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440
아득한 안개 낀 물결 옛 나루에 이어지고, 섬호 진경문
-영산강 유역의 누정문화와 세거사족의 풍류4-
김희태
진경문(陳景文, 1561~1642)선생은 본관이 여양(驪陽), 호는 섬호(剡湖), 자는 여욱(汝郁)으로 나주 곡강리(曲江里) 출신이다. 부친은 진정수(陳井壽)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해 문장이 탁월했다.
29세 때인 1589년(선조 22) 생원시에 합격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격문(檄文)을 보내 왜군에 반격할 것을 주장했다. 의병장 김천일(金千鎰)에게 군량 300석을 전달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의병장 임환(林懽)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순천의 예교성으로 가서 예교성 전투에 참전했다. 진경문은 조선군과 명군의 합동 공격 과정 및 결과를 상세하게 기록한 <예교진병일록(曳橋進兵日錄)>을 남겨 문집인 섬호집에 실려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다시 지평 임위(林瑋) 등과 군사를 모집하고 군량을 징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만년에 학문에 매진하며 후학을 가르쳤다. 1642년(인조 20) 율리(票里)에서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섬호집』은 1648년 진경문의 아들인 진만귀(陣晩貴)가 부친의 유고를 모아 목판본으로 간행한다. 섬호집 목판(66점)은 후손가에 전해 오다가 2010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섬호집』 국역본을 냈다. 상·하권으로 구성되었고, 서문은 17세기 명사인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이 서술하였고, 발문은 정홍명(鄭弘溟, 1582〜1650)이 썼다. 송강 정철의 넷째 아들이다.
진경문은 영산강 나루인 풍호를 들러 자신(子愼)과 연구(聯句)를 짓고, 자중(子中)에게 낚싯배 관련 시를 부치기도 한다. 그리고 한호(閑好)의 정자 운에 차운하기도 한다. 한호(閑好)의 정자는 영산강가 무안 식영정(息營亭)을 이른듯하다.
진경문(여욱)과 자신[子愼]이 함께 지은 칠언절구 연구 시는 영산강 유역의 자연과 생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자신은 임서(林㥠, 1570~1625)의 자이다. 풍호(楓湖)는 나주 다시면 회진리 1구 동촌마을 앞에 있는 나루이다.
취하여 풍호를 들러서 자신과 연구를 짓다 [醉過楓湖與子愼聯句]
아득한 안개 낀 물결 옛 나루에 이어지고
황혼녘 뜬 달 아래 외로운 배 출렁이네 [여욱]
나귀 타고 지나는 사람들 짧은 다리 건너고
들개와 찬 다듬이 소리 산촌에 들리네 [자신]
渺渺烟波連古渡 孤舟搖漾月黃昏[汝郁]
騎驢人過短橋去 野犬寒砧山下村[子愼](『剡湖集』 )

전반부는 물안개 낀 강물과 옛 나루, 황혼의 달빛 아래 흔들리는 외로운 배를 통해 고요하고 몽환적인 수상 공간을 제시하며, 시인의 고독한 내면과 유랑 의식을 드러낸다.
“묘묘한 연파(渺渺 烟波)”는 시야를 흐리는 물안개로, 강폭이 넓고 수량이 풍부한 영산강의 경관이다. 나주 일대는 예로부터 수운 교통의 요충지로, ‘고도(古渡)’는 단순한 나루라기 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지역사의 흔적이 응축된 장소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공간 위에 놓인 “고주(孤舟)”는 단순한 풍경 요소를 넘어, 시인의 고독한 자아를 상징한다. 특히 “월황혼(月黃昏)”이라는 시간 설정은 황혼과 달빛이 겹치는 하루의 끝, 인생의 덧없음을 암시한다.
후반부에서는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나그네와 들개 짖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가 울리는 산하촌(山下村)의 모습을 통해 현실적이고 생활감 있는 육지 공간을 펼쳐 보인다. 이는 영산강 유역의 지리적 특성, 곧 강과 마을이 긴밀하게 결합된 생활권 구조를 반영한 듯싶다. “단교(短橋)”를 건너는 나귀 탄 인물은 이동과 통과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 세계의 삶을 환기시키며, “야견”과 “한침(寒砧)”의 소리는 산촌의 저녁 풍경을 드러내는데, 앞 구절의 정적(靜的)인 수상 풍경과 대비된다.
이처럼 시는 강과 마을, 정적과 동적, 시각과 청각의 대비를 통해 영산강 유역의 입체적 공간 인식을 형성하며, 자연 속 사색과 인간 세계의 쓸쓸한 삶을 교차시킨다. 또한 두 선비가 이어 짓는 연구 형식은 교유의 정취를 더하며, 지역적 공간성과 보편적 정서를 함께 형상화하고 있다.
진경문이 자신 임서와 읊은 시는 앞에서 본 칠언절구 연구 시 외에도 칠언절구 2수, 오언율시 2수, 칠언고시 1수가 『섬호집』에 보인다.
「翠微寺寄林子愼」 [취미사에서 임자신에게 부치다]
「五神寺寄子愼」 [오신사에서 자신에게 부치다 ]
「舍羅縣送林子愼赴會試」 [사라현에서 회시를 보러가는 임자신을 보내며]
「憶子愼」 [자신을 생각하며]
「別林子愼還朝」 [조정으로 돌아가는 임자신과 이별하며]
「元明寺憶林子愼」 [원명사에서 임자신을 추억하다 ]
임서(1570〜1624)의 본관은 나주, 자는 자신, 호는 석촌(石村)이다. 정자 임복(林復, 1521~1576)의 아들이며, 백호 임제(林悌, 1549~1587)의 사촌 아우이다. 1599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예조좌랑, 사헌부 지평, 전라도안핵사, 안동부사,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요동에 사신을 다녀왔고, 이괄의 난이 발발하자 도원수 장만(張晩, 1566~1629)을 도와 공을 세워 가선대부가 되었다. 나주 다시면 가운리 문암마을 입구에 있는 임서의 신도비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지었는데 1859년(헌종 1년)에 세웠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진경문은 자중(子中)에게 부치는 칠언절구를 통해 영산강의 풍경을 배경으로, 강가에서의 은일과 현실 사이의 심회를 절묘하게 드러낸다. 자중은 임환(林懽, 1561〜1608)의 자이다.
자중에게 부쳐서 낚싯배를 찾다[寄子中索釣船]
경세제민 하려면 초심은 낚싯대에 부치고
백구와 함께 하며 시 모임도 마치려 하네
한밤붕에 바람이 조각배를 불어 갔는데
옛 낚싯터 갈대숲엔 안개가 짙어지네
經濟初心寄一竿 詩盟擬與白鷗完
扁舟半夜風吹去 蘆葦烟深舊釣灣(『剡湖集』)
낚싯대에 뜻을 부친다는 것은 영산강 유역의 유유한 물길처럼 속세의 욕망을 흘려보내려는 의지를 말한 듯하다. 백구(白鷗)와 더불어 시를 짓겠다는 구상은 강변의 한적한 자연과 교유하는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밤중 바람에 조각배가 떠내려간 장면은 영산강 물길의 변화무쌍함처럼 삶의 방향 또한 쉽게 흔들림을 암시한다. 갈대와 안개로 뒤덮인 옛 낚싯터는 영산강 특유의 풍광을 떠올리게 하며, 과거의 평온한 시절이 점차 멀어짐을 상징한다. 영산강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실과 은일 사이에서 표류하는 시인의 내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임환(1561〜1608)의 본관은 나주이며, 호는 습정(習靜)이고 자는 자중(子中)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 휘하에서 종사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김천일의 군사가 강화에 주둔하고, 당시 수안에 피난하였던 왕세자를 찾아가 남하하여 국가 대계를 위해 간언하고 사포별제에 임명되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 이순신이 보화도(寶化島, 고하도)에서 군량이 떨어졌을 때 본가의 곡식을 기증했다. 전라도에서 의병을 모아 대장이 되어 8도에 격서를 보내 백성의 궐기를 호소하였다. 뒤에 용당(龍糖)이라는 건물을 짓고 은거했다. 나주 정렬사에 배향되었다.
진경문은 정유재란 때 순천 예교성 전투에서 소의장(昭義將) 임환의 참모장으로 활동했다. 진경문은 「용당거사에 차운하여 소회를 읊다 28운[述懷次龍糖居士韻律二十八韻]」에서 임환의 학문을 “큰 글자는 자라가 서 있는 듯하였고, 웅장한 문장은 봉황이 날아오르는 듯하였네[大筆看整立 雄詞觀鳳]”라고 평가했고, 그가 기회를 얻지 못해 포부를 펼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리 하여 「용당 주인에게 들르다 율시 12운[寄龍糖主人律十三韻]」에서는 “변방에 크고 작은 북소리 둥둥 울려, 경세와 육도의 병법을 펴야 할 때이거늘, 시절을 슬퍼하다 귀밑털이 세어버려, 골짜기의 구름 아래 신선을 기다리며[關海鼓鼛縱 經世龍韜六 傷時雪髮雙 堅雲邀羽客]” 한가롭게 차를 즐기고 있다고 묘사했다. 임환에 대한 존경과 아쉬움이 묻어난 시구이다.
진경문은 무안의 식영정에 들로 한호의 정자 운에 차운한다. 영산강의 빼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한다. 한호는 임련(林堜, 1589~1654)의 호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동야(東野)이다. 1613년(광해군 5) 문과에 급제했고, 승정원승지 등을 지냈다.
한호의 강가 정자 운에 차운하다[次閑好江亭韻]
조물주의 천년 비경을 훔쳐다 놓았으까
이런 강산이 있으니 이런 사람도 있구나
복사꽃 아름다움이 다해도 떠나가게 하지 말게나
흰 물새가 봄을 감추지 못했다고 탓하랴
偸他造物千年秘 有此江山有此人
莫遣桃花渺然去 白鷗應恨未藏春(『剡湖集』)
‘천년의 비경을 훔쳐다 놓았다’는 표현은 영산강 유역의 풍광이 인공을 초월한 조물주의 신비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산 속에서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구절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물의 풍류적 품격을 드러낸다. 만개한 복사꽃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봄의 절정을 상징하며, 떠나보내기 아쉬운 순간의 정취를 자아낸다. 특히 흰 물새가 봄을 감추지 못했다는 탄식은 영산강 변의 생동하는 자연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영산강을 중심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향유하는 인간의 정서를 조화롭게 형상화한 서정시라 하겠다.
섬호집에 실린 한호 임련 관련 시는 7수이다.
칠언절구
「次林閑好東野韻」[한호 임동야의 시에 차운하다]
「訪閑好未遇[公出遊摠持寺] [한호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공은 총지사로 놀러갔다]]
오언율시
「別閑好以掌令赴召」[장령으로 조정의 부름에 나아가는 한호와 이별하며],
「 雪中聞閑好舟過前江」[눈 속에 한호가 배를 타고 앞강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次閑好韻」[한호의 시에 차운하다]
칠언고시
「次閑好韻」[한호의 시에 차운하다]


-나주 출신(거주지 표기 기준) 사마시 합격자는 나주목이 진사 150명, 생원 187명, 남평현이 진사 19명, 생원 32명이다.(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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