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65 - 창사내력 영구전승 석각기록, 화순 천봉암 사적비

향토학인 2022. 3. 10. 01:26

인지의 즐거움265

 

창사내력 영구전승 석각기록, 화순 천봉암 사적비

 

김희태

 

강미산 천봉암 사적기비

 

전라남도 화순군땅 남면사평 너른터전 大谷한실

백록봉과 까치봉의 寺洞절터 법석펼친 庵名天峯

무자년봄 토굴정진 반야공덕 홀로이룬 獨成스님

영파정령 천축무문 법맥전승 웅찰갑사 대자수계

 

기축법당 경인독성 계사삼성 갑오무애 기해무설

기도정진 신도성원 無相定奭 전심시주 불사원만

영파당전 현왕도보 화순향토 문화유산 기해지정

창사내력 영구전승 석각기록 법력만당 화엄법계

 

천봉암 주지 독성 발원하고

혜담 덕용 인성 독견 도종 연화

무상 방정석이 치석 시주하여

불기 2565년 신축 1월 세우다

 

 

화순 사평면 대곡리 천봉암.

2020년 12월 24일. 탐방차 길을 나섰다. 일년이면 두어번, 관내를 쏘다니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곤 했던, 화순의 심홍섭 동학과 동행. 하는 일 맡은 업무가 그런지라 주로 문화재에 대한 토론을 한다. 가끔은 실없는 토론거리로 허허거리기도 한다. 다시 연말 가까이 되자 또 한번 길을 나선 것.

 

실상은 천봉암 절집의 “사적기”를 빗돌로 세우자는 논의가 있어, 글을 부탁한다고 하였다. “사적기” 비문을 지을만한 역량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곳에 있는 암각문 탁본 논의가 있어 언제 가보려니 하고 있었다. 그때 나주문화원에서 추진했던 나주금석문 탁본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이다. 차일 피일 하다가 연말께 나섰다. 그 무렵 진행하던 나주 금석문 탁본작업은 마무리가 된 뒤였다.

 

독성 주지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사적비” 서원의 사연도 들었다. 무상 정석(無相定奭)이란 분이 사적비를 세운다고 시주를 하여 돌까지 마련해 놓았다고 하였다. 방정석님은 건강이 안 좋지만 가끔 천봉암 절에 들러 온갖 일을 도맡아 처리하다가도, 홀연히 속세로 나아갔고, 또 어느 때면 절을 찾곤 하는 이. 절로서도 고마운 신도이기도 하다는 것.

 

독성스님은 2008년 무자년 봄에 토굴을 마련하고 정진하였다. 천봉암의 연원이다. 영파 정령의 법맥을 전승받았는데 갑사에서 대자수계를 하였다. 2009년 기축년에 법당, 2010년 경인년에 독성전, 2013년 계사년에 삼성전, 2014년 갑오년 무애전, 2019년 기해년에 무설전을 회향하였다.

 

2019년 기해년에는 천봉암 소장의 현왕도(現王圖)가 12월 2일자로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73호로 지정된다. 계룡산 갑사 대자암에 주석했던 정령스님이 2005년 4월 천봉암 독성스님에게 기증한 성보이다. 영파 정령은 덕숭문중으로 1964년 도봉산 천축사에 무문관(無門關)을 개설하여 불교계의 수행풍토를 조성하는데 앞장섰다고 한다.

 

현왕도(現王圖)는 인간이 죽은 후 3일이 되는 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설행하는 현왕재를 위해 조성된 불화이다. 천봉암 현왕도는 화기에 따르면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 1846~1928), 융파당(隆坡堂) 법융(法融)이 1905년[大韓光武九年] 6월 3일에 면(綿)에 채색한 작품이다. 계룡산 갑사 진해당(振海堂)에서 조성하여 대자암(大慈庵)에 봉안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약효, 법융 등 화승 집단이 전통적인 불화기법을 계승하면서 새롭게 음영 등 서양화법이 시도되고 있는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다.

 

사적기를 어떻게 정리하여야 할까. 절집이 들어선 공간과 마을 유래와 땅이름, 토굴정진과 불사 회향, 향토문화유산 지정, 사적비의 서원 등을 4언 5구 8행으로 꿰맞춰 보았다. 마지막의 네글자는 비어두고,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법어를 쓰시라” 했더니, “화엄법계”로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 인연이 되었던 암각문은 자세한 판독이 필요하다. 우선은 산명으로 “강미산”을 표기했다. 원래 화순군 남면 지역인데 2020년 1월 1일자로 “사평면(沙坪面)”으로 면 이름이 바뀌었다. 대곡(大谷) 마을은 한실로 불렀고 사동(寺洞)이라는 지명도 있다. 까치봉과 백록봉이 내려와 기운이 모인 곳이다. 창사내력을 영구히 전승하고자 석각하여 기록하니 “법력만당” “화엄법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