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407 - 비상한 인물은 비상의 시대에 출현하니, 오석균선생이 용정의 임재갑선생에게 보낸 편지, 1922년,

향토학인 2025. 8. 17. 01:16

인지의 즐거움407

 
 

비상한 인물은 비상의 시대에 출현하니
오석균선생이 용정 임재갑선생에게 보낸 편지, 1922,

 

김희태
 

 
19221029일 작성된 한통의 편지를 읽어 보자. 보낸 사람은 경성의 오석균선생, 받는 분은 간도 용정의 임재갑선생. 서울에서 만주로 날아간 편지. 무슨 사연이었을까. 어떤 분들일까. 그들은 어떤 인연일까.
 
이 편지는 19221029일 완도 출신 민족운동가 오석균(吳錫均, 법호 彌汕 1889~1973)이 동향의 독립운동가 임재갑(任在甲, 1891~1960)에게 보낸 것이다. 임재갑은 당시 완도의 독립운동 단체인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에서 용정에 파견되어 항일운동을 하고 있었다.
 
발신인 오석균의 주소는 경성부 연건동 18, 수신인 임재갑의 주소는 간도(間嶋) 용정촌(龍井邨) 대종교시교당내(大倧敎施敎堂內)이다.

 
 
오석균(오미산)1921~1922년 사이 예수교청년연합회 참석(1921.4.20.), 입학난구제회 발기위원(1922.04.13.) 등 경성(서울)에서 활동한다. 192210월 편지를 보낸 뒤 완도로 내려와 1923년부터 사립교인학교 교사로 참여한 민족운동가이다.
 
완도 수의위친계에서는 1922년께 간도 용정에 정남국(鄭南局)(소안), 임재갑(신지), 박화국(朴化局)(소안), 이형두(李亨斗)(소안), 권유섭(權有燮,)(노화), 이형춘(李亨春)(완도)을 파견한다. 동흥, 은진, 대성학교를 중심으로 청년운동을 일으키고 독립군을 격려하는 등 간도지방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지원했다. 책임자는 정남국이었는데 1년여만인 1923년 귀국했고 다른 사람들은 3년 정도 활동한다.
 
이 편지는 월일만 기록하였는데, 오석균의 경성 활동기간(1922.4.13 입학난구제회 발기위원)과 완도 교인학교 참여(1923), 정남국의 귀국(1923) 등으로 보아 1922년으로 보인다.
 
완도 출신 민족운동가 오석균, 발신인
 
편지를 보낸 오석균은 완도 출신 민족운동가이다. 완도군 군외면 영풍리 출신이다. 1914년에 3월에 경성고등보통학교 임시교원양성소 제2부를 졸업하고 1914~1919년 사이 완도공립보통학교의 부훈도와 훈도로 활동한다. 1920515일에는 목포기독청년양성회 설립 기념 강연회에서 강연을 한다. 192092일에는 목포청년회, 기독청년회, 천도교청년회 등 세 단체가 합동으로 주관한 청년회연합회 강연회에서 강연을 한다.
 
1921420일 경성부에서 열린 예수교청년연합회에 목포 대표로 참여한다. 1922413일에는 경성 경운동 천도교당에서 입학난구제회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192210월에는 수의위친계원으로 용정에 판견된 임재갑에게 편지를 보낸다.
 
1923년에는 완도로 돌아와 소남 김영현이 설립한 군외 사립교인학교 교사로 참여한다. 192741일에는 완도중학원 개교식 사회, 1927713일에는 완도 교육협회 집행위원에 선임된다. 1927828일에는 완도 중학원에서 오석균의 사회로 신간회 완도군지회 창립총회가 열린다. 1945년 한국민주당 발기인, 1946년 사로당 감찰위원, 1947년 근로인민당 준비위원회 정치협의회위원으로 참여한다. 1958년 원불교에 입교한다.
 
용정에 파견된 항일독립운동가 임재갑, 수신인
 
편지를 받은 임재갑은 완도 신지도 신리 임촌마을 출신이다. 임재갑은 융희학교(중앙학교)에서 배웠다. 1912~1914년 신지면에서 명신서원(明信書院)을 설립하고 동지들을 규합하면서 농촌청년 계몽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고문을 당하고 방면되었다.
 
1920년대 초에는 소안도의 송내호가 주도한 비밀결사 수의위친계에 참여하였다. 송내호(宋乃浩, 1895~1928)의 주선으로 간도 용정에 파견되어 대성학원 교원으로 교민 2세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군자금 모집 차 수회에 걸쳐 국내를 왕래하였다고 한다.
 

피봉(수신인 간도 용정촌 대종교 시교당 내 입재갑)

1924
8월 완도 신지학술강습소를 개설하고 강연단을 꾸려 6개마을을 순회하면서 200여명의 학생과 주민들에게 조선민족의 우수성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피체되어 징역 10월을 받아 미결기간을 합하여 1125일간 옥고를 치렀다. 1927년 신간회 완도지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60년 광주 양림동에서 서거하여 완도군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신지면 상산 선영에 안장하였다.
 
1990년 애족장(국내항일)으로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1994년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으로 옮겨 모셨다. 1988년 에 석호 배규헌이 글을 지어 세운 묘비는 2014년에 신지한일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옮겼다.
 
수의위친계 용정 책임자 정남국
 
추신에서 언급된 정남국(鄭南局, 1897.02.27~1955.06.19)은 이명이 정태성(鄭台星)이다. 완도군 소안면 미라리에서 출생하여 부상리에서 성장하였다. 1919년 완도면의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수의위친계에서 용정책임자로 파견되었다. 용정 대성학교에 적을 두고 간도지방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지원했다. 정남국은 1년여 만에 귀국했고, 1924년 노농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일경에게 피체되어 징역 6월을 받았다. 배달청년회 부회장이 되어 소안사립학교의 강제 폐교를 강행하려는 일제에게 조직적으로 항거하며 일본국 대판으로 가서 재일본노동총동맹위원장이 되어 대판, 동경, 횡빈 완도향우회원 1,000여명으로 규탄 대회를 열고 일 내각 문부대신에게 항의하며 조선총독 정치의 실정을 시정 요구하였다.
 
19297월 조선공산당 후계당 관계로 피체되어 징역 18월을 받은바 있으나 광복 뒤 국회의원으로서 국가건설에 참여한 바 있다. 1990년에 애국장(국내항일)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국한문 행초로 쓴 편지
 
이 편지는 내려쓰기로 국한문을 행초로 썼는데 4장이고 봉투도 전하고 있다. 내용은 처음에 남북으로 떨어져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안부이다. 보내준 편지를 보고 기뻤다는 표현으로 보아 임재갑이 간도 용정에서 먼저 편지를 보내왔고 이에 대한 답신으로 오석균이 편지를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현재의 환경에서 나철선생의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힘에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냐[日暮途窮人間何處]?”라고 말한 교훈을 반복하며 절규한다고 하였다. 이 구절은 대종교를 창시한 홍암 나철의 공고교도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제강점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이어서 날마다 새벽에 자신을 돌아본다고 하면서 비상의 시기에 비상한 인물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오석균 자신과 임재갑이 그같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인물이 되자는 약속으로 읽힌다. '비상의 시기'는 일제의 강점'이란 조국의 암울한 현실, '비상의 인물'은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야 하나다는 암묵적 결의가 아닐까. 편지글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표헌할 수 없으니 '은유'로 서로를 다짐한 것이리라.
 
그리고 재작년 가을 9월에 맨손으로 이곳에 와서 가난과 추위와 싸우며 고민속에서 보냈음을 적고 있다. 이 편지를 쓴 게 1922년으로 보이니 19209월에 서울로 왔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이어 형이 눈살을 찌뿌림이라는 표현도 있다. 어쩌면 임재갑이 오석균에게 보낸 편지에 경성에서 어렵게 활동하는 것에 대해 눈치를 보낸 게 아닐까 싶다. 차라리 완도 고향에 가서 민족교육운동을 하는 게 좋겠다는 말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풍찬노숙하는 임재갑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서 제가 다음 달 열흘과 보름 사이에 북쪽으로 갈 기회가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1115일에서 20일 사이 간도 용정을 갈 계획임을 알리고 있다. “북쪽이라 했는데 뒤에서 실제로 보는 광영이라 한 것으로 보아 임재갑이 있는 용정을 말하는 것 같다.
 
월일과 발신인, 수신인을 쓰고 끝에 추신으로 정남국에게 문안을 여쭈어 달라고 한다. 봉투에는 앞뒤면에 발신인과 수신인의 주소 성명이 표기되어 있다. 수신인 임재갑의 주소가 간도 용정촌의 대종교 시교당이란 점도 주목된다. 대종교는 나철이 칭설하는데 1911년에 만주로 본사(本司) 자리를 잡는다. 이후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이 된다. 19223월에 연길 용정청년회가 조직되는데 10월에 편지가 대종교 시교당 임재갑에게 보내져 한일운동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편지는 국역 해설문으로 읽어 보자.
 
비상의 시기에 비상한 인물이 되자
 
<눈물이 남북으로 흩뿌려지니 철석간장에 몇 번이나 한탄하였는고? 시대를 만나지 못한 남아의 처량한 과거는 형이나 나나 일반이니 말을 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환한 얼굴을 거의 잊어버릴 즈음에 한 통의 편지는 참으로 기쁨에 섞인 설움을 말할 수 없습니다.
 
! 현재 우리들의 환경은 과연 어떠합니까?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힘에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냐[日暮途窮人間何處]?”라고 말한 나선생의 교훈을 반복하며 절규할 뿐입니다.
 
날마다 맑은 새벽을 맞아 자신을 돌아보며 골똘히 생각하여 보면 한 편으로 살아갈 길이 번뜩 생각이 드는 듯 합니다. 형이여! 비상한 인물은 비상의 시대에 출현하니, 오늘은 막힌 길이 막판에 도달한 급박한 비상의 시기라 범상의 인물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 갈대가 푸르게 우거질 적에 이 사람은 아마도 없고, 아우는 재작년 가을 9월에 맨 손으로 이곳에 와 한구에서 임시 쉬면서 가난과 추위와 싸우며 고민 속에서 어언 두 해를 보내었습니다. 형이 눈살을 찌뿌림은 도로의 정분인 듯하며 관심을 주는 것은 더러 과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땅한 얼굴도 살풍경으로 다가 오니, 우선 기회를 보고 차차 진심이 통할 것입니다.
 
형이여! 그동안 비바람을 무릅쓰고 길거리에서 잠자던 일이 과연 몇 번입니까? 두만강과 압록강의 찬 달빛과 만주와 몽고의 삭풍이 그 얼마나 꿈도 많고 눈물도 많은 형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쓰라리게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어쩌면 제가 다음 달 열흘과 보름 사이에 북쪽으로 갈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창가에 비친 달빛에 쌓인 회포는 이 때에 가지고 가 터뜨리겠습니다. 동시에 형이 여러 해 동안 가꾸어 온 씨앗을 실제로 보는 광영을 생각하니 절로 기쁩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1029일 오석균은 임재갑 노형께 올립니다. 추고 : 남국군에게도 문안 여쭈어 주십시오. >
 
해외까지 넘나든 독립운동가의 활동
 
이 편지는 원래 임재갑의 아들 임옥현이 소장하다가 2011년 개관한 완도 신지항일운동기념자료관에 전시하고 있다. 자료관에는 임재갑의 유품인 태극기, 대종교 광주지사 찬무(光州支司贊務) 임명장(1955) 등을 전시하고 있다. 자료관 경내에는 1994년 건립한 신지항일운동기념탑(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 있다. 2013년에는 신지항일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2019년에 원불교의 독립운동학술대회에서 완도지역 원불교와 독립운동-오미산, 김영현, 지해원을 중심으로-를 발표할 때 완도문화원 부원장 김풍호님의 제보와 신지 현지 조사 때 임태윤 신지항일운동기념사업회 임태윤 회장님, 정동채 전 회장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익산에 사는 임옥현님도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19221029일 경성의 오석균이 간도 용정촌의 임재갑에 보낸 편지는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당사자들이 주고 받은 실물 편지로서 내용은 물론 봉투까지 잘 남아 있어 가치가 있다. 그리고 발신인, 발신처, 수신인, 수신처가 명확히 드러나 있어 기록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다.
 
아울러 발신인 오석균과 수신인 임재갑은 완도 출신으로서 경성과 용정에서 떨어져 있지만 계속 교류를 하고 있는 점도 알 수 있다. 특히 임재갑은 완도의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수의위친계에서 용정에 파견된 인물로서 국외에서의 활동에 대한 자료가 확인된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편지에서 언급된 정남국도 완도 수의위친계 파견단의 대표라는 점에서 완도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용정 체재와 항일민족운동을 했음을 활동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신인 임재갑의 주소가 대종교 시교당으로 되어 있어, 대종교가 항일독립운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행초로 쓴 편지의 서체도 수준을 보이고 있어 당시 지식인들의 문필 활동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라는 점 등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다.(2025.06.30.)
 
*김희태, 비상한 인물은 비상의 시대에 출현하니-우리곁의 미래유산-, <대동문화> 149202578월호, 82~84.

 
참고문헌

완도군 항일운동 기념사업회, 완도군 항일운동사, 서울: 역사비평사, 2000.
박찬승, 신지도 항일운동사: 완도군 신지면 항일운동의 역사, 서울: 한양대학교출판부, 2014.
김희태, 1922, 오석균(미산)선생이 임재갑선생에게 보낸 편지-자료 소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82,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9, 488~506.
김희태, 완도지역 독립운동의 일사례-김영현과 오석균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84, 2020.6, 243~274쪽.
 *완도 오석귝 균편지,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 2025.08.14

편지 원본

완도 오석균 편지(수신 임재갑) 조사(완도 신지항일운동기념관, 201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