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418
쌍용이 머리를 맞대고 치솟는구나 – 장흥 고싸움줄당기기
김희태
줄다리기는 풍농이나 풍작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화합과 단결을 다지는 상징적 행사로 전통의례이자 민속놀이로서 벼농사문화권[도작문화권]에서 널리 전승됐다.
아직 무형유산 지정이 안됐다고?
줄다리기는 두 팀이 줄을 잡아당기는 단순한 형식이지만, 본질은 승부가 아닌 공동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에 있다. 이 놀이 속에는 인간과 자연, 마을과 마을 간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부터 각 지역의 줄다리기가 국가무형유산과 시·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2015년 캄보디아·필리핀·베트남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공동등재되었다. 당진 기지시줄다리기를 중심으로 창령 영산줄다리기(국가 무형), 삼척 기줄다리기, 밀양 감내게줄당기기, 의령 큰줄당기기, 남해 선구줄끗기 6개 종목이 포함되었다. 등재과정에서 한국전통줄다리기전승단체연합회가 결성되었다.
그런데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나 광양 용지큰줄다리기는 지금도 연행을 하고 있지만 이 단체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무형유산 지정 종목의 보유단체가 연합회 구성의 기본 요건이라는 것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1970년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바 있다. 광양 용지큰줄다리기는 김풍작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라는 특징이 있으며 1993년 남도문화제[현 전남민속예술축제]에서 우수작품발굴상을 받은 바 있고, 지금도 해마다 축제를 열고 있다. 영암 도포제줄다리기는 1990년 남도문화제 종합최고상, 1991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우수상(3위)을 수상한 바 있다.
이같은 역사성이 있는데 무형유산 종목 지정이 안되어 있어서 줄다리기연합회 구성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더욱이 줄다리기는 도작문화권의 대표적 민속놀이인데, 그 벼농사 문화권의 중심이라 할 ‘농도 전남’의 줄다리기 문화자원이 제 대접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가치 넘치는 정월대보름 민속놀이
2013년 줄다리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논의가 진행될 때 문화재청에서 전국 줄다리기 현황을 조사한 바 있다. 전남에서는 13개 사례를 조사하여 자료를 제출하였다. 이들 자료가 모아진다면 줄다리기 무형유산 기록자료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국가유산청에서 추진하는 미래무형유산 1차연도에 장흥 고싸움줄당기, 2차 시기에 광양 큰줄다리기가 선정되었다. 의지가 모아진다면 전승은 지속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전남 장흥군 장흥읍을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정월대보름에 행해져 온 전통 민속놀이로, ‘고싸움’과 ‘줄당기기’가 함께 연행되는 독특한 고을형 축제이다. 탐진강(예양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부동(府東)과 서쪽의 부서(府西) 지역이 편을 나누어 경쟁했다. 당시 장흥도호부와 벽사도[역]라는 두 행정기관이 강을 사이에 두었던 지역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고줄’은 볏짚을 엮어 만든 대형 새끼줄로 암고(서부)와 숫고(동부) 두 줄을 장흥읍 행원리 중심으로 제작하며, 길이 약 200m, 머리 지름 2m 정도로 내부에 대나무를 넣어 강도를 높인다. 제작 과정은 마을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공동노동으로, 세대 간 협력의 장이 된다.
연행은 고싸움, 줄당기기, 행군(시가행진)의 순서로 진행된다. 고싸움에서는 양편 장정이 어깨로 고를 받쳐 부딪히며 고머리가 먼저 땅에 닿는 쪽이 진다. 줄당기기에서는 두 고줄을 비녀목으로 연결해 당기며, 여성들도 줄 꼬리를 잡고 함께 참여한다. 행사 당일에는 고머리에 태극기와 군기를 꽂고 청사초롱을 달아 장식하며, 농악대가 흥을 돋운다.
이 놀이는 대규모 향촌 축제로 관 주도였다가 1930년대 이후 단절되었는데 1970년 제1회 보림문화제에서 재현되었다. 이해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여 가치를 다시 인정받았다. 이후 장흥군민의 날[보림문화제]를 통해 격년제로 이어지고 있다. 2024년에 장흥군 향토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공동체의 힘과 조화 이어지길
1917년 《전남사진지》에 실린 장흥 줄당기기 사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줄당기기 사진으로 평가된다. 1918년 장흥 선비 이인근(李寅根, 1883~1949)의 한시문에도 징과 북이 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들로 쏟아져 나와 힘을 모으던 웅장한 장면과 공동체적 열정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무오년 정월 백형 삭전운에 차운하다(戊午正月次白兄索戰韻)」라는 칠언 율시이다.
징 북소리 시끌벅적 호령소리 분명하니
동서의 형세 두 편으로 나뉘어 일어나네
용과 호랑이 천근의 힘으로 다투어 싸우고
땅과 하늘 만인의 소리로 기울고 무너지네
鉦鼓喧喧號令明 東西形勢兩分生(정고훤훤호령명 동서형세양분생)
龍爭虎鬪千斤力 地塌天崩萬仞聲(용쟁호투천근력 지탑천붕만인성)
김옥섭(金玉燮, 1878~1930)은 「상원일 줄당기기를 보다(上元日 觀索戱)」는 시를 남긴다. 그 시상을 헤아려 보면 “머리를 맞댄 두 용이 들판에서 싸우는 듯 북소리와 함성으로 하늘이 진동하고, 승부는 팽팽하나 끝내 웃으며 마무리하니 싸움은 곧 화합이요 경쟁은 곧 축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헌과 기록, 전승사례를 통해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지역사와 문화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들판과 시장, 강변 등 일상공간이 곧 놀이마당이 되었으며, 줄의 한 가닥은 당산나무에 걸려 마을의 안녕을 상징했다. 쌍용이 맞붙은 그날의 함성은 오늘날에도 공동체의 힘과 조화, 그리고 풍년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전 : 『대동문화』 151, 우리곁의 미래유산 2025년 11·12월호, 6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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