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214
해남반도 해양을 지킨 중심 관방유적, 고다산성
김희태
해남 고다산성을 둘러 보았다. 성매산성으로도 부른다. 현산면 읍호리에 위치한 테뫼식의 석축산성이다. 성의 둘레 450미터. 해발 96미터 쯤, 그리 높지 않은 곳이지만 사방이 조망되는 곳이다. 지금은 한여름철이라 나무 숲이 우거져 있긴 하지만. 기록을 찾아 보니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처음 보인다. 해남현 산천조와 고적조 두군데.
- 고다산(高多山) : [해남]현의 남쪽 40리에 있다[在縣南四十里].(산천조)
- 고다산성(高多山城) : 고성이 있는데 둘레가 9백 13자이다[有古城 周九百十三尺].(고적조)
해남현 읍치로부터 남쪽 40리 거리에 고성이 있는데 둘레가 913자라는 것.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30년에 편찬한다. 초간본은 1481년, 당시 국력이 모아져 있다고 할만한 관찬 지리지이다. 조선시대 초기의 상황을 기록한 것인데, 이 책에 “고성(古城)”이라 한 점이 눈에 띤다. 이 책이 편찬되던 조선초기에 이미 성곽으로 기능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방’의 구실 보다는 ‘유적’으로 남아있었던 셈. 이렇게 보면 고다산성 축성시기는 늦게 잡아도 고려시기.
조선후기의 사찬지리지인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나 관찬 성격인 『문헌비고(文獻備考)』에는 “在南四十里 石築 周九百十三尺” 등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비슷하다. “석축(石築)”이라 하여 축성의 기법을 알 수 있다. 조선말기까지도 석축 성이 잘 남아 있음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일제 강점기 자료에도 보인다. 『전라남도 고적대장』(식산국 산림과[추정], 1916~1917년) 자료에는 “고다산성이라 칭한다. 해남읍 남방으로약 5리 거리오 완도에 이르는 2등도로와 접하여 있고 성벽은 석축인데 반이 폐퇴되었고 기록과 구비가 전한다.”는 내용이 있다.
『유적 및 유물 조사보고』(고적조사위원회, 1919년) 자료에는 고담성(古談城)으로 이름이 나오는데, 소재지는 현산면 읍호리 성매산(城埋山), 현상은 주위 913자이고 석축이 남아 있고 황퇴됨이 심하다고 하였다. 전설은 400여년전 해남현감 시대에 군사 조련을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조선고적보물조사자료』(조선총독부, 1942)에는 해남군의 고적 17개소가 조사되어 있는데 성지 14개소, 사지 2개소, 고분 1개소이다. 고다산성은 “해남읍과 남방으로 5리 떨어져 있는 완도로 가는 도로에 접해 있으며 성벽은 돌로 쌓았고 반이 폐퇴하였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의 고지도이다. <대동여지도>(김정호, 1861년),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작자 미상, 1861년 이후), <조선팔도지도>, <동여도(東輿圖)>(김정호, 1861년 이전), <해남현지도>(1872년)에 나온다. 1872년 해남현 지도에는 테뫼식 산성이 뚜렷하다. <대동여지도>나 <동여도>에는 고다산이 그려져 있고 가운데 성의 표기가 있다.
성매산은 원래 성뫼산이라 했다. 성(城)이 있는 뫼[산]. 성매산[성뫼산]은 산성이 소재한 산정을 중심으로 잇닿은 남봉과 고담 마을 쪽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축은 성매산의 7~8부 능선을 둘러싸고 있는데, 둘레 450m 정도이다. 성의 남쪽 부분 일부를 제외하고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성벽이 높은 곳은 3.5m에 이르고, 너비는 1m 내외이다.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내탁법에 따라 쌓았다. 성내의 북쪽 부분에는 여장과 같은 구조물이 보이며, 치 구조물과 문지도 확인되고 있다. 석축성 밖으로 성을 돌아가면서 삭토하여 계단식 구조물을 축조한 흔적이 뚜렷하다.
동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태안산 언저리에서 돌을 가져다 쌓았고, 동문은 군사들이 훈련을 오가면서 이용하던 육지부 연접 출입 시설이다. 남쪽문으로는 바닷쪽으로 오가는 출입 시설. 성 서쪽으로 바로 연접된 해남-완도, 송지간 국도, 고담리는 지금 자리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주변지역의 원마을은 한때 400여호에 이르렀고. 고담마을에 유씨가가 자리 잡은 건 4대조 때의 일. 함께 산을 오르면서 길잡이를 해준 유경식님의 설명이다. 중요한 문화재를 잘 보존해 달라는 바람도 곁들인다.
고다산성 가까이에 백방산성과 읍호리산성도 있다. 남해 바다 곳곳이 바라도 보이며 고대 항구로 보고 있는 백포만에 연접해 있다. 해남에서 송지나 완도로 가는 길목과도 가까워 해상과 육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로이다. 또한, 동쪽으로는 강진의 좌곡산 봉수, 남쪽으로 달마산 봉수, 서쪽으로 관두산 봉수가 조망된다. 고대 해남반도의 해양 방어를 위한 중심 관방시설이라 하겠다.
문화유산 조사를 다니다 보면 유적이나 유물 자체가 잘 남아 있거나 귀하거나 드문 현장을 보았을 때 더 소중함을 느끼고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다. 여기에 더하여 관련된 인사들의 열정을 드러날 때 더더욱 즐거움이 더해진다. 고다산성 현장을 지키고 가꾸면서 열정적으로 현장 동행을 해 준 고담 출신 유경식님, 불편한 몸으로도 산행을 마다 않은 현산면사무소 정형택님의 열정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분들은 이틀전 비를 맞고 나무를 베어내 산길을 정비했다고 한다. 문화재 현장에서 지킴이로서 해설가로서 몸을 아끼지 않고 더위도마다 않는 그 열정, 오래 기억 되리라.
* 조사 : 김희태, 성대철(전남 문화재전문위원), 김향주(해남군청 문화재팀장), 용병주(해남 학예연구사)
* 해설 : 유경식(고다산성보존회장, 고담리출신, 전 재광해남향우회장), 정형택(현산면사무소 주무관)
* 참고 :『해남군의 문화유적』(목포대박물관, 1986년), 『문화유적분포지도-전남 해남군-』(목포대박물관, 1986년), 『해남 고인돌·성 문화재조사결과보고서』(대한문화재연구원, 2020년[중간보고자료])
<동여도>(김정호, 1861년 이전, 규장각 소장)의 고다산 부근도.(중앙 부분) 산 가운데 ○부분이 성이 있다는 표기이다. 동쪽에 좌곡산봉수,남쪽으로 달마산봉수, 서쪽으로 관두봉수가 조망되고 해남 읍치쪽을 제외하고 서쪽과 남쪽이 바다로 연결된다.
『유적 및 유물 조사보고』(고적조사위원회, 1919년) 자료에는 고담성(古談城)으로 표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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