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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학통신 - 향토사학계의 전설, 장흥 청재 강수의선생님 별세

향토학인 2011. 7. 3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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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령 향토사학자 강수의 전 장흥문화원장 별세

- 전국최초 개인 사진향토지 <사진 장흥 100년사> 발간-

 

 

현역 최고령 향토사학자인 장흥 강수의옹이 별세하였다. 향년 95세.

청재 강수의(靑齋 姜守義) 옹은 장흥문화원장을 3대에서 6대까지 역임했고, 최근까지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장흥문화원 고문으로 활동하였던 문화청년이었다.

 

 

청재선생은 1917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스물 한 살나던 1937년에 장흥에 정착하여 장흥군의 사진예술, 주민생활 기술보급, 부랑아 구제, 주민독서진흥에 힘써 봉사하여 왔다. 장흥문화원장으로 오랫동안 봉직해 오시면서 장흥의 뿌리찿기, 향토사 연구, 문화예술진흥 사업을 크게 선도해 오신 분이다.

 

 

특히 청재선생은 사진전문가로서 지난 1995년에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장흥백년사>는 열다섯살에 사진기술을 익힌 이래 평생 동안 직접 찍은 사진과 모은 사진 등 570여장을 중심으로 펴낸 전국 첫 개인 사진 향토지로서 큰 평가를 받았다. 특히 1946년 장흥초등교정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식 사진은 현대사 현장으로서 귀중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기 이전의 보림사 대웅보전 원형 사진은 1980년대에 복원하는데 결정적인 고증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 펴낸 <향토학문집>은 후학과 지인들이 중심이 되어 강옹의 글과 사진을 집대성하여 향토연구의 규범으로 활용하자는 뜻이 모아져 간행위원회(위원장 윤수옥)가 구성되어 1년여 준비 끝에 4․6배판, 402쪽의 분량으로 발간한바 있다. 강옹의 글 50편과 지인과 후학의 향토사 관련 글 47편, 100여장의 화보, 행장(연보)으로 구성되어 새로운 향토학문집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8년에 <향토문화> 창간호를 낸 장흥문화원지는 이제 31호까지 간행되었다. 초창기에 장흥석대들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장흥 천도교당 등을 조사하여 글을 썼는데, 천도교당은 전라남도 기념물, 장흥 석대들 동학전적지는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받기에 이른다. ‘탐진댐’으로 건설하다가 장흥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도 강옹의 열정때문이었다. 수몰지역내 문화재 보존운동과 함께 댐 명칭 개정운동을 추진했던 것이다. 결국 탐진댐은 장흥댐으로 변경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내고장사랑’의 화신이었다.

 

1991년 5월 1일 향토사업적으로 장흥군민상(교육문화상)을 수상하였고, 보림사복원추진위원, 전남 개도 100년 사진지 편찬위원(1996), 장원봉유래비건립추진위원장(2007) 등 향토사학의 선구적 활동을 하였다.

 

 

윤수옥(73세) 전 장흥문화원장은 “평생 향토사연구에 진력해 오신 강수의선생의 별세는 고전 도서관이나 현대사 박물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은 큰 손실로서, 원로 향토사학자의 지식, 경험, 경륜이 체계적으로 집대성 되는 국가정책이 하루라도 빨리 실현되었으면 싶다.”고 밝혔다.

강옹은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다. 7월 29일 장흥 공원묘지에 영면하였다.

 

 

청재 강수의(靑齋 姜守義)선생 약력

 

1917년 장성에서 태어나 스물한살 때 장흥에 정착하여

1937년 백양사진관을 차린 이래 장흥 사진업을 선도하고

1956년 백양가정양재학원을 열어 생활기술을 보급하다.

1960년부터 11년간 삼애원장을 하면서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1969년부터 15년간 장흥사진협회장으로 사진예술활성화에 힘쓰고

1979년부터 7년간 새마을문고 장흥지부장으로 독서진흥에 힘쓰다.

1979년부터 제3대에서 제6대까지 장흥문화원장을 연임하면서

열정적으로 장흥 뿌리 찾기와 향토사 연구, 문화진흥 사업을 하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1991년 5월 1일 향토사업적으로 장흥군민상(교육문화상)을 수상하다.

1995년 최초 사진향토지 <사진으로 본 장흥 100년사>를 발간하다.

그리고 보림사복원추진위원, 전남 개도 100년 사진지 편찬위원,

법무부 갱생교화위원, 장원봉유래비건립추진위원장 등을 지내고

최근까지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광주민학회 회원, 장흥학당 회원, 장흥문화원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에는 평생 쓴 향토사 관련 글을 모은 향토학문집 <향토학 백년 현장에서>를 후학들이 간행한 바 있다.

 

@ 청재 강수의 선생님 세평(<향토학문집> 발췌)

 

“장흥에는 감히 내가 견줄 수 없는 높고 깊고 넓은 내공으로 향토를 사랑하며 그 사랑을 기록으로 새겨가는 큰 어른이 있다. 언제나 어깨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고, 답사 때마다 곳곳을 부지런히 오가며 사진을 찍으시는 분이다. 개인으로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진 향토사 <장흥 100년>을 내신 걸어 다니는 향토사전이시다.”(박선홍, 전 광주민학회장)

 

 

“왕조사가 국사의 근간을 이루었던 전통사회에서 향촌의 역사와 문화는 기록되지 않았거나 소홀히 다루어 왔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몸과 가슴, 두뇌, 그리고 카메라 앵글의 눈을 빌려 향토의 역사를 순례하여 찾아 나선 문화 복원의 최일선 혁명가이며 기록 작가가 청재 선생이다.(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구순의 얼굴에 아직 청년의 웃음과 정열이 살아 있는 분. 전국의 향토사연구 모임에 가면 어김없이 만날 수 있고, 안 보이면 서운한 분. 항상 카메라를 분신처럼 메고 다니시는 분. 선생님은 영원한 문화인이자. 장흥향토사의 산 증인이시다.(이해준, 공주대학교 교수)

 

 

“원장님은 신문화의 대표 격이던 백양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사진은 그때만 해도 신문명의 상징이고 기술이고 새로운 문화에 속했던 때였으니 새로운 문화와 문명의 첨단에 서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원장님께서는 새로운 장흥문화를 이끌고 이를 실현시키시는데 평생을 기여한 것이다.”(손수익, 장흥학당 명예당주, 전 교통부장관)

 

 

“선생님은 장흥문화원장(3-6대)을 지내신 뒤에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민학회, 장흥학당, 장흥문화원 회원으로 활동하는 장엄한 모습은 모두에게 귀감이 됩니다. 구순이 넘으신 지금도 날마다 예양강변과 장흥 시가지를 사유(思惟)하시며, 보행하시는 열정과 건강은, 장흥 군민의 뇌리에 오래 남아 구전이 될 것입니다. (김기홍, 장흥문화원장)

 

 

“선생님의 주름진 얼굴에 빙긋이 웃는 모습을 보노라면, 험난한 세태에 모진 비바람에도 쓰러 지지 않고 참고 남을 배려하고 지역문화 창달에 솔선수범하신 분으로 장흥지역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참 스승이라 극찬하고 싶다.” (김학근, 광주전남사료조사연구회장)

 

 

<향토학문집 - 향토학 백년현장에서> 발간을 통해 청재 강수의 옹의 ‘향토사랑 공적 비’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더 선명히 새겨지게 될 것이며, 제2, 제3의 향토학 문집이 간행되어 원로 향토사학자의 지식, 경험, 경륜이 집대성 되었으면 싶다.”(윤수옥, 전 장흥문화원장, 청재 강수의선생 향토학 문집 간행위원장)

 

 

“아버지 마음 속 깊은 곳에 세워진 ‘장흥사랑 공적 비’를 그 누구인들 하물며 자식들인들 어찌 다 읽어내겠습니까? 돌에 새긴 공적은 세월 따라 퇴색 되겠지만, 저 깊숙한 가슴속의 거울에 비추어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의 삶이 새겨진 그 ‘양심의 공적 비’는 저희 마음에 더 선명히 남을 것입니다.”(강숙자, 큰딸)

 

 

 

 

전국 최초의 개인 사진향토지,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년사>(1995)

 

 

청재 강수의선생 향토학문집(2009년 간행)

 

 

고가(古家)를 찾아 향토학을 탐구하시던 청재선생

(장흥읍 송산리, 강봉규 사진, 2008.7.)

 

 

청재선생 어깨의 카메라, 손에 든 장흥향토사자료는 그의 분신이었다.

(2008.7., 장흥읍 기양리 57번지 자택 앞에서)

 

 

 

1946년 삼일절 기념식(청재 강수의선생 촬영, 1946.3.1, 장흥읍 장흥초등학교)

사진을 업(業)으로 삼았던 청재선생은 행사(行事)만 있다 하면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서 사진을 찍었다. 65년이 지난 오늘날 보면 장흥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다. 멀리 억불산과 남산공원, 가까이 농협창고 건물도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좌우익의 갈등이 심하지 않았던지 인민위원회 깃발도 보인다.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기 이전의 장흥 보림사 대웅보전 원형 전경. 강수의옹이 직접 찍은 것으로 1980년대에 현재 건물 복원시 결정적 고증자료가 되었다.

 

 

평생 찍은 사진과 사진기, 도구 등을 장흥군에 기증하여

전시기념관에서 후학들을 맞고 있다.

(장흥읍 칠거리 정남진 토요시장 입구길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