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16 - 산색은 검고 물빛은 푸르다 山色黑 水色蒼 - 흑산도

향토학인 2020. 11. 22. 00:56

인지의 즐거움216

산색은 검고 물빛은 푸르다 山色黑 水色蒼 - 흑산도

-전라우도 나주지방 흑산도지도 全羅右道 羅州地方 黑山島地圖-

 

김희태

 

이 지도는 조선시대 왕실도서관이며 국가통치기록 보관처인 규장각[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채색지도이다. 1872년께 조선왕조가 팔도(八道)와 그 군현(郡縣)별로 제작한 지도로 461장이 전한다. 이 지도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조선이 국방을 강화하고 사회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작됐다.

 

따라서 각 군현 지도에는 진보(鎭堡)와 같은 국방시설이 상세히 표시돼 있다. 그리고 산천을 비롯한 자연요소, 읍치 등의 관청건물과 소속 동리와 같은 행정적 요소, 창고. 시장. 역원(驛院). 도로 등의 사회경제적 요소, 제단, 누정, 서원. 고적과 같은 문화적 요소를 망라하고 있다.

 

<조선후기지방지도 : 전라도편>(민창문화사, 1996)으로 영인본이 나왔다. 흑산도지도(奎 10449) 크기는 92cmx60cm이다.

 

흑산군도는 전라도 서해안의 도서 가운데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들로 조선시대에는 인근 고을이 아닌 전라도 나주목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처럼 다른 고을의 경역을 넘어 존재하던 월경지(越境地)가 지도가 제작되던 당시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라우도에 속하고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전라우도는 전주, 나주, 김제, 영광, 무안, 함평 등 서해안에 인접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나주목에 속했는데 1895년 6월 23일(음력 윤 5월 1일) 23부제(府制)가 실시되면서 나주부 나주군에 속했다. 1896년 2월 3일 지도군이 신설되면서 나주부 지도군 흑산면이 되었다가 1896년 8월 4일 13도제 개편에 따라 전라남도 지도군 흑산면, 1914년 지도군이 무안군에 합해 지면서 전라남도 무안군 흑산면, 1969년 신안군이 신설되면서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이 되었다.

 

지도는 대양(大洋)이 있는 서쪽을 상단으로 배치하였지만 각 섬들의 상대적인 위치는 다소 차이가 있다. 서북쪽에 보이는 홍의도(紅衣島)는 비경으로 이름난 홍도이다. 서남단에 있는 가가도(可佳島)는 서남해안의 끝단에 있는 섬으로 중국을 왕래하던 선박이 정박하던 곳으로 가거도라 하며 소흑산도로 부른다.

 

런데 지도의 동쪽에는 소흑산도가 따로 그려져 있는데 이 섬은 지금의 우이도에 해당한다. 이처럼 현재의 지명과 과거의 지명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지도를 읽을 때 주의를 요한다. 소흑산도라 표기된 우이도는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나주목에 속했다가 1896년 나주부 지도군 흑산면, 1914년 전라남도 무안군 흑산면, 1963년 무안군 도초면에 속했다가 1969년 신안군이 신설되면서 신안군 도초면에 속하였다.

 

흑산도지도는 대흑산도와 소흑산도를 중심으로 부근 도서를 둥글게 배치했는데 봉우리 방향도 각각 다르다. 대흑산도에 ‘山色黑 水色蒼[산색은 검고 물빛은 푸르다]’이라 기재되어 있는데 섬의 산색을 소흑산도와 달리 흑색으로 표현한 점이 지명과 관련하여 이채롭다.

 

대흑산도와 소흑산도에는 아사(衙舍)가 그려져 있고 마을명도 진촌(鎭村)으로 되어 있어 조선시대 수군진과 같은 군사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도에는 모두 50개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는데 유형별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각 섬에는 크기[길이, 너비, 둘레]와 대흑산도로부터의 거리가 표기되어 있다.

 

o 도(島) : 가가도(可佳島)[대흑산도 2.100리], 다물도(多物島), 대흑산도(大黑山島), 목맥도(木麥島), 소흑산도(小黑山島)[대흑산도 800리], 영산도(永山島), 우이도(牛耳島), 장도(長島), 죽도(竹島), 칠가도(七駕島), 태사상도(苔沙上島)[대흑산도 1,00리], 태사중도(苔沙中島), 태사하도(苔沙下島), 홍의도(紅衣島)[대흑산도 300리, 소흑산도 1,100리]

 

o 서(嶼) : 가도서(駕島嶼)[2], 서(嶼)[8]

o 촌(村) : 대촌(大村), 마촌(馬村), 사촌(沙村), 성촌(星村), 수촌(水村), 심촌(深村), 예촌(曳村)[2], 읍구미촌(邑仇味村), 저항촌(猪項村), 진촌(鎭村)[2], 차촌(此村), 천촌(淺村), 청촌(靑村)

 

o 관아(官衙) : 선창(船倉), 아사(衙舍)[2]

o 지형 : 굴봉(窟峰), 대해(大海)[2], 문암봉(門巖峯), 별치(別峙), 상봉(上峯), 전후절벽(前後絶壁), 절벽(絶壁)

 

그리고 경도[서울], 순영[전라도 순찰사영, 전주], 나주, 병영[전라병영, 강진], 수영[전라우수영, 해남], 통영[삼도수군통제사영, 통영]과의 거리가 다음과 같이 표시되어 있다.

 

o 경도 1,110리(수로 280리, 육로 830리) o 순영 610리(수로 280, 육로 330) o 나주 390리(수로 280, 육로 110)

o 병영 440리(수로 270리, 육로 170리) o 수영 270리 o 통영 610리(수로 270리, 육로 340리)

 

이 지도는 <조선후기 지방지도 -전라도편-> 영인본에 실린 것을 흑산도 문화관광 홍보자료로 활용하고자 제작하였다. (2009.6 / 흑산도문화관광해설가협회 / 김형만, 김기백

 

* 2006년 11월 30일 흑산도 상라산성 문화재 지정 조사차 들렀을 때 문화관광해설사 김형만님, 김기백님과 동행을 하였다. 당시 자세한 설명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신안 흑산도 상라산성은 2008년 4월 1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39호로 지정되었다. 그 뒤로 두분 해설사님들과 교류를 이어가면서 흑산도 홍보자료로 활용하면 좋을듯 하여 규장각에 소장된 <나주지방 흑산도지도>(奎 10449)를 축소 제작하여 보냈다. 2009년 6월이다.

 

위 글은 흑산도 지도를 설명한 내용으로 당시 작성한 것인데 축소본 지도에는 요약하여 실었다. 2009년 11월에는 김형만님이 흑산도에 대한 여러 자료를 모아 정리 한 내용, 각 마을을 돌면서 느낌을 쓴 것 등등을 모아 보내왔다. <섬들의 천국 흑산도>라는 제목으로 편집을 하여 30부인가 제본하여 보냈다. 그동안 이따금 소식도 듣고 통화도 하곤 했는데 2020년 11월 9일 김형만님이 별세하셨다는 부음이 왔다. 망연자실이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섬들의 천국 흑산도(부분)

 

김형만

 

신안군

보물인 천사의섬 신안의 천지요

바다의 고기떼는 해마다 풍어로다.

선사때 남긴자취 돌보물 아름답고

천연의 보물섬은 신비의 경지로다

연륙과 연도교는 무지개 다리요

푸르른 넓은바다 수평선 이었도다

명승과 문화유적 관광이 즐거웁고

관내를 연륙하니 온세상 알리리라

 

흑산면

문암산 검푸르게 하늘로 높이솟고

바다의 생선패류 해마다 풍년이라

석조의 남은보물 문화의 꽃피우고

해상의 국립공원 자연의 비경이라

잔치상 구수한맛 홍어가 일미이고

미풍과 양속들은 옛부터 이어오다

기암의 아름다움 천지의 신비이요

불변의 명승지를 온세상 전하리라

 

흑산군도

흑산면 일백섬은 낙원의 천지이요

마을은 삼십이요 해마다 풍년이라

흑산섬 경치좋아 관광이 즐거웁고

대둔도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로다

홍의섬 기암절경 천하의 명승이요

태상도 상미해초 너울져 춤을춘다

가가도 심선고을 산수가 아름답고

사람산 열하나섬 비충을 전하도다.

 

흑산도 명승명소

흑산도   옛날옛적 그누군가 살았으리

산을넘고 바다건너 그옛님이 찾아와서

고인돌과 패총속에 석부터기 두고갔네

옛님들이 생활하던 흑산군도 문물이라

역사깊은 선사문화 남아있는   흑산도

 

흑산도   푸른바다 그누군가 다녀가리

백제나라 세왕자의 피난살이 기록이며

청해대사 무역선인 상라봉에 천제올려

해안절애 반월돌성 흑산산성 요새로다

국제항구 해양문화 찬란했던    흑산도

 

흑산도   석탑석등 그누군가 합장하리

선남선녀 불자들은 무심사에 참선하고

중국사신 배가오면 봉수대에 불밝혔네

유서깊은 절기미는 흑산현의 옛터로다

향기높은 고고문화 간직해온   흑산도

 

흑산도   공도령에 그누군가 남포가리

남녀노소 섬을떳고 임란앞뒤 입도하니

유배와서 어보쓰고 지장암에 글세겼네

수륙천리 서남바다 흑산도진 요충이라

슬기로운 전통문화 이어오는   흑산도

 

흑산도   국립공원 그누군가 사랑하리

하늘아래 고운님이 해상풍광 구경하니

기암절경 명승지요 문화고적 명소일세

푸른바다 해산물중 흑산홍어 일미로다

아름다운 관광문화 다시찾은   흑산도

2006년 11월 30일의 흑산도- 산색은 검고 물빛은 푸르다

김이수(金理守, 1733~1805)선생 유적을 찾다

- 1791년 1월 18일 흑산도 주민 김이수가 정조임금의 어가 행차를 가로막고 왕에게 직소하는 격쟁(擊錚)을 감행했다. 흑산도 주민들이 부담하는 부세(賦稅)와 부역(賦役)에 대한 것이었다. 흑산도 주민들은 상급관부에 토산물을 상납하고 각종 민역(民役)을 이행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고역은 훈련도감에 납부하는 지역(紙役)이었다. 흑산도에서 닥나무가 자생할 때 종이를 제작하여 상납하였으나, 닥나무가 절종되면서 더 이상 지역에 응할 수 없었지만 한번 정해진 부역은 변통되지 않았다. 격쟁을 통해 섬지역의 사회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던 것이다.

-우 김형만님(해설사), 고용규님(문화재청 감정위원), 좌 김희태, 김기백님(해설사), 김형주님(흑산면장), 이정수님(흑산면 주무관), 이재근님(신안군 학예사)(2006.11.30.)

1872년 흑산도지도 - 대흑산도 부근도

1872년 흑산도지도 - 소흑산도[우이도] 부근도

 

나주지방 흑산도지도(1872년)를 한지로 복제하여 흑산도 해설사들에게 제공했는데, 기증자를 표기하여 흑산도 자산문화도서관 존시실 입구에 걸었다. 2021년 3월 30일 조사차 흑산도를 들른 한성욱 동학이 사진을 찍어 보내 왔다.
자산문화도서관 자산어보1실(202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