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080
담에 대한 기록 - 고봉이 본 가을 돌담, 다산이 읊은 봄 담장
전남지방의 돌담2
김희태
담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먼저 살펴 보자. 담이란 집터나 일정 공간의 둘레를 둘러막는 건축구조물이다. 담을 쌓는 까닭은 밖으로부터 안을 보호하고 침입을 막기 위하여,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공간을 서로 다른 성격으로 나누기 위해서이다.
* 담에 대한 역사 기록은 주남철, 담, <한국민족문화재백과사전>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69쪽~171쪽 ; 주남철, <韓國建築意匠>, 일지사, 1979 ; 주남철, 한국건축에 있어 담[墻]에 관한 연구, <한국문화연구원논총> 28, 1976 ; 김정기, 문헌으로 본 한국주택사, <東洋學> 7, 1977 따위가 참고가 된다.
담을 언제부터 쌓았는지는 확실히 밝히기 어려우나, 대체로 성읍국가시대를 상한선으로 하고 있다.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 사이에 주거의 차이가 생기면서, 신분에 따른 위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담과 같은 구조물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이나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 변진조(弁辰條)에 보면 변한과 진한의 성곽에 관하여 언급한 바가 있는데, 이때의 성곽은 바로 담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의 분묘건축인 용강대총 전실남벽누각도(前室南壁樓閣圖)를 보면, 벽화의 아래 중앙에 누각으로 보이는 우진각지붕의 건물이 있다. 그 뒤로 또 다른 전각의 지붕들이 보이며, 그 전각들의 양옆으로 기와지붕을 한 건축물이 줄지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ㄱ자로 꺾인 담이다. 그 담은 수키와와 암키와로 지붕을 만들었는데, 조선시대의 주택이나 궁궐의 담과 같은 것이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송도의 유적에서 궁벽토장(宮壁土墻)의 흔적이나, 소격전(昭格殿)의 장벽(墻壁)을 발견하였다는 사실로 고려시대의 담건축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사> 열전(列傳)에 기와와 자갈로써 담을 쌓고 화초(花草)무늬를 만들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화초담이 고려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의 기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창름의 제도는 관약(關鑰 빗장이나 자물쇠)을 걸지 아니하고 밖에 담장[墻垣]을 쌓되 오직 문 하나를 내어 도적을 막는다.’(倉廩之制 不施關鑰 外爲墻垣 唯開一門 以防盜竊)(<선화봉사고려도경> 제16권 관부(官府) 창름(倉廩)조)라는 기록이 확인된다. 담장이 국가의 시설물과 연관되고 건물의 안과 밖을 가르는 기능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고려시대 말기의 문인 이곡(李穀, 1298~1351)은 홍수가 난 성안에서 물고기를 잡는 경관을 시로 읊는다. 무너진 담장도 등장한다.(이곡, 久雨水漲 城中多捕魚[오랜 비로 물이 넘치는 바람에 성안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다.], <가정집> 제16권 律詩)
밤부터 새벽까지 주룩주룩 낙숫물 소리 / 浪浪簷溜夜連明
담장은 모두 무너지고 뜰은 온통 진흙탕 / 環堵皆頹泥滿庭
조선시대의 주택에서 사당(祠堂)을 건축하고 주위에 담을 쌓는 것은 담 안의 공간을 신성화하여 제사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또, 행랑마당이나 사랑마당 등에 쌓은 담은 이들 두 공간 사이에 위계질서를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기록을 통하여 살펴보자. 조선시대 전기의 성리학 이론가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1527~1572)은 어느 해 시월, 서리 내린 담장의 정경을 읊는다.(기대승, 小春, <고봉속집> 제1권 시) 고봉은 광주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활동한다. 전라도 집의 담장을 형상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벼운 서리는 담장의 풀을 공교로이 아껴 주고 / 微霜巧貸墻根草
따뜻한 햇살은 언덕 위 사람을 두루 쪼여 주네 / 煖日偏烘陌上人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로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1801~1818)을 한 다산 정약용(1762~1863)은 적거지의 경관을 노래한 다산팔경사(茶山八景詞)의 불장소도(拂墻小桃)에서 다음과 같이 읊는다.(정약용, 다산팔경 노래[茶山八景詞], <다산시문집> 제5권 시 ;한국문집총간 281집 98쪽)
담을 스치고 있는 산복숭아나무 / 拂墻小桃
산허리를 경계로 널따랗게 쳐진 담장 / 響牆疏豁界山腰
붓으로 그린 듯이 봄빛이 변함없네 / 春色依然畫筆描
어찌 그리 맘에 들까 산에 비가 멎고 난 뒤 / 愛殺一溪新雨後
복사꽃 몇 가지가 예쁘게 펴 있는 것이 / 小桃紅出數枝嬌
* 김희태, 전남지방의 돌담, <전남의 민속문화>, 국립민속박물관, 2011, 164~215쪽
* 이곡 시(<가정집> 제16권 律詩)
오랜 비로 물이 넘치는 바람에 성안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다
/ 久雨水漲 城中多捕魚
밤부터 새벽까지 주룩주룩 낙숫물 소리 / 浪浪簷溜夜連明
담장은 모두 무너지고 뜰은 온통 진흙탕 / 環堵皆頹泥滿庭
사방팔방에 구름은 옅은 먹빛 한가지요 / 四海八荒雲一色
탁한 경수 맑은 위수 형색이 다르지 않네 / 濁涇淸渭水同形
어느 때나 공중의 태양을 볼 수 있을까 / 何時得見當空日
저 달은 오히려 호우의 별을 따르나 봐 / 彼月猶從好雨星
가뭄에 병든 농부들 지금 또 눈물짓는데 / 憂旱老農今又泣
물고기 실컷 잡았다는 성시의 괜한 소문들 / 謾傳城市厭魚腥
한국고전번역원, 이상현역, 2007
고봉 기대승(1527~1572)의 시 小春
3연에 '微霜巧貸墻根草(가벼운 서리는 담장의 풀을 공교로이 아껴 주고)'라 하여 가을 담장의 정경을 읊고 있다.
시월을 예부터 소춘이라 부르는데 / 十月從來號小春
지금도 천기가 다시 돌아와 새롭네 / 秖今天氣更回新
가벼운 서리는 담장의 풀을 공교로이 아껴 주고 / 微霜巧貸墻根草
따뜻한 햇살은 언덕 위 사람을 두루 쪼여 주네 / 煖日偏烘陌上人
석양의 까마귀들은 고목에 모여들고 / 薄暮烏鳶盤古木
맑은 새벽안개는 더러운 먼지 적시네 / 淸晨煙霧浥淤塵
알겠구나 절서가 모진 추위 다가오니 / 須知節序行嚴冱
창을 막고 옷을 껴입고 원기 길러야 함을 / 墐戶兼衣且養眞
한국고전번역원, 장순범·이성우공역, 2007
다산 정약용(1762~1863)이 적거지의 경관을 노래한 다산팔경사[茶山八景詞]
제1경이 불장소도(拂墻小桃, 담을 스치고 있는 산복숭아나무)로 강진의 봄 담장이다.
다산팔경 노래 / 茶山八景詞
담을 스치고 있는 산복숭아나무 / 拂墻小桃
발에 부딪치는 버들개지 / 撲簾飛絮
따뜻한 날에 들리는 꿩소리 / 暖日聞雉
가랑비 속에 물고기를 먹이는 일 / 細雨飼魚
단풍나무가 비단바위에 얽혀 있음 / 楓纏錦石
국화가 못에 비침 / 菊照芳池
한 언덕의 대나무가 푸르른 것 / 一塢竹翠
만학의 소나무 물결 / 萬壑松濤
'인지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지의 즐거움082 - 전남의 돌담4 강진 병영(兵營) 마을 옛 담장 (0) | 2017.02.17 |
---|---|
인지의 즐거움081 - 전남의 돌담3 재료와 종별, 기능에 따른 다양한 분류 (0) | 2017.02.17 |
인지의 즐거움079 - ‘곡성 죽동농악’과 함께한 현장과 공간, 사람들 -곡성 죽동6- (1) | 2017.02.15 |
인지의 즐거움078 - 호남좌도의 본 터, 곡성과 옥과 -곡성 죽동5- (0) | 2017.02.15 |
인지의 즐거움077 - 곡성읍, 산은 동악에서 솟고 강은 순강을 둘렀다 -곡성 죽동4- (0) | 2017.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