, 특히,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 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국립나주문문화재연구소의 최근 과학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발의 주인은 40대 여성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금동신발은 형태와 제작기법, 문양 등에서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신발(보물)과 매우 유사하다. 얇은 금동판 4장으로 바닥판과 좌우 옆면판, 발목깃판을 만들어 서로 작은 못으로 연결하였고 문양을 투각해 세부를 선으로 묘사한 방식 등 고대 금속공예 기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아울러 육각문, 용문, 인면조신(人面鳥身), 괴수문, 연화문 등 사후영생(死後永生)을 기원한 고대인들의 사후세계관이 반영된듯한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조형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보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에 비해 조금 늦은 5세기 후반경에 제작되어 6세기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공예품으로, 5~6세기 백제의 사상과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보물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2종은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또한, 같은 시기 중국이나 고구려, 신라의 미술품과 비교하여 문양의 기원과 변천,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 시대 금동신발과 비교하여 백제 공예문화의 독자성을 밝힐 수 있는 원천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문화재정 보도자료, 전라남도 자료, 나주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