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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학통신 ; 신간 - 천태산‧작약산을 거닐다--역주 천태유상록(天台遊賞錄)·작약유산록(芍樂山錄)-, 화순군‧전통문화연구회

향토학인 2024. 1. 16. 10:23

향토학통신 신간

 

천태산작약산을 거닐다, 화순군전통문화연구회

-역주(譯註) 천태유상록(天台遊賞錄작약유산록(芍樂山錄)-

 

천태유상록(天台遊賞錄)1652년 임진년과 1772년 임진년, 1892년 임진년에 화순의 천태산을 유람하고 남긴 명록과 시를 엮은 유상록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은봉 안방준선생이 임진년(1652)에 자손문인들과 능주 천태산에 모여 노닐면 그 충의와 강개한 뜻을 펼쳤는데 이를 기린 것이다. 은봉 9세손 안택환이 회유(會遊) 월일과 참여자의 명록을 1책으로 엮고 면암 최익현이 서문을 썼다. 1914년에 간행되었다.

 

1652년 임진년 1116일에는 은봉 안방준(1573~1654)선생을 비롯하여 아들과 제자, 후인 등 86명이 참여했고 가아(歌兒) 세명과 금아(琴兒) 네명도 함께 했다. 명록만 실려 있다. 은봉선생은 당시 80세였고 지금의 화순군 이양면 매정리에서 생활하였다.(天台遊賞錄)

 

1772년 임진년 11월에는 진사 문연박이 서문을 짓고 은봉선생의 후손인 안처악을 비롯하여 서순명의 현손 서수련 등 붕우와 문인의 후손 290명이 올라 있다. 조엽(曺熀, 1600~1665, 은봉 종질) 15인의 시가 실려 있고 1892년에 안철환 등 6인이 보운(步韻)하여 모두 21인의 시가 있다. 1652년 참여인 1(조엽), 1772년 참여인 14, 1892년 참여인 5인이다. (天台追名錄)

 

1892년 임진년 11월에는 은봉선생 9세손 안택환이 서문을 쓰고 안처악의 5세손 안종묵과 서승복 등 239인이 등록하였다. 159인의 시가 있다. 발문은 서종기, 양회원이 썼다.(天台遊續錄)

 

작약유산록(芍樂山錄)은 천태유산록과 별개의 책으로 임인년(1962) 5월에 박병수 등이 작약산을 유람하고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86인의 시가 있다.

 

<은봉(隱峯) 안선생(安先生, 안방준)이 일찍이 임진왜란(1592)에 의병을 일으키고, 후 임진년(1652)에 이르러 선생이 별 탈이 없이 그 자손·문인들과 능주(綾州) 천태산(天台山)에 모여 노닐며 그 충의(忠義)와 강개(慷慨)한 뜻을 펼쳤다. 금상(今上, 고종) 임진 사주갑(四周甲 1892)에 이르러 선생 및 당시 노닐던 사람들 자손이 이에 속유(續遊)를 다시 하였다. 선생의 9세손 택환(澤煥)씨가 그 전후의 회유(會遊) 월일 및 사람의 성명을 일책()으로 만들어 내게 한마디 말을 부탁하였다. …… , 선생이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이제 이에 3백년, 원수가 심하기 또한 선생의 시대보다 열 갑절이다. 그러나 선생의 뜻으로 뜻을 삼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아마 하늘도 감당할 수 없는 바가 있어 인심이 마침내 당연히 여기는 것인가. 그리하여 이 이치가 그치면 또한 반드시 돌이키리라 믿는 바가 있어서인가? 훗날 이 유람을 잇는 자가 선생의 뜻을 잃지 않고 각자 힘쓴다면 이 책 또한 반드시 흥기(興起)하여 감발(感發)함에 일조가 없지 않을 것이다. 이에 기록하노라.>(정유년[1897] 늦은 봄날 최익현의 서문중)

 

*번역 노병덕(盧炳德), 탈초 윤현숙, 편집 김진희 허윤형, 인물 고증 박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