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화재

새문화재 - 고싸움줄당기기, 농가집성, 경주이씨 이세충효문 3건 장흥군 향토문화유산 지정, 2023.04.10.

향토학인 2023. 4. 24. 04:09

새문화재

 

고싸움줄당기기, 농가집성, 경주이씨 이세충효문 3건 장흥군 향토문화유산 지정, 2023.04.10.

 

장흥군 향토문화유산 3건이 새로 지정되었다. 장흥군은 324일 향토문화유산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고싸움줄당기기, 농가집성, 경주이씨 이세충효문 3건을 지정하기로 심의하였고 4월 10일자로 지정고시하였다. 장흥군에서는 장흥군 향토문화유산 보호 관리 조례2015112일 제정하여 지금까지 16건을 지정하였고, 이번에 3건이 지정되어 모두 19건이 되었다.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장흥군 장흥읍 일원에서 조선시대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에 행하여지는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고싸움과 줄당기기가 행해지던 전통민속놀이이다. 줄당기기는 고을형과 마을형으로 나뉘는데,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장흥도호부가 있던 서부 고와 벽사역이 있던 동부 고로 줄패가 나뉘어 행해지던 고을형 민속놀이이다.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고싸움과 줄당기기 두 가지 놀이가 한개의 고줄로 바로 이어져 우리나라 줄당기기(줄다리기)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1917년에 탐진강(예양강) 강터에서 행해지는 사진이 <전남사진지>(목포신보사)에 전하는데, 우리나라 줄당기기 사진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18년에 장흥 선비 소천 이인근이 줄당기기를 보고 지은 시가 있는 등 기록자료가 전한다.

 

1970415일 제1회 보림문화제 때 재현을 하였고, 19701021~23일 광주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그 뒤로 매년 또는 격년제로 군민의날·보림문화제 때 시연을 하고 있다.

 

고줄 제작은 원래 동부(원도, 관덕, 상리, 행원등)와 서부(충렬, 남외, 교촌 등)에서 각각 제작했으나 1970년 재현 이전부터 장흥읍 행원리에서 마을주민 공동 작업으로 만들고 있다.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향토성, 학술성, 대표성이 드러나는 전통 민속놀이로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할 가치가 크다.

 

*전승지 : 장흥군 징흡읍 일원, 고줄 제작 : 장흥읍 행원리

고줄 제작(1994, 행원리, 사진 양기수)

고줄제작(2023, 행원리, 사진 김상찬)

고싸움(1970, 원도리, 사진 지춘상교수)

고싸움(1992, 탐진강, 자료 김전환)

줄당기기(2017, 사진 마동욱)
고싸움줄당기기 전경(2017, 사진 마동욱)

농가집성(農家集成)

 

<농가집성>은 농정, 작물, 원예, 축산, 잠업, 식품 등을 망라한 종합 농서이다. 귀족호도박물관 소장 <농가집성>은 전남도(전라도) 관찰사 조계원(趙啓遠, 1592~1670, 1656.08~1658.02 재임)1656(효종 7)에 중간(重刊)한 목판본이다.

 

초간본(初刊本)1655(효종 6) 공주목사 신속(申洬, 1600~1661)이 편찬하였다.

 

<농가집성>조선 전기에 출간되었던 <농사직설(農事直說)>·<금양잡록(衿陽雜錄)>·<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의 세 농서를 기본으로 세종의 권농문(勸農文)과 주자(朱子)권농문(勸農文)등을 보충·증보하였다.

 

<농가집성>은 조선 후기 농촌생활사와 농업기술의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여러 작물의 품종명에서 이두와 한글의 표기가 많이 나와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농서이다.

 

특히 장흥 소장본은 전남도관찰사가 전주감영에서 출판한 중간본으로서 역사성과 함께 전존본도 수량이 적다는 점에서 희귀성도 있다. 그리고 <금양잡록(衿陽雜錄)>의 농사노래(農謳, 農歌) 14수는 존재 위백규(1727~1798)의 농가(農歌) 등 가사문학 작품과도 비교 연구할만한 자료이다. 향토문화유산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소재지 : 장흥군 장흥읍 남부관광로 56-90 귀족호도박물관

농가집성 표지

1656년 전남도(전라도) 조게원의 관찰사 농가집성서(農家集成書)

농사직설(農事直說)(앞부분) - 곡식의 씨앗 준비 (備穀種)

곡식의 씨앗 준비 (備穀種) - 농사직설 앞부분

아홉 가지 곡식의 씨앗을 거두는 데는 굳고 실한 것을 취하되 잡된 종자가 섞이지 않고 젖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젖었다는 뜻은 수분이 많아변질의 염려가 있는 상태, 씨앗이 잘 여물지 않으면 이삭도 잘 여물지 않으며 이른바 병을 태()에서 잉태한 것과 같은 것이다. 종자가 섞이면 숙기가 고르지 않으며 종자에 수분이 많은즉 발아하지 않고 발아하여도 여물지 않는다)

 

쭉정이는 키로 까불어 버린 뒤에 물에 담가 뜨는 것은 건져 버리고 가라앉은 것만을 씻어내어 충분히 말린 다음 습기가 없는 상황을 헤아려 짚으로 엮은 그릇 따위에 단단히 저장하여 둔다. (짚으로 엮은 그릇은 시골말로 공석()이라 하며 습기가 약간만 있어도 변질은 많아진다.)

 

다음해의 작황이 좋을 곡종을 미리 알아보기 위하여 아홉 가지 곡식의 씨앗을 한 되씩 각각 다른 베자루에 넣어 움집 안에 묻어둔다. (사람이 그 위에 앉거나 눕지 말도록 해야 한다.) 50일이 경과한 뒤 꺼내어 다시 되어보아 가장 많이 불어난 곡종이 그해 풍작이 될 곡중이다. 토양의 성질은 곳에 따라 다르므로 각 마을로 하여금 시험케 하여 작황이 좋은 곡종을 알아보아야 한다. [속방(俗方)에는 동짓날에 묻어 두었다가 입주일에 꺼내어 본다.]

 

겨울에 옹기나 나무로 된 그릇을 땅속에 잘 묻어 놓고 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섣달에 눈 녹은 물을 많이 모아 담아 짚 등으로 엮은 자리(시골 이름으로 비개라 한다)로 두껍게 덮어 됐다. (옛글에 이르기를 눈은 5곡의 정기라 하였다.)

 

파종할 무렵에 씨앗을 눈 눅은 물에 담갔다다 걸러서 볕에 말리기를 세 번(조선초기 농사직설 원본에는 2회임)하거나 혹은 나무 그릇에 마소의 외양간 오줌을 담아 그 속에 씨앗을 담갔다가 걸러네어 볕에 말리기를 세 번 되풀이 한다.

* 농촌진흥청 국역자료 인용(<농가설(農家說)위빈명농기(渭濱明農記)농가월령(農家月令)농가집성(農家集成)>-고농서국역총서7, 2004)

금양잠록(衿陽雜錄)-농사노래(農謳, 農歌)

 

농사노래(農謳)(부분)

 

1. 우양약(雨暘若 : 비 오고 햇볕 남이 조화를 이룸)

성스런 임금이 나라를 세우니

숨은 먹이 가만히 통하여

철에 맞게 날씨가 좋았네.

음양이 잘 갖추어지니

곡식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네.

흙덩이 갈라지지 않고 나뭇가지 흔들리지 않은 채

음양이 교감하여 조화를 이루었지.

! 농부가 임금 덕택 입은 줄 알겠는가?

태평하게 밭 갈고 우물만 팔 뿐이지.

 

2. 권로(捲露 : 이슬 길을 헤침)

새벽에 호미 메고 들판에 나가는데

질펀한 그 이슬 아직도 안 말랐네.

우리네 농작물 자라게 하는데

내 옷을 적신들 무슨 상관있겠는가?

 

3. 영양(迎陽 : 아침햇살을 맞이함)

산머리에 아침 해 막 떠오르니

가지런한 볏모 잎 손바닥처럼 평평하네,

햇살을 맞이하며 밤에 나가 김매니

아름다운 곡식이 날마다 잘 자라네.

* 농촌진흥청 국역자료 인용

 

경주이씨 이세충효문(慶州李氏 二世忠孝門)

 

경주이씨 이세충효문은 단암 이관빈(壇庵 李觀彬, 1755~1822)과 아들인 수명당 이동의(水明堂 李東儀, 1775~1834) 부자 이세충의와 효행을 기려 1865(고종 2) 명정으로 1879년에 건립한 정려(旌閭)이다.

 

충효 행적은 국가 관찬 기록인 <승정원일기>에 증직 사실이 기록이 되어 있고, 충효문은 가구 구조가 튼실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유형적 가치가 크다.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충효 정신을 계승하고 교육의 지표로 삼을 가치가 있다.

 

*소재지 :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446-4(산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