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236 - 정성어린 충성 장렬하니 천대의 명성 짝하네, 벽진서원 의열사 사제문, 1681
인지의 즐거움 236
정성어린 충성 장렬하니 천대의 명성 짝하네, 벽진서원 의열사 사제문
김희태
조선시대 서원과 사우는 국가 공인에 해당한다 할 사액을 받으면 국왕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면역(免役)을 하며 정기 제일 때는 제관을 파견하고 제문과 제수를 하사한다. 광주 벽진서원에는 조선시대 당시 의열사(義烈祠)로 사액하면서 내린 사제문(賜祭文)을 새긴 현판이 강당인 숭본당(崇本堂)에 있다.
1681년(숙종 7) 4월 24일에 숙종 임금이 내린 제문으로 당시 파견된 제관은 예조좌랑 이정린(李廷麟, 1625~1682)이다. 이 제문은 서파 오도일(西坡 吳道一, 1645~1703)이 지었는데 문집인 『서파집(西坡集)』(권19)에 “증 도승지 박광옥 증 병조판서 김덕령 사우 사액 제문(贈都承旨朴光玉贈兵曹判書金德齡祠宇賜額祭文)”이 실려 있다.
사제문은 연호와 간지 연월일의 세차를 앞에 썼다. 국왕이 파견한 제관인 예조좌랑 이정린이 박광옥과 김덕령의 영위에 제문을 올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문은 박광옥과 김덕령의 행적과 공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앞부분에 "부지런한 경을 생각하니 남쪽지방 수재일세 문학을 연마하여 이른 명성 드날렸네.…늙음에 말고삐를 잡지 않고 집에 있는 군량을 보내었네 한을 안고 죽으니 지사가 눈물을 떨쿠네(亹亹惟卿 南國之秀 績文種學 譽聞夙騖 … 老不執靮 在家給饋 齎恨而歿 志士隕淚)라 하여 박광옥의 학문과 의병활동을 찬미하였다.
뒷부분에서는 "충의를 고무하니 용맹한 군사 구름처럼 모이네 높은 산보다 크게 무찌르니 적의 추장 간담이 서늘하네. … 참언은 매우 달콤하고 간악한 무리 침체되네. … 현종 때 원통함 밝혀 선혁을 애증하였네(鼓以忠義 勇士雲集 大膊于嶠 賦酋膽懾 … 盜言孔甘 蜮弩潛中 … 顯廟昭冤 哀贈燀爀)라 하여 김덕령의 의병활동과 참언에 의한 피해, 그리고 신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어서 사액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존경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끝에는 상지 정미 춘삼월 하완 게판(上之丁未春三月下浣揭板)이라 하여 이 현판을 새긴 때를 적었다. 1787년(정조 11) 정미년으로 보인다. 1785년(정조 9) 김덕령에게 충장의 시호를 내린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벽진서원은 1602년(선조 35) 벽진사(碧津祠)로 창건하여 회재 박광옥(懷齋 朴光玉, 1526~1593)을 배향하였는데 1604년 벽진서원이라 하였다. 1678년(숙종 4) 김덕령(金德齡, 1567~1596)을 합향하고 1681년(숙종 7) 의열사로 사액되었다.
사제문 현판은 판재를 액자형식으로 마련하고 27행을 내려쓰기 음각으로 새겼다. 변죽은 별다른 조식을 하지 않았다.
이 현판은 조선시대 사우를 사액하면서 치제할 때 국왕인 내린 사제문을 새긴 기록유산으로 제향 세차 연월일과 파견 제관, 제문, 게판 연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사제(賜祭), 국왕(國王), 현묘(顯廟, 현종) 등 임금을 상징하는 용어는 대두(擡頭)를 하여 줄을 바꾸고 한 글자씩 올려 써 당시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다. 제문 지은이의 문집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점 등 역사적 의의가 있다.
[사제문](엄찬영 역)
부지런한 경을 생각하니 亹亹惟卿
남쪽지방 수재일세. 南國之秀
문학을 연마하여 績文種學
이른 명성 드날렸네. 譽聞夙騖
이용후생 나라에 권장하고 利用觀國
운수가 트여 발걸음을 내딛네. 亨衢展武
시험을 거쳐 등용되니 歷試登庸
내외로 제수되어가네. 于外于內
굳세고 곧은 절조 勁操直節
세상에 오만하네. 偃蹇于世
기미를 알아 굳게 지켜 정길하고 介石貞吉
향촌에 은거하여 산수를 즐기네. 考槃丘園
후진을 깨우쳐주니 提誨後進
유생이 대문을 채우네. 逢掖盈門
역사를 기록하며 스스로 즐기며 書史自娛
생을 마치려는 듯하네. 若將終身
해는 임진왜란 歲在龍蛇
섬 오랑캐 미쳐 날뛰네. 島夷肆猘
여섯 고삐 서쪽[의주]으로 피난하고 六轡西狩
두 서울 인심이 흩어졌네. 兩京波潰
촉지무에게 돌아가 고하니 之武告歸
뜻이 간절하여 순국하였네. 志切殉國
안고경은 의기를 일으켜 杲卿起義
맹세코 적을 섬멸하고자 했네. 誓欲滅賊
늙음에 말고삐를 잡지 않고 老不執靮
집에 있는 군량을 보내었네. 在家給饋
한을 안고 죽으니 齎恨而歿
지사가 눈물을 떨쿠네. 志士隕淚
한 시대 한 고을 並世同郡
호랑이 날개 단듯하네. 有若翼虎
어려서부터 自在童幼
매우 용맹하고 날쌨네. 孔驍且武
강개함이 특출하여 忼慨挺特
일찍이 장대한 지략 품었네. 夙抱壯略
사시[왜적]가 마음대로 먹으니 蛇豕荐食
나라의 운명 실줄 같네. 國命如綴
당시 어머니 상복을 입은 채 維時持服
지방장관에 추천되어 전달하네. 守臣薦達
최복을 벗고 의병을 모으러 釋衰募兵
격문을 여러 고을에 돌렸네. 馳檄列邑
충의를 고무하니 鼓以忠義
용맹한 군사 구름처럼 모이네. 勇士雲集
높은 산보다 크게 무찌르니 大膊于嶠
적의 추장 간담이 서늘하네. 賦酋膽懾
은은한 장성 隱若長城
의지하고 중하게 여기었네. 倚以爲重
참언은 매우 달콤하고 盜言孔甘
간악한 무리 침체되네. 蜮弩潛中
참혹한 재앙의 기미 禍機之酷
근심하여 말하네. 言之於悒
백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不待百年
공의는 분명하네. 公議以晳
현종 때 원통함 밝혀 顯廟昭冤
선혁을 애증하였네. 哀贈燀爀
남은 풍모 끊어지지 않아 遺風不斬
고을사람 사모하는 마음 일으키네. 邑人興慕
편안한 영령 並妥英靈
고요한 새 사당에 모셨네. 有侐新廟
유관에 호랑이 고깔 儒冠虎弁
엄연히 상대하네. 儼然相對
정성어린 충성 장렬하니 精忠壯烈
천대의 명성 짝하네. 儷美千代
보잘 것 없고 사리에 어두운 나 眇予寡昧
일찍이 풍격 우러러보았네. 夙仰風規
구원[무덤]을 만들기 어려우니 九原難作
동시대 아님이 한스럽네. 恨不同時
사당의 편액 없어 廟額有闕
연신[경연청의 신하]이 아뢰네. 筵臣陳奏
이윽고 아름다운 편액 내려줘 旣錫嘉扁
간소한 제물을 올리네. 且陳薄具
이에 예관을 보내 玆遣禮官
정성을 다하여 우러러 존경하네. 孚薦顒若
혼령이여 계신다면 不昧者存
흠향하기를 바라오. 庶其歆格
[원문]
賜祭文
維康熙二十年歲次辛酉四月甲申朔二十四日丁未
國王遣臣禮曺佐郞李廷麟
諭祭于贈都承旨朴光玉 贈兵曹判書金德齡之靈惟靈
亹亹惟卿。南國之秀。績文種學。譽聞夙騖。利用觀國亨衢展武。歷試登庸。于外于內。勁操直節。偃蹇于世。介石貞吉。考槃丘園。提誨後進。逢掖盈門。書史自娛。若將終身。歲在龍蛇。島夷肆猘。六轡西狩。兩京波潰。之武告歸。志切殉國。杲卿起義。誓欲滅賊。老不執靮。在家給饋。齎恨而歿。志士隕淚。並世同郡。有若翼虎。自在童幼。孔驍且武。忼慨挺特。夙抱壯略。蛇豕荐食。國命如綴。維時持服。守臣薦達。釋衰募兵。馳檄列邑。鼓以忠義。勇士雲集。大膊于嶠。賦酋膽懾。隱若長城。倚以爲重。盜言孔甘。蜮弩潛中。禍機之酷。言之於悒。不待百年。公議以晳。顯廟昭冤。哀贈燀爀。遺風不斬。邑人興慕。並妥英靈。有侐新廟。儒冠虎弁。儼然相對。精忠壯烈。儷美千代。眇予寡昧。夙仰風規。九原難作。恨不同時。廟額有闕。筵臣陳奏。旣錫嘉扁。且陳薄具。玆遣禮官。孚薦顒若。不昧者存。庶其歆格。
上之丁未春三月下浣揭板
벽진서원 소장 의열사 사제문 현판(1681년, 숙종 7 신유 4월 24일, 제관 예조좌랑 李廷麟, 제문 吳道一 찬)
증 도승지 박광옥 증 병조판서 김덕령 사우 사액 제문(贈都承旨朴光玉贈兵曹判書金德齡祠宇賜額祭文) - 서파 오도일(西坡 吳道一, 1645~1703) 지음, 『서파집(西坡集)』(권19)(한국고전번역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