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76 - 오래된 유적, 들판속에 외롭네 -광주 태봉을 노래하다

향토학인 2019. 4. 13. 08:59

 인지의 즐거움176

 

오래된 유적, 들판속에 외롭네-광주 태봉을 노래하다

 

김희태



 나왕 태봉 羅王 胎峯

 

소나무 잣나무 성근 곳, 마른 풀밭 광활하니

천 년의 유적은 들판 속에 외롭네

태(胎)를 씻은 확수(確水) 지금도 여전히 출렁이니

비바람 치던 그때 모습 다하지 않은 그림일세

 

松栢疎疎衰草濶 / 千年遺跡野中孤 / 洗胎礭水今猶漾 / 風雨當時未盡圖

 

초겨울쯤 이었던가 싶다. 마른 풀밭이라 했으니. 널찍한 들판. 소나무와 잣나무가 듬성 등성. 제법 키가 크다.

그 사이로 동산이 보인다. 광활한 들녘에 저 홀로 솟았으니 외로울 밖에. 듣자니 천년된 유적. 신라 왕의 태봉으로 구전되는 곳.


멀찍이서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 간다. 태를 모셨다는 돌확에는 물이 넘친다. 태를 씻었을 그 확.

태를 모실 무렵 바람이 쳤었나. 그 광경을 그려 보려 하지만 아른거리기만...

 

광주의 역사 명소로 불릴법한 태봉. 지금은 표석만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후기에는 선비들의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되었다. 국가기록에도 나온다.

 

먼저 선비의 시어. 우잠 장태경(愚岑 張泰慶, 1809~1887)의 <우잠만고(愚岑漫稿)>. 화순과 광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의(儒醫). 다 죽어가던 관청의 노비도 살렸다 한다. 그가 남긴 문집에는 광주 명소 경관지 곳곳의 읊은 시가 많다.

 

원효암, 취백루, 서석산, 장원봉

나왕 태봉, 금당산, 향로봉

제봉산, 사인봉, 지평봉, 극락강

경호의 물 鏡湖水

분적산 설경 粉積山雪景

유림의 가을바람 柳林藪秋風

경양역 북소리 나팔소리 景郵鼓角

풍영정, 황화루

 

태봉산은 당시에 신라왕의 태봉으로 전하고 있었던듯 싶다. '나왕'은 구전이겠지만,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시상으로 보아 직접 현장을 가본 것 같아서이다. '확수(確水)'. 돌확에 물이 차 있었다는 것. 확은 태실(胎室)을 말함이리라. 지금은 광주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렇다면 이 시기에 이미 태실이 드러나 있었다고 보면 안될까.

일반적으로 알려 진 것은 1933년 <광주군사>의 기록. 1928년 기뭄이 들자 파묘(破墓)로 기우(祈雨)를 하고자 주민들이 몰려가 무덤을 헤치자 드러났고, 연대(1625년, 天啓5)와 주인공(王男大君阿只氏)이 새겨진 지석도 나왔다는 것.

 

그런데 우잠 장태경의 시에서 보듯 이미 태실은 1870~1880년대에 드러나 있었고, 5~60년이 지난 1928년에는 보다 더 뚜렷하게 드러났고 연기가 새겨진 지석도 출토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국가 기록에 나온 건 1872년 광주지도. 경양호 물줄기가 외호하는 가운데에 산을 그리고 고려왕자태봉(高麗王子胎封)이라 표기했다. 장우잠의 시에서는 신라왕(羅王)인데 광주지도에는 고려. 비슷한 시기의 기록인데 다르다. 그만큼 구전도 다양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1872년 지도 표기중 태봉 바로 옆의 대야(大野)도 눈여겨 볼만 하다. 너른 들녘. 장태경의 시에서 초활(草闊), 야중(野中)이라 한 것과도 연계된다.

 

마을로서 대야(大野) 지명도 확인된다. 갑마보면 대야리. 이 대야리는 1914년에 본촌면 지야리(芝野里), 본촌면 월산리, 우치면 용전리로 각각 나누어 합해진다. 중심부인 본촌면 지야리는 1935년 지산면 지야리가 된다. 오늘날의 북구 지야동이다.

 

태봉과 대야, 그리고 우잠 장태경이 유상하였던 광주의 곳곳, 하나씩 둘러 보아야겠다. 특히 사라져버린 현장을.

 

* 태봉산에 대한 역사, 문화, 지리, 이야기 등에 대해서는 <경양방죽과 태봉산>(광주시립민속박물관, 2018)에 자세하다.


*지도1 전라좌도 광주지도(1872년, 규장각소장) 태봉 부근도

*지도2 1918년 지형도 태봉리, 태봉산(52.9미터), 중흥리 부근도. 붉은선이 당시 면 경계이다. 태봉리는 기례방면(奇禮方面)에 속했다가 1914년 서방면(瑞陽+斗方) 중흥리로 합해진다. 경양방죽(1872년 지도에는 金橋防築으로 표기, 지도1)은 서방 연지(瑞方蓮池)라 불리우기도 한다. 1914년부터 서방면지역이 되었기에. (지도 :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GIS서비스 자료 발췌 인용) 

1960년대의 태봉산 원경(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사진으로 만나는 도시 光州의 어제와 오늘-, 2007. 105쪽 (사진출처 : 광주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