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224 - 1658년~1830년 사이 246회 불사 기록, <역주 보림사 중창기> 발간
인지의 즐거움224
1658년~1830년 사이 246회 불사 기록, <역주 보림사 중창기> 발간
김희태
1658년부터 1838년까지 180년간 246회의 불사를 기록한 『역주 보림사 중창기(譯註 寶林寺 重創記)』가 발간되었다.(장흥문화원, 도서출판 온샘, 549쪽)
현재 해남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림사 중창기』는 필사본으로, 가로 29.7㎝, 세로 41.7cm, 총 201면이다. 이 책은 표제에 『신증장흥여지승람(新增長興輿地勝覽)』 이라 적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보림사 중창기록이 주요 내용이다. 중창기록 부분의 제목은 「장흥부 가지산 보림사 법당각전각요사 중창번와연월 여시주공사화주별좌등 방함기록(長興府迦智山林寺法堂各殿閣察者重五年月與施主工化主別座等考記錄)」이다.
「역주 보림사 중창기』는 2001년에 전문가들의 참여에 힘입어 장흥문화원에서 발간하여 사찰 문화사는 물론 향촌 사회사의 이해에도 길잡이로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사찰이나 건축, 조각 등 관련 학계에서도 중요한 원전 사료로서 인용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사정상 많이 보급을 하지 못하였고 시일도 지나서 재발간 논의가 있어 왔다.
장흥문화원에서는 향토고전 국역사업을 해오고 있어 유가(儒家) 문집은 물론 사찰 문화 자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차에 여건이 마련되어 <보림사 중창기> 재판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간행한 『역주 보림사 중창기』 재판본은 중창기를 자세하게 분석한 <조선후기 장흥 보림사중창기의 고찰> 논고(김희태)와 조선 초기 보림사 사적기의 국역해설문과 함께 미국 하바드대 연경도서관 소장 필사본 원본 사진 등을 함께 실었다. 보림사 사적기 국역은 조계총림 송광사의 방장인 남은 현봉스님이 하였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0~30년대의 유리건판사진 64장을 함께 실었다. 보림사 기록과 사진 등이 망라되어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초판에서 원본은 복사본을 영인하였는데, 재판본에서는 동국대학교불교학술원에서 제공 받은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역주 보림사 중창기』재판본은 초판 때와 같이 고경 송광사박물관장님이 감수를 해 주셨고 양기수 장흥향토사회장, 김희태 전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최인선 순천대사학과 교수가 참여하였다. 그리고 최선일 문화재청 감정위원이 제반 연락과 교정을 맡아 주었다. 출판은 고영천 장흥문화원원장님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자료 수집과 편집에 장흥문화원 위종만 사무국장, 정경성 전남도청 학예사, 그리고 송광사 성보박물관과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관계자, 도서출판 온샘 신학태 대표 등이 지혜를 모아 주었다.
『보림사 중창기』는 1658년 법원전을 중수한 기록이 맨 처음 나온 이후 1954년 사천왕문 등의 수리와 1955년까지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1838년 이후 1954년까지는 중창의 내용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의 주된 내용은 1658년부터 1838년까지 180년간의 기록으로 항목별로는 246항목에 달한다.
이 중창기에는 각종 건물의 중수나 신축, 단청, 번와, 탱화, 부도, 범종, 불상, 석탑, 불기(佛器), 불화 등 각종 불사 내용과 시주, 공사(工師), 권화, 별좌, 목수, 화원, 장인, 화주, 주지 등 참여자의 명단을 별도로 적고 있어 조선 후기 보림사 중수는 물론 사찰운영의 실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층 더 넓혀 주고 있다.
『보림사 중창기』의 기록 유형은 인물(승려), 건조물, 성보 등으로 크게 구분하여 살펴 볼 수 있겠다. 먼저 인물편은 승려와 시주, 직임 관련 인물 등 중복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883인의 인명이 보인다. 이들을 통해 승려와 참여 인물의 계보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50인의 역대 주지 명단도 확인된다.
『보림사 중창기』에는 1658년에서 1838년까지 180년간에 걸친 불사를 통해서 82개소의 건물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데 명칭으로 구분하여 보면 12종이다. 이들 건조물은 1658년 법원전 중수가 처음 기록된 이래 1660년 신법당 중수 등 136회의 건립, 중수, 중창(52회) 등의 기록이 확인된다. 그리고 고법당과 신법당 불사의 내용과 번와, 단청, 조경, 암자 등의 붕사 기록도 있다.
『보림사 중창기』에는 고법당 관련 불사 기록이 20회가 확인된다. 건물의 불사가 6회이고 탱화, 향로, 대화로 등의 구입과 삼존 개금, 단청 등에 대한 것이다. 1715년에 중창하는 기록에서는 자세한 서문이 있고 직임록 또한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후기 사찰에서 법당 불사의 과정과 참여인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보림사 중창기』에는 신법당 관련 불사 기록이 13회가 확인된다. 1660년 신법당 중수에 이어 1692년에도 신법당을 중창하고 1693년에는 단청을 하고 단오에 경찬 수륙대회를 열었다. 1692년 중창시의 기록이 자세한데 백암 성총의 문인 충면이 썼다. 이 기문에는 신법당의 중창을 위하여 목재를 구입하여 운반한 과정과 구입한 목재의 종류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파옥, 입주, 상량 일자도 기록하고 있다.
『보림사 중창기』에는 단청 18회, 번와 16회, 24개소의 암자, 그리고 사찰의 조경이나 주변의 정비, 도로의 개설, 전답, 물자 운송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보림사 중창기』에서 불상을 봉안하거나 개금한 기록은 10회가 확인된다. 1707년 4월의 신법당 7불을 개금하면서 니금 7량, 첩금 1백 15속이 들어간다. 개금기에는 7불 존상의 명호가 밝혀져 있다. 또한 참여 인물과 개금기간, 금값의 가격과 구입 경로, 금의 구입에 따른 사중 논의의 결정과정도 알 수 있다. 고법당(적광전)의 기록에 비로사나 보처보살 등 삼존불의 내용은 다른 기록에서는 언급이 없던 기록으로 주목된다.
『보림사 중창기』에는 석탑 보수 2건, 조탑 2건 등 탑에 관한 기록이 4회 확인된다. 그리고 탱화 관련 불사 9회, 부도 관련 기록 16회, 범종에 관한 기록 7회가 확인 된다. 특히 1729년 금고와 대종을 개주한 편수 윤취은(尹就殷)이 주목된다. 전라도 장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장계의 윤씨 일파의 활동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그리고 사찰에서 소용되는 다양한 불기에 대한 40여건의 불사 내용도 담고 있다.
조선후기 불교계는 사상적으로는 이교회통론의 제기, 경제적으로는 사원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사역이나 한지를 공납하는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는 등 다양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같은 사정 아래에서도 사찰의 전각을 중창, 중수하는 일이나 사찰을 장엄하기 위한 불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같은 조선 후기 사찰의 불사에 대하여 권역별로 살핀 논고는 있으나 개별 사찰별로 구체적인 불사의 모습을 살펴 보는 것도 불교계의 동향은 물론 향촌 사회사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이같은 관점에서 조선후기 전라도 장흥 보림사의 불사 기록인 『보림사 중창기』의 체제와 내용을 살펴보고 기록 내용을 건조물과 성보로 구분하여 검토해 본 것이 <조선후기 장흥 보림사중창기의 고찰> 논고이다.
앞으로 유사한 자료와의 비교분석을 통한 연구와 관련 인물들을 통한 교류나 전수, 참여인물과 기술 장인에 대한 분석, 후원세력과 향촌사회와의 관계 등에 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