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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의 즐거움410 - 1935년의 기록과 1973년의 '철도' 기억, 장흥 강진사람들의 서울 나들이와 영산포역①

향토학인 2025. 9. 29. 04:11

인지의 즐거움410
 

1935년의 기록과 1973년의 '철도' 기억, 장흥 강진 사람들의 서울 나들이와 영산포역①
-2025년 9월 27일 목포보성선 개통일에 돌아보다-
 

김희태

 
1935년 4월 28일 오전 9시
1935년 4월 28일 점심
1935년 4월 28일 밤 8시 51분
1935년 4월 29일 아침 7시
 
네가지의 일정을 적었다. 장흥 용산에서 출발해 서울에 이르는 일정이다. 오전 9시에 국정을 출발해 장흥 읍내에서 대절차로 나주 영산포에 도착해 점심을 먹는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밤 8시 51분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경성 남대문역에 도착한 게 아침 7시. 장흥 용산에서 경성까지 쉴새없이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이다. 집에서 채비하고 나서면서 부터로 보면 24시간, 밤샘 기차는 11시간.
 
요즘 같으면 아침에 일찍 출발해 나주역이나 광주송정역에서 KTX를 타면 서울에 가서 점심을 먹고 회의를 하고 나서 다시 내려와 저녁은 집에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교통편이 좋아졌다. 그러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장흥 강진 해남 영암 등의 남부사람들에게 영산포역의 서울행 준급행 밤열차는 생활 현장이자 추억 여행길이었다.
 
저 1935년 여행으로부터 90년이 지나, 경전선에서 갈린 목포보성선 철도가 개통하여 <전남장흥역>에서 기적소리가 울린 2025년 9월 27일 8시 54분, 예전에 정리하다가 묵혀둔 기록을 다시 들춰 보았다. 1935년 장흥 선비가 기차를 보고 지은 시이다. 철도가 없는 장흥의 한 소년이 철도와 인연을 맺었던 52년전 1973년의 기억도 함께 돌아 본다.
 
앞에서 살핀 저 1935년의 이야기는 장흥 용산에 살던 정강 김주현(定岡 金冑現, 1890~1950) 선생의 기록이다. 1935년 4월 28일 9시 용산면 국정을 출발해 서울과 인천, 개성, 금강산을 돌아보고 5월 15일 돌아 오기까지 14일간의 여행 기록이다. 『탐승록(探勝錄)』이라 제하여 정강의 시문집에 들어 있다. 발간은 되지 않고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정강은 일상을 세밀하게 기록을 한 분이다. 1938년 5월 22일부터 1948년 12월 30일까지 10년 7개월 동안의 일기를 남겼다. 이 『정강일기』는 장흥 지역 근현대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국역본을 발간하였다.
 
처음 출발한 국정(麴亭)은 당시는 장흥군 남면 접정리를 말하고 누룩쟁이라 하였다. 남면은 1940년에 용산면으로 개칭한다. 국정에서는 정기차를 탄다. 대덕-장흥간 정기 버스이다. 장흥 읍내 자동차연합소에서 여기 저기서 온 사람들을 만나서 대절차로 출발했다. 이정원, 이직원, 김주현, 화승 이병룡, 이병운, 송재우, 위복량, 위계창, 위계중, 죽암 위계문, 오헌 위계룡, 위준식 등 모두 열세명이다. 자동차연합소는 칠거리에 있었을 듯 싶다.
 
장흥, 강진 등 남부 사람들의 서울 나들이는 영산포역이 기점이다. 영산포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는다. 모처럼의 동향의 선비들 나들이 길이라 영산포 홍어 맛집에 들렀을 법하다. 아니면 흔하지 않은 여행길이고 서로 만난지 오랜 사람도 있어, 역전의 주막가에서 막걸리 한잔 곁들여 가면서 회포를 풀면서 세상사 얘기를 했을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 정강은 한 구절을 읊는다.
 
차분히 유상을 즐김이 이제 비롯되니 
영산에 이르자마자 가슴이 탁 트이네  
기적소리 길게 울리니 발차를 재촉하고  
연기와 먼지속 행인들 어지러이 몰리네 
 
 乘閒遊賞自今始(승한유상자금시)
纔到榮山覺豁然(재도영산각활연)
汽笛一聲催發軔(기적일성최발인)  
行人雜沓暗塵烟(행인잡답암진연)

언젠가는 차를 타고 차분하게 세상 풍물을 보며 감상하고 싶다. 이제야 출발. 여러 벗들과 함께 만난다. 영산포에 이른다. 이윽고 역이다. 이제 저 큰 도회와 역사 현장을 보리라. 생각만해도 세상이 확 트인듯하다. 어쩌면 영산간 다리를 건너면서 느낀 확트임일 수도 있겠다. 이윽고 기차가 들어 온다. 기적소리 길게 울린다. 곧 출발한다는 것. 연기인지 먼지인지 사람들이 몰려든다. 승객들이 바삐 움진인다. 내리는 이 별로 없고 대부분 타는 사람들이다. 향촌 선비의 눈에 비친 영산포역 경관이다.
 
이윽고 한 밤. 8시 51분 직행 기차를 탄다. 어쩌면 장흥 선비들은 밤새 이런 말 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점심 때 막걸리를 마셨고 기차속에서는 소주를 곁들었을 것이다. 집에서 고이 싸준 육포 등 여러 안주와 함께 밤새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기차는 밤새 달려 다음날 아침 4월 29일 7시 경성의 남대문 역에 이르렀다.
 
정강은 또 한 수를 짓는다. 조선왕조의 수도 한양. 그 서울에 왔는데 오백년 역사이고 그 중심지 궁궐은 의연한 듯 하지만, 일제 치세인지라 절로 근심이 배든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이제 와 탓 할 수 없을 것이다. 돌아 보니 한강은 유유히 흘러만 간다. 아! 그 덧없음이여.
 
성조의 위업 오백 해를 흘렀건만  
궁궐을 우러러보니 근심만이 인다  
나라의 흥망 새삼 말할 필요있나  
한 줄기 한강물은 덧없이 흘러네 
 
聖祖神功五百秋(성조신공오백추)
仰瞻宮闕暗生愁(앙첨궁궐암생수)
由來興替何須道(유래흥체하수도)
一帶漢江空自流(일대한강공자류)

서울 도착해 인천을 들르고 금강산 여행을 마치고 5월 11일 남대문역에서 밤11시 기차를 타고 남행을 한다. 영산포를 도착한 것은 다음날 12일 아침 8시쯤이다. 꼬박 9시간을 달린 것이다. 장흥관에 들러 아침밥을 먹고 대절차로 출발한다. 장흥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영산포 역인지라 식당마저 장흥관(長興館)이다.
 
장흥 읍내 도착하니 마침 장날이었다. 당시 단발장려대(斷髮奬勵隊)가 동교다리 건너 칠거리쯤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동교 다리 조금 못미처 하차하여 기다리다가 오후 3시 대덕행 차를 타고 14일만에 돌아 왔다. 1935년 시절에도 장흥 사람들은 단발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여행 일행 중에도 여러사람이 갓을 쓰고 전 통 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주현의 『탐승록』은 필사본으로 1면에 10행 20자로 20장 분량이다. 장흥에서 출발해 영산포역 도착과 출발, 경성 남대문 역 도착, 그리고 마지막 날 장흥 도착 과정을 풀어서 서사로 엮어 보았다. 전체 내용은 역주을 하여 따로 소개할 예정이다.
 
1935년에 장흥 선비들이 서울행을 위해 출발한 영산포역의 호남선은 1914년 1월 11일 대전-목포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이번에 목포보성선과 연결된 경전선은 몇구간을 나누어 개통한다. 첫 시작은 1905년 마산선(삼랑진-마산), 1922년 송정리-광주역 구간, 1923년 경남선(마산-진주), 1930년 광려선(광주-여수), 1967년 순천-광양 구간, 1968년 진주-광양구간을 마지막으로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이 경전선에서 새로 난 목포보성선. 신보성역~장동역~전남장흥역~강진역~해남역~영암역~임성리역 연결 82.5km 단선비전철. 23년만의 개통으로 알려졌다. 실제로는 199812월에 이 노선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한 것이 시작이다. 7개 역 가운데 장흥역만이 유독 전남장흥역이다. 경기도 양주시에 장흥역이 있어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철도 건설과정에서 장흥군에서는 '장흥평화역'이나 '정남진장흥역' 안을 제안한 바도 있다.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 개통된 경인선이 시발이다. 그로부터 126년이 지나 이번에 장흥, 강진, 해남 등지에 철돗길이 생긴 것이다. 이 남부지역의 철도는 서남해안 지역의 주민 쾌적한 이동은 물론 물류 유통의 원활함도 꾀하고 있다. 동서교류도 큰 몫이다. 그런데 100여년 전에도 이 구간의 철도 건설 논의가 있었다.

정강 김주현(定岡 金冑現, 1890~1950) 선생의 기록『탐승록(探勝錄)』(첫면과 마지막면, 모두 20면이다. 경성에 도착해 조선 궁궐과 박람회, 경학원 명륜당, 동물원, 식물원, 남산공원도 탐승을 한다. 1935년 무렵은 우리의  민족문화가 일졔에 의해 말살되어 가던 시기이다. 저 '탐승'의 저변에는 그와 같은 '시대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지의 즐거움' 연작으로 올리기가 저어되었다. 다만, '팩트'만을  새김질하여 서사로 구성해 보았다.)

장흥 강진 등 남부사람들의 서울 나들이 통로였던 영산포역은, 이제는 추억을 회상하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옛 영산포역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현재의 저 차량(미카 5형)은 1952년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이다. 1935년 장흥선비 일행이 영상포역에서 마주쳤던 기차는 저와 같은 기관차와는 달리 석탄으로 동력을 얻는 기관차였을 것이다.
장흥 한들 들녁을 가로지르는 철도 건설 현장.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서쪽 건물선과 억불산 산자락이 만나는 지점 쯤부터 서쪽 사자산 제암산 기슭으로 이어지는 한줄기 흰선이 목포보성선 장흥 구간이다. (2021.06.08.)
탐진강 철교 건설 현장 (2016.10.24.)
장흥군 장흥읍 향양리 앞 국도(18호선) 남부관광로를 가로지르는 철도 고가교의 상판 연결 공사 현장, 안양면쪽에서 미륵댕이를 돌아 읍내로 들어서는데 한참 차가 지체된다. '사고'가 있나 하고 기웃거려 보니 저 공사가 진행중이라 길이 막힌 것. 경관 풍물을 짝는 '해찰'이 습관이지라, 승용차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찰칵. (2019.04.10.)
전남 장흥역 역사(사진 김상찬 한들문화 이사장)
본문에서 말한 '묵혀둔' 탐승록(探勝錄)』초역 자료.(2011.10.11.) 광주에서 무안 남악 신도시 전남도청 출퇴근길 매일 2시간. 버스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스마트폰으로 입력하고 메일로 보냈다가 집에 도착하면 PC에서 텍스트로 저장해 다듬기도 한다. 어떤 때는 JPG 파일로 변환해 저장해 둔다. 그게 '인지의 즐거움' 연작이 되기도 했고, 이 자료처럼 '초역' 자료로 남기도 했다. 버스 속의 '꼼지락거림'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회추세의 시대적응을 위한 몸부림 중 하나이다. 그래도 그게 블로그(티스토리)에 쌓이니 즐거운 자료관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