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085 - 전남의 돌담7 완도 청산도(靑山島) 상서(上西)마을 옛 담장

향토학인 2017. 2. 17. 17:31

인지의 즐거움085


완도 청산도(靑山島) 상서(上西)마을 옛 담장
전남지방의 돌담7


김희태


‘완도 청산도(靑山島) 상서(上西)마을 옛 담장’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리  상서마을에 소재하며 길이는 약 1,026m, 등록 고시 지적은 10,617㎡(상동리 280-1번지 등 32필지)이다. 등록문화재 제279호(2006.12.04 등록 고시)이다.


완도군 청산면 상서리는 완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상동(上洞)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주민의 거주는 17세기 이후 임진왜란 때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소개(疏開)되었다가 이후 다시 입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681년(숙종 7) 이곳에 만호진이 설치되었으며, 이후 신지도로 이전되었다. 마을 뒷편에 매봉산의 산세가 드높게 펼쳐 있으며 마을전면에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상서리(祥瑞里)로도 표기 했다고 한다.


지금의 상동리(上洞里)는 상서리(上西里, 祥瑞里)와 원동리(元洞里) 두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청산도는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강진현에 속했다. 조선시대 후기 호구와 동리를 기록한 관찬 『호구총수(戶口總數)』(정조 13, 1789년)[奎 1602]에는 강진 청산도 소속으로 20개소의 마을이 나오는데 ‘갈리(乫里)’와 ‘동리(洞里)’가 있다. 갈리가 상서리, 동리가 원동리가 된다. 


갈리의 ‘乫’은 ‘加+乙’로 쓴 이두식 표기이며, ‘더할 加+乙>더+ㄹ>덜’로 되어 ‘덜리’라고도 한 것이다. ‘乫里’는 갈라진 곳에 있는 마을을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청산도 : 동촌리(東村里), 사정리(射亭里), 갈리(乫里), 동리(洞里), 해의리(海衣里), 신흥리(新興里), 양지리(陽地里), 부흥리(復興里), 구성리(舊城里), 신교리(新橋里), 작동리(自洞里), 읍리(邑里), 당리(堂里), 도장리(道長里), 불목리(佛目里), 도청리(都廳里), 지구미리(池仇味里), 굴거리(屈巨里), 진산리(陳山里), 여서도(餘鼠島)


조선후기[1872년]의 청산진지도(靑山鎭地圖)[奎 10515]에 ‘상서리’와 ‘동리’가 표기되어 있다. 청산도는 동면과 서면으로 구성되었고 상서리와 동리는 동면의 1개 리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상서리와 동리에는 ‘自官七里[관으로부터 7리]’라 하여 청산진 본진으로부터의 거리가 표기되어 있다. 청산진은 남해안 방어의 전초 기지로 수군진 진영은 청산면 당낙리 일대에 있었다. 수군첨절제사를 두어 수방장(守防將)을 겸하게 하였고 전라우수영 관할하에 있었다.


1895년 윤5월에 전국 8도를 23부(府)로 개편할 때 나주부 강진군에 속하게 되며, 1896년 2월에 신설된 완도군(莞島郡)에 속하게 된다. 1896년 8월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한다. 1912년 기록에서는 강진군 청산면이 20개 마을 가운데 동리와 상서리로 표기된다.


     堂里, 邑里, 道洛里, 道淸里, 池里, 新豊里, 淸溪里, 復興里, 洞里, 陽池里, 中興里, 上西里, 東村, 新海里, 菊花里, 珍山里, 新興里, 東里, 西里, 北里(조선총독부,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1912)


1914년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하면서 상서와 동리가 합해져 상서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김정호, 『지방연혁연구』 -전남을 중심으로-, 1988. ; 윤여정, 『대한민국행정지명』제1권 전남․광주편-, 향지사, 2009.)


상서마을은 마을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농경지의 경계도 돌담으로 되어 있다. 비록 새마을운동 당시 부분적으로 이축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축조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옛날의 경관과 정취가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청산도의 상서마을 옛 담장은 바람이 많은 도서지방의 환경에 맞게 강담구조로 견고하고 높게 축조되어 있다. 특히 굽어진 마을 안길과 함께 서로 비슷한 높이로 축조된 담장은 가옥형태와도 조화가 된다. 특히 전체적으로 옛 담장이 모아져 있다. 도서마을의 공간 구조와 민속을 보존하는데 담장의 역할은 크다고 여겨진다.

상서마을 담장은 도서지역의 환경 및 마을공동체 문화적인 환경을 토대로 축조된 것으로 어촌지역의 주거문화는 물론 세시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따라서 공간 민속의 하나인 담장은 민속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는 학술적인 가치도 있다 하겠다.(완도군, 『완도 청산도 상사마을 옛 담장 정비 기본계획』, 2007 ; 문화재청, 『2006년도 등록문화재 등록조사보고서』, 2010)


* 김희태, 전남지방의 돌담, <전남의 민속문화>, 국립민속박물관, 2011, 164~215쪽


청산도 돌담길(사진 : 국립민속박물관)

 청산도 돌담(사진 :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