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69 - 나주 문사 아홉명의 연방(蓮榜) - 나세찬의 「금성경사를 읊다(詠錦城慶事)」 -선현들의 詩文속에서 羅州를 읽다2-

향토학인 2022. 5. 26. 08:07

인지의 즐거움269

 

나주 문사 아홉명의 연방(蓮榜) - 나세찬의 금성경사를 읊다(詠錦城慶事)

-선현들의 詩文속에서 羅州를 읽다2-

 

김희태

 

나세찬(羅世纘, 1498~1551)선생의 시 금성경사를 읊다(詠錦城慶事)1480(성종 11)에 나주의 문사 9인이 연방(蓮榜)한 경사 사실을 읊은 것이다. 연방(蓮榜)은 조선 시대 소과(小科)인 생원시와 진사시의 향시(鄕試)와 회시(會試)에 급제한 사람의 명부를 말한다. 아홉명이 나란히 급제자 명부에 올랐음을 말한다. 시의 주석에 자세한 경위가 있다.

 

우리 성종 14에 본 주[나주]의 문사 9인이 연방에 이름을 연하였다. 당시의 목사 김춘경의 중자 숙훈이 또한 동방하였으므로 한때에 금성관에 경사스럽게 모였다. 본주의 교수 박성건이 별곡 6장을 지어서 찬미하였으니, 김숭조와 홍귀지는 나이가 어려도 재주가 능하였고, 김숙훈과 최귀원은 부모가 함께 생존해 있고, 나환흥과 나경조는 형제가 무고하였고, 나진문과 나처광은 비로소 가풍을 일으켰고, 나현과 나빈은 4촌 형제로 함께 연방를 하였다.

 

성종 14년이라 했으나 실제로는 성종 11(1480)이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던 것 같다.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을 통하여 보면, 8명은 진사시에 합격하고, 홍귀지는 생원시에 합격한다. 성종 11(1480)의 식년시(式年試)이다.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정기 시험이다. 생원시 100, 진사시 100명을 뽑았다. 시험일은 1480214일이고, 당일 발표를 했다. 시험장소는 두군데였는데 1소 시험관은 이조판서 서거정(徐居正) 6, 2소 시험관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예(李芮) 6인이다. 생원 장원급제는 최연손(崔連孫), 진사 장원급제는 이오(李鰲)이다.(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연방에 함께 오른 문사들은 동방(同榜)”이라 하면서 서로의 연망(連網)을 형성한다. 나주 문사 연방 9인은 당시 함께 급제했던 동기들과도 교류했을 것이다. 생원시 급제 동방으로 지지당(知止堂) 송흠(宋欽, 1459~1547),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 진사시 동방은 최형한(崔亨漢, ?~1504),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 이신의(李愼意) 등이 보인다. 이들과 나주 문사 9인과의 교류 자료도 찾아볼 일이다.

 

시험관과의 인연도 살펴볼만하다. 저 생원진사시의 시험관으로 맨 먼저 기록된 이는 당시 이조판서 서거정(1420~1488)인데, “나주는 전라도에서 가장 커서 땅이 넓고 백성과 물자가 번성하다. 땅이 또한 바닷가라 벼가 많이 나고 물산이 풍성하니, 이에 전라도의 조세가 모이는 곳이며 사방의 상인들이 몰려든다.”라 한 글을 지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나주목 궁실조)에 실린 벽오헌중신기(碧梧軒重新記)에 나온다. 문집(사가집)에도 나온다. 당시 나주목사가 금성관의 익헌인 벽오헌 중수를 하자 기문을 써 준 것이다. 1481년이다. 목사는 김춘경이었다. 그 목사의 아들과 나주 문사 아홉명이 전해에 소과에 급제하였고, 시험관이 서거정이었으니 분명 보통 인연은 아니다.

 

<> 1483년 사마방목의 나주거주자 현황(나주목사 아들 포함)

구분 인명 본관 거주 합격등급  
진사 나진문(羅振文) 욱지(郁之)   羅州 - 37(37/100) 가풍일으킴
진사 나경원(羅慶源) 세화(世華) - 羅州 羅純 39(39/100) 형제무고
진사 김숙훈(金叔勳) 원로(元老) 경주(慶州) 나주목사 金春卿 329(59/100) 부모생존
진사 나처광(羅處光) 자영(子榮)   羅州   331(61/100) 가풍일으킴
진사 김숭조(金崇祖) 희지(禧之) 광산(光山) 羅州 훈련원참군 金衷孫 332(62/100) 어려도 재주있음
진사 나빈(羅贇) 자미(子美) 나주(羅州) 羅州 학생 羅舜裳 339(69/100) 나현과 사촌
진사 나현(羅顯) 겸선(兼善) - 羅州 司直 羅舜衣 349(79/100) 나빈과 사촌
진사 최귀종(崔貴淙) 호호(浩浩) 수원(水原) 羅州 중직대부 崔淳 353(83/100) 부모생존
생원 홍귀지(洪貴枝)   풍산(豊山) 羅州 수의부위 洪? 220(25/100) 어려도 재주있음
  나환흥            

 

나세찬의 문집인 송재선생유고의 나경진(羅慶振), 최귀원(崔貴源)사마방목나경원(羅慶源), 최귀종(崔貴淙)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9인 가운데 나환흥은 사마방목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나경원과 나환흥은 본관이 표기되지 않았다. 나진문과 나처광은 비로소 가풍을 일으켰다 했는데, 사마시에 처음 합격한 것을 말한 것 같다. 나주목사 김춘경(金春卿, 1441~1517, 1479.3~1483 목사 재임)의 아들 김숙훈의 거주지는 경()으로 표기되었다.

 

이처럼 나세찬은 김춘경 목사 재임 때 나주향교 생도 9명과 김춘경 목사의 아들까지 10명이 소과에 급제하는 큰 경사를 맞게 된 것을 노래한 것이다.

 

이때 나주향교의 교수였던 박성건(朴成乾, 1414~1487)이 이를 기뻐하기 위해 총 6장의 경기체가 금성별곡(錦城別曲)을 짓는다. 1장은 나주의 산천경개가 뛰어남과 인물의 빼어남, 2장은 향교를 중심으로 유생들이 경사(經史) 연마에 힘쓰는 모습, 3장은 당시 나주목사 김춘경과 통판(通判) 오한(吳漢)의 선정 찬양, 4장은 박성건 교수의 교훈이 제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침을 노래했다. 5장에서는 김숭조(金崇祖) 10명의 급제자들을 열거하였다. 6장에서는 풍악을 울리면서 즐거워하는 내용이다.

 

금성경사를 읊다

詠錦城慶事

 

우리 성종 14(1483;실제 1480년임)에 본주의 문사 9인이 연방에 이름을 연하였다. 당시의 목사 김춘경의 중자 숙훈이 또한 동방하였으므로 한때에 금성관에 경사스럽게 모였다. 본주의 교수 박선건이 별곡 6장을 지어서 찬미하였으니, 김숭조와 홍귀지는 나이가 어려도 재주가 능하였고, 김숙훈과 최귀원은 부모가 함께 생존해 있고, 나환흥과 나경조는 형제가 무고하였고, 나진문과 나처광은 비로소 가풍을 일으켰고, 나현과 나빈은 4촌 형제로 함께 연방를 하였다. 그래서 공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我成宗十四年戊子, 本州文士九人, 聯名蓮榜. 時牧使金春卿仲子叔勳亦同榜, 一時慶會于錦城館. 本州敎授朴成乾, 作別曲六章以美之, 金崇祖·洪貴枝, 年少才能, 金叔勳·崔貴源, 父母俱存, 羅渙興·羅景造, 兄弟無故, 羅振文·羅處光, 始起家風, 羅顯·羅贇, 四寸兄弟共占蓮榜. 故公有詩曰:

 

금성의 이 경사를 자랑하지 않을손가 錦城慶事不其誇

축하하는 북소리 열두 집에 울리도다 賀鼓淵淵十二家

이와 같은 좋은 기회는 예로부터 드무니 如此佳期稀振古

즐거워 손뼉 치며 육장가를 불러보세 懽抃朗詠六章歌

 

<송재유고(松齋遺稿) 卷之四 / 追錄>

 

나세찬, 영금성경사(송재선생유고)

김숙훈, 나처광, 김숭조 1480년 사마방목(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