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전남의 장승 솟대 신앙 현장을 기리며, 박호원선생 영전에

향토학인 2018. 7. 25. 19:00

나의 이야기

 

전남의 장승 솟대 신앙 현장을 기리며, 박호원선생 영전에

 

김희태

 

<전남지방의 장승·솟대신앙> 학술보고서

전 국립민속박물관 과장 박호원선생

언뜻 보면 관계가 있을까 싶다.

 

1996년의 일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남지방의 장승·솟대신앙>이라는 "묵직한" 학술보고서를 간행한다. 549쪽.

 

중앙기관이고 국립박물관이기도 하지만 분량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그 무게감이 있어 “묵직한”이라는 용어를 써 본다. 돌아보니 20십 수년 세월이다.

 

1988년 강원지방(170쪽), 1990년 경북지방(178쪽), 1994년 전북지방(372쪽), 1994년 충북지방(370쪽) 조사를 해 보고서가 나왔는데, 분량면에서 <전남지방 장승·솟대 신앙>은 단연 앞 선다. 그만큼 현장 유산이 많다는 점, 충실한 조사를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전남 지방 장승 조사를 맡아 하면서 박호원선생과는 자주 현장에서 만났다. 학술기관이나 연구자들이 조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단순한 제보자로서가 아니다. 공동 조사자로서였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시행하는 학술조사 사업인데, 전남 지방의 연구자로서 함께 참여 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진으로만 조사를 실시하였다. 전북은 2개 시군을 민박팀과 공동으로 지역 연구자 2명만이 참여했다.

 

어찌보면 국립민박으로서는 “통크게” 지역 연구자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뒤에 그 속내를 엿보니 박호원 선생이 있었다. 장승·솟대 신앙 조사 사업의 주무로서 제안을 했던 것. 그렇더라도 지역연구자의 참여는 어렵사리 성사되었을 게다. 그 뒤로도 장승·솟대 조사는 계속되어 1997년 경남지방(경남 471쪽, 제주 177쪽), 1998년 경기지방(234쪽)이 발간된다.

 

전남 광주지방의 연구자로는 강현구(향토문화개발협의회 전문위원, 당시 직명), 김희태(전남도청 문화재 전문위원), 선영란(향토문화개발협의회 간사)이 참여 하였다. 모두 다섯 차례의 공동조사를 했다. 1994년 2월과 3월, 8-9월, 10-11월 등 4차례, 그리고 1995년 2월에 한 차례이다. 우리 지역 연구자들은 수시로 현장을 드나들면서 조사를 하고 자료를 제공하면서 공유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모아져 “묵직한” 보고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보고서의 전담 집필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하였다.

 

- 여수시, 순천시, 여천시, 여천군, 곡성군, 보성군, 해남군, 진도군 : 박호원

- 무안군, 함평군 : 김삼기

- 광주광역시, 영광군, 화순군 : 강현구

- 나주시, 담양군, 장성군 : 김희태

- 강진군, 신안군, 영암군, 장흥군 : 선영란

 

전국에 걸친 장승·솟대신앙 조사사업은 단일 민간신앙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와 민속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국립 연구기관으로서 당연한 책무라 할 수 있지만, 30여년전에 단일 민간 신앙유산에 대해 장기 조사 계획을 세운 다는 것은 어려웠을게다. 이 조사는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성과를 이어가고자 지역별로 계속되어, 1994~5년 전남 현장에서 박호원선생과 만났던 것이다. 그냥 “만남”만이 아니라 공동 조사로 “협업”하여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협업"이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지만, 예전에는 “먼 나라” 일이었다.

 

그때 보고서를 보니 조사는 국립민박에서 박호원, 이관호, 황보명, 김종대, 김삼기, 기량, 광주·전남 지역 연구자로, 강현구, 김희태, 선영란이 보인다. 실내 작업은 민박팀의 김혜정, 안영숙. 사실, 보고서가 간행되면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즐거움의 자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런 뒤로 이십여년, 박호원선생은 민속원 출판사에서 민속학 전문학술지 간행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또 몇 년이 지나고. 이제는 “관직”의 허울을 벗었으니 차분히 만나 옛 정담부터 되새겨 보리라 했건만, 웬 걸 뜬금없는 소식이다. 이승살이 61년. 동학 동년배로서 억장이 무너진다. 명복을 빈다. 영면을 바란다. (2018.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