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227 - 훌쩍 30년, 오래된 기억을 들추다 - 고흥 불대사지

향토학인 2021. 3. 23. 11:54

인지의 즐거움227

 

훌쩍 30년, 오래된 기억을 들추다 - 고흥 불대사지

 

김희태

 

“새로 확인한 고흥 불대사지입니다.”

 

고흥 불대사지를 확인했다는 소식과 함께 ‘카톡’으로 온 사진 여러 장. 보내온 이는 송광사성보박물관 김태형 학예연구사. 2021년 3월 22일.

 

지금 보아도 잘 쌓았다 할 수 있는 석축과 기와 등 유물. 장흥문화원 회의차 가는 길이었는데 차를 멈추고 사진을 본다. 예전 언젠가 들렸었던 것도 같은데... 그때도 석축을 보았었고. 기억은 가물. 고흥군 문화유적 지표조사의 불교유적 조사 때이다. 언제 적일까. ‘카톡’에 답을 단다.

 

“고맙습니다. 30여년전 조사하고 간략한 글로 소개했었는데 오래되어 사진을 보네요”.

“순천대에서 조사한 곳이 아닌 인근의 다른 장소 입니다”

“아~..”

 

장흥문화원 회의, 강진 다산박물관 회의를 거쳐 광주로 오는 길. 왼통, 전에 조사한 기억을 살리려 애를 쓰지만, “뱅뱅” 거릴 뿐.

 

<고흥군의 문화유적> 보고서를 펼쳐든다. 요즘은 “띄운다” 해야 맞을 것이다. 컴퓨터 화면으로 PDF 파일을 볼 수 있으니.

 

살펴 보니, 그때도 또 다른 절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현지는 못 갔노라고 써 있었다. 기억 속의 절터는 불대사 입구의 암자터 정도로 기술하였던 것.

 

<고흥군의 문화유적> 학술지표조사는 목포대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전라남도와 고흥군의 지원. 불교유적 조사는 성춘경선생님(당시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이 조사책임자이고 이계표, 김희태가 조사위원이었다. 양기수, 강현구, 김경칠, 최인선, 윤지향이 조사에 참여하였다. 1990년 4월~11월 사이 조사를 하여 1991년에 책이 나왔다. 30년만의 “소환”인 셈이다.

 

사지편의 원고 초안은 필자가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조사 내용은 뒤의 <문화유적분포지도-고흥군편>에 요약되어 오른다. 순천대학교 박물관 조사. 2003년.

 

그때 두 가지 전망을 했던 것 같다. 저 차(茶)나무를 보러 다시 오자. 조금 위에 있다는 불대사 절터를 꼭 보러 오자. 차(茶)나무는 암자터 옆 약간 비탈진 골짝에 있는 나무. 그때 성춘경선생님이나 강현구선생님께서 밑둥을 보시고 “지금까지 본 나무 가운데 가장 큰 차나무”라 하였다. 절터도 다시 가지는 못한 체, 그로부터 훌쩍 30년.

 

“어쩌다 가게 되었나요. 송광사에서 조사하나요”

“정식 조사는 아니고요. 그냥 ‘필’이 꽂혀서 한 달내 주말이면 고흥 나들이 합니다.”

“아~ ‘필’. 근간 함께 갑시다.”

 

저녁에 고흥 자료를 뒤적여 훑어 보고 아침에 통화하였다. 또 한참동안 여기 저기 찾을 것이다. 그때 찍은 사진(필름), 그리고 현장을 메모하고 석축 등을 야장에 스케치했던 기억이 있으니 그 야장. 어딘가 있을 것이다. 날짜도 적었을 것이고 점심을 먹었던 식당 이름도 있을 것이다. 그때 오가던 봉고차 번호도 있을랑가? 아니다 그걸 찾기 전에 고흥 나들이를 해야겠다.

 

* 고흥 불교유적 조사 책임을 맡으셨던 성춘경선생님은 평생을 보고 모았던 불교문화, 문화재학, 향토학 자료 2,500여권을 한국학호남진흥원(원장 천득염교수님)에 기증하셨습니다. 2021년 2월 19일. 그리고 30여년간을 사셨던 산정동 주택에서 인근 영천주공아파트로 거소를 옮기셨습니다. 2021년 3월 10일.

 

□ 고흥군 불교유적 조사(1991)

 

佛臺寺址(사진 59-1~2)

所在地 : 高興邑 登嚴里 曹溪山下

 

佛臺寺는 曹溪山 修禪社의 제5세 慈眞國師 圓悟(1215~1286)의 碑가 있는 곳으로 일찍부터 알려진 곳이다. 현재 그 비는 확인할 수 없으나 세워진 연대가 13세기 후반으로서 고흥지역으로서는 가장 오랜 由緒를 지녔던 사찰이라고 보아진다.

 

이 사찰은 기록상으로 佛臺寺와 佛盖寺로 혼돈되어 나타난다. 즉, 『增東國輿地勝覽』에 따 르면「佛盖寺 在八顚山 有高麗李益培禪圓悟碑」라 하여 팔전산(팔영산)의 불개사에 원오국 사의 비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朝鮮金石總覽』이나 『朝鮮佛敎史』에는 원오국사비의 소재지가 佛臺寺로 나타나고 있다. 이 불대사란 명칭은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佛臺寺 在曹溪山」이라 하여 불개사와 다른 사찰로 나타난다.

 

地志의 기록을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東國輿地志』: 「佛臺寺 在曹溪山 有高麗李益培所撰釋悟碑」

『輿地圖書』 : 「佛臺寺 在曹溪山 縣南五里」「佛蓋寺 今廢」

『梵宇攷』 :「佛臺寺 在曹溪山 今廢」「佛盖寺 在八顚山 今廢 有高麗李益居所撰釋圓悟碑 宏黙書」

 

이처럼 佛臺寺와 佛盖寺가 서로 다른 사찰로 기록이 나타나면서 불대사는 조계산, 불개사는 팔전산(팔영산)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李益培의 圓悟碑는 『新增東國輿地勝覽』과 『梵字攷』에는 팔전산의 불개사에, 「東國輿地志」에는 조계산의 불대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 조사에서 팔전산(팔영산)의 불개사에 대해서는 그 유지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고흥읍 등암리에서 확인된 사지 주변이 “佛臺寺址”로 구전되고 있다는 점이나, 慈眞圓悟가 曹溪山 修禪寺의 제5세로 주석하다가 高興縣의 佛臺寺에서 입적했는데 이곳 사지가 있는 배후산이 曹溪山이란 점에서 『東國輿地志』의 기록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하겠다.

 

佛臺寺址는 고흥읍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27호 국도를 따라 2km거리에 있는 등암리 등암 마을을 지나 다시 남쪽으로 1km 지점의 신전마을을 지나서 있다. 신전마을 뒤의 登巖堤를 타고 동쪽으로 500m쯤 조계산(높이 463.1m)을 향해 오르면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사지가 나타난다.

 

인근의 동방정사 마여광(40) 주지에 따르면 조계산의 중턱에 佛臺寺址로 전하는 사찰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조사는 하지 못하였고 그 입구에 해당하는 상기 지점에 유지가 남아있는데 불대사와 연관된 암자터가 아닌가 싶다. 원래의 불대사와 연관하여 이를 입증해줄만한 유물은 없었으나 많은 魚骨紋瓦片과 朝鮮白磁片이 산재해 있다. 이곳 터는 3단으로 구획되어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하단은 길이 150여m, 중단은 25×20m, 상단은 40×15m의 넓이이다.

 

*성춘경 외, 고흥군의 불교유적, <고흥군의 문화유적>, 국립목포대박물관, 전라남도, 고흥군, 1991, 192~194쪽

 

□고흥군 문화유적 분포지도 조사(2003)

 

佛臺寺址

고흥읍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27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왼편으로 등암마을이 위치하고 있고, 동암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1km 지점에 신전마을이 있다. 사지는 신전마을 뒤의 登岩堤를 타고 동쪽으로 500m 조계산을 향해 오르면 나오는 평탄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은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이곳의 터는 3단으로 구획되어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하단은 길이 150m 정도, 중단은 25x20m, 하단은 40x15m의 넓이이다.

 

* 순천대학교박물관, 고흥군, <문화유적분포지도 : 고흥군>, 2003, 258쪽

고흥 불대사지(2021.03.21. 사진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사), 암자터에서 직선거리 200여미터쯤이라 한다.
불대사지 유물
불대사지(암자터 중단 석축)(<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전라남도1>. 문화재청, 불교문화재연구소, 2011, 1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