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31 - 조선 말기의 학자 송진봉(1840~1898)의 문집, 『사복재집』

향토학인 2024. 1. 17. 19:39

인지의 즐거움331

 

조선 말기의 학자 송진봉(1840~1898)의 문집, 사복재집

 

김희태

 

사복재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 송진봉(1840~1898)의 문집이다. 송진봉은 중암 김평묵(1819~1891)의 문인으로 위정척사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사복재집은 경인문화사에 영인본이 나왔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국문집총간 속집으로 표점영인본을 간행했고 한국고전종합DB에서 공개하고 있다.

 

장흥문화원에서 이병혁님의 정치한 역주를 바탕으로 정남진국역총서로 간행함으로써 연구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조선말기 역사문화와 사회상, 그리고 후대의 문림골의 학맥 탐구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송진봉의 자는 치승(致承), 호는 사복재(思復齋)이고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강진 평덕에서 부친 송경옥(1804~1877)43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1852(철종 2) 13세 때 부친을 따라 장흥 묵촌마을로 이거하여 남파 이희석(1804~1889)에게 수학하였다. 오남 김한섭(1838~1894), 일헌 김태한(18471913), 각재 김기열(18451914), 학남 김우(18331906), 이정석(이방언) 등과 교유하며 강학하였다.

 

188445세에 지도에서 유배생활하고 있던 중암 김평묵을 찾아가 위기지학(爲己之學)과 화서 이항로의 주리설(主理說)을 전수받았다. 1886년에는 학남 김우와 김평묵을 존모하는 강수계를 만들어 백록동규를 행하였다. 1887년에 면암 최익현에게 공부를 청하는 편지를 보내는데 이후 7편의 편지가 청양 모덕사에 보존되어 있다.

 

1888년에는 김평묵, 유중교, 송병선을 찾아가 강론을 한다. 1892년에는 월산정사에서 동학에 투신한 이정석의 삭적을 학남 김우, 오남 김한섭과 함께 논의하고 절교한다. 1895년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기우만이 의거를 일으키자 능주까지 갔으나 조정의 해산령으로 돌아 왔다. 1897년 양춘재에서 강학을 한다. 1898년 인산정사에서 59세로 생을 마친다.

 

사복재집1899년 경에 편성되었다가 1903년에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원집 6, 세계 합 3책이며 권수에는 중암 김평묵(1819~1891)1884년에 송진봉에게 지어 준 사복재기를 실었다. 이어 1903년에 기문을 권수에 편차한 의도를 기술한 기우만의 후서가 있다.

 

1은 부()(1), ()(2), (114)이다. 시는 시체(詩體) 구분을 하지 않고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상중암선생(上重菴先生, 상시감음(傷時感吟), 화박자선심설음삼십운(和朴子善心說吟三十韻)등의 장편시는 역사와 인물, 충의와 심설 등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1884년 좁은 소매옷으로 고쳐 입으라는 변복령에 항거하여 일부러 심의를 만들어 입는 시도 있다. 중봉 조헌의 항의신편을 읽의면서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시, 명나라가 멸망한 뒤 청나라에 굴복하지 않은 인물들의 춘추대의를 기리는 시, 동학교도가 크게 일어나 여러 고을이 연달아 함락되자 시국을 우려하여 지은 시등 시국과 사회사정에 관한 것이 있다.

 

반면에 사친에 관한 시나 명소를 유산하는 시, 우인들과 교류하는 시등도 있다. 오남 김한섭의 강진 대명동 한천정사의 주자 영정 모사, 경재잠 인출 등에 대한 시는 존화와 위정을 알 수 있다.

 

(, 편지)80편인데 중암 김평묵, 성재 유중교, 면암 최익현, 연재 송병선, 오남 김한섭, 동산 박희원 등 57명에 이른다. 인물에 따라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선사들에게는 기문을 지어준 것에 감사하거나 독서중의 의문점 등을 묻는 내용이다. 후학이나 문생들에게는 문목에 대한 답이나 성심 권면과 강학을 지도하는 글들이다.

 

잡저는 26편인데 묵리필록은 읽은 책이나 절의 선비 등 인물 소개와 평가 37개 조항을 엮었고, 인산만록은 경세, 정학, 이단, 이기 등에 관한 사항을 32개 조항으로 묶은 것이다. 신사 척사운동의 선두에 섰다 참형에 처해진 홍재학의 살신성인을 기린 글이나 임헌회와 고산학파의 성리설을 비판한 운림문답등이다. 기는 박재영의 만오당, 선익흠의 고헌, 학남 김우의 월산정사기 등이다.

 

()는 오상계와 유신계에 대한 것이고, (跋文)은 김류의 귤은집과 김여중의 헌헌헌문집 등이다. 행장(行狀)은 동학농민혁명 때 목숨을 잃은 송종림의 갑오사장이 있다. 김평묵, 이희석의 제문(祭文)이 있다. 부록은 위계반 등 7인의 만장, 남궁유 등의 제문 8, 행장, 유사, 묘지명, 묘갈명 등이다.

 

사복재집63책의 분량으로 다양한 문체의 글이 있다는 점, 남파 이희석에게 배워 심성과 이기의 학문 경향을 알 수 있다는 점, 중암 김평묵 문하에 들어 화서학파의 심설 논쟁에서 김평묵의 학설을 잇는 저술이 있다는 점, 위정척사의 사상을 수용하여 전통을 지키려 했다는 점, 시문과 서 등을 통하여 조선 말기 사회 사정과 장흥 권역 향촌 동향을 알 수 있다는 점, 교유 문인이나 인적 연망을 통하여 지역학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 등 역사 문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사복재집은 장흥문화원 의 문립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11집(이병혁님 역주)으로 간행되었다.

* 이 글은 역주본의 <사복재집 해제>로 쓴 글을 보완하여 향토문화 42집에 실은 글(<송진봉의 사복재집 해제>)의 맺음말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