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409 - 장흥 보림사 외호문[일주문] 사진(1962년~1971년)을 찾습니다

향토학인 2025. 8. 22. 12:58

인지의 즐거움409
 

장흥 보림사 외호문[일주문] 사진(1962년~1971년)을 찾습니다
-제보자님께는 『보림사』와 『역주 보림사 중창기』를 드립니다. -

김희태

 
장흥 보림사  외호문(일주문)은 1711년 중창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조계문(曺溪門)이라 했는데 『보림사 중창기(寶林寺重刱記)』에 기록이 있습니다. 주지와 목수 이름도 나옵니다. 이 중창기에 1747년에 단청을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사찰 일주문으로서는 역사가 오래 되었다 하겠습니다.
 
사진으로 전하는 것은 1932년 사진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리원판 사진입니다. 지금처럼 팔작지붕이고 날듯한 형태입니다. 1936년의 보림사 전경 유리원판 사진을 자세히 보니 역시 팔작지붕이었습니다.
 
보림사는 6‧25한국전쟁기에 안타깝게도 대웅보전 등 대부분이 불에 탔습니다만, 일주문과 사천문(사천왕상 포함)은 보존되었습니다. 사천왕상은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웅보전은 당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불에 타버린 뒤에도 지정격은 유지되고 있다가 1956년 보물을 국보로 명칭을 바꾸면서 건조물은 없는 상태이지만 국보로 지정격이 이어졌습니다. 1957년에는 국보 지정 해제가 됩니다. 흔히 말하는 ‘6‧25전쟁기에 불에 탄 국보 대웅보전’, 이 표현은 일부만 맞습니다. ‘국보’가 불에 탄 것이 아니고, “불에 탄 것은 ‘보물’이었고 그 뒤로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해제”. 이게 알맞은 해설이라 하겠습니다.
 
일주문은 1972년 사진(국가기록원 소장)에서 지붕이 맞배지붕 형태임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팔작지붕 이었는데 맞배지붕으로 바뀐 것입니다. 사진 자료상으로는 1936년~1971년 사이일 것 같습니다. 좀더 시기를 한정해 본다면, 전쟁 뒤 철불을 모신 대적광전을 중건한 시기 전후로부터 아닌가 합니다. 즉 1962년~1971년 사이에 맞배지붕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일주문은 1975년 사진(국가기록원)에서 팔작지붕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팔작지붕으로 된 시기는 1972년 12월 20일 상량하면서 다시 원형인 팔작지붕으로 복원한 것 같습니다. 2014년 일주문 수리작업 시 1972년 상량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상량문에는 ‘지붕’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1972년 맞배지붕 사진이 1972년 보수사업 관련 문서에 함께 있어 그렇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하여 보림사 일주문은 처음 팔작지붕이었다가 1962년~1971년 사이 맞배지붕으로 바뀌었고, 1972년 12월 20일 이후 팔작지붕으로 원형을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962년~1971년 사이의 보림사 일주문 사진은 그 변천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하겠습니다. 이 무렵의 보림사 일주문 사진을 찾습니다. 사진을 제공해 주신 분에게는 『보림사』와 『역주 보림사 중창기』(증보 재판)를 기념품으로 드리겠습니다.
 
2022년에 사찰 일주문 8개소가 국가 지정 보물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이 지정 과정에서 보림사 일주문도 신청하여 조사 심의 대상에 들었지만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지정된 문경 봉암사 봉황문(1723년 이전), 구례 천은사 일주문(1723년)은 보림사 일주문과 같은 18세기 초반 건립 연혁이 있습니다.
 
1711년에 조계문으로 중창된 보림사 일주문(외호문). 사진(1962년~1971년)을 찾습니다.

 

보림사 일주문(외호문) 건립과 변천 자료
1936년 보림사 전경(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역주 보림사 중창기(증보 재판본)(장흥문화원, 도서출판 온샘, 2021)

 보림사(장흥문화원, 학연문화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