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69 - 하늘에서 본 무위사, 이제 막 붓을 놓은 듯한 600년 벽화

향토학인 2019. 3. 12. 03:31

인지의 즐거움169

 

하늘에서 본 강진 무위사, 이제 막 붓을 놓은 듯한 600년 벽화

 

김희태

 

무위사는 월출산 남쪽 성전면 월하리에 자리 잡은 선종 사찰이다. 관음사, 갈옥사, 모옥사, 무위갑사라는 절이름이 있다.『무위사사적』에 617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했으나 시대 상황, 유물과 유구 등을 통하여 확인은 어렵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0세기 초반 이전에 창건되었다.

 

10세기 초에 선각대사 형미(864~917)에 의해 선종사찰로 중수되었다. 형미는 선종 구산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보림사 보조선사 체징(804∼880)의 제자이다. 905년께 왕명으로 무위갑사에 주석하였고 선풍을 크게 떨쳤다.

 

946년에는 선각대사 형미의 편광영탑비가 건립된다. 왕명으로 최언위가 글을 짓고 유훈률이 글씨를 쓴다. 보물 제507호이다. 고려시대에는 삼층석탑도 건립된다.

 

무위사는 1407년에 천태종의 자복사로 지정되면서 교종계열의 사찰로 변모하였다. 자복사란 국가에 복이 있기를 기원하기 위하여 각 지방에 정책적으로 지정하였던 절로 주로 이전부터 내려오던 명찰을 종파별로 나누어 지정하였다.

 

1430년에는 극락보전이 건립되었다. 효령대군이 지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맞배집이다. 조선 초기에 세워진 주심포 건축 가운데에서 가장 발전된 구조형식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가운데 오래된 걸로 손가락에 든다. 국보 제13호이다.

 

1476년에는 후불벽화가 조성된다. 아산현감을 지낸 강질, 강진군부인 조씨 이외에 수십 명의 서민들이 시주를 했다. 흙벽에 천연 염료로 그린 그림은 이제 막 붓을 놓은 듯 선명하다.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앉은 모습의 아미타불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서 있는 구도이다. 화원은 대선사 해련으로 보인다. 섬세한 고려불화와 조선초기 새로운 수법의 걸작이다. 국보 제313호이다.

 

백의관음도는 후불벽 배면 토벽에 그림을 그리기 전에 황토색을 칠하고 유려하고 간결한 필치로 그렸다. 아래부분에는 수월관음에 자주 등장하는 선재동자 대신에 늙은 노비구가 관음을 향해 간절한 모습으로 합장을 하고 있다. 동해 관음굴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설화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후불벽에 관음보살을 벽화로 그린 최초의 작품이다. 보물 제 1314호이다.

 

극락보전 내벽 사면벽화는 삼존불화, 아미타래영도, 관음보살도, 주악비천도 등 29점이다. 보물 제1315호이다. 지금은 보존각으로 옮겨져 있다. 파랑새가 그렸다는 전설도 있다.

 

1478년에는 극락보전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조성된다. 장흥 보림사 북삼층석탑(국보 제44호)의 탑지에 “성화 14년[1478년, 성종9] 무술에 무위사 주불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모든 고해를 털고 내게로 오라는 듯 인자한 미소가 느껴진다. 무위사에 주석하여 사세를 키웠던 선각대사 형미가 장흥 보림사에 주석한 보조선사 체징의 제자였는데 500년이 지나도록 그 유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보물 제1312호이다.

 

또한 수륙사로 지정되어 많은 수륙재가 행해졌고 1570년대에는 수륙재 관련 불서가 간행된다. 이처럼 무위사는 조선전기에 최고의 사세를 유지하였다. 선각대사형미 주석과 선각대사탑비의 건립시기에 이어 두 번째의 중흥기라 하겠다.

 

무위사하면 국보 극락보전과 후불벽화, 보물 관음보살도와 목조아미타불좌상 등이 알려져 있다. 여러 차례 불사를 하여 현재는 미륵전, 나한전, 명부전, 산신각, 보제루, 해탈문, 일주문, 요사채 등이 들어서 있다.

 

미륵전에는 석불이, 나한전에는 석가여래삼존상과 나한상이,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들 전각에 봉안된 존상은 모두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방형의 배례석도 특이하다. 보통 석탑과 석등 앞에 세워지나 무위사는 법당 앞에 있다. 정례석으로 부르기도 한다.

 

무위사와 관련한 일화. 극락보전 삼존상 보물 지정 조사를 할 무렵, 마침 『보림사 중창기』번역을 하던차였다. 당연히 국보 석탑의 탑지 기록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조사위원들에게 “1478년 무위사 주불 조성” 기록의 탑지 내용을 제보하여 보물로 지정하는데 큰 참고가 되었다. 2001년 여름이다.

 

또 하나는, 백의관음도의 오언율시와 관련해, 전남대박물관에 소장된 <유경현 묘지명>의 ‘‘아버지가 유자량인데 은청광록대부 상서좌복야를 지냈다.” 기록. 백의관음도의 시는 『동문선』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올라 있다. 『동문선』에서는 작자가 석익장,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유자량(1150∼1229)으로 나온다. 그 유자량이 기록된 묘지명을 보게 된 것.

 

인연 아닌 것이 없을 터. 이 글 또한 인연이다. 마을 사진작가 마동욱과는 동향의 외우. 끊임없는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 출전 : 하늘에서 본 강진-드론으로 담은 강진군 마을-(마동욱), 시와 사람, 2019.3

- 전시 2019.3.12(화)~3.19(화), 강진고등학교 중앙홀, 오프닝 2019.3.12(화) 17:00

 

 

사진 : 마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