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198 - 1914년 7월 4일 옥천교단(端)의 팔마비 - 문화유산 원형찾기5

향토학인 2020. 2. 4. 18:08

인지의 즐거움198

 

1914년 7월 4일 옥천교단의 팔마비 - 문화유산 원형찾기5

-<시·군지 발간 동향과 과제>, 순천시사편찬위원회 발제·토론 후기-

 

김희태

 

순천에서 시사(市史)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나누던 중 지역 향토지 발간의 현황을 살펴보고 전망과 과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러한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발제자로 나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외우 박병섭선생의 요청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평소 말하던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인데, 어찌 그게 쉬운가. 후회막급이다. 그래도 약속을 ‘덜컥’ 해버린 터라 우선 몇 가지 되돌아보면서 몇 사례를 살펴보고자 용기를 냈다.

 

그간 향토지 조사나 집필자로 직접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의 보금자리 지와몰>(1990)이르난 마을지 이래 읍면동지. 시군지, 전라남도지 등이다. 이따금 향토지 발간과 향토사연구 동향을 살피기도 했다. 「전남지역의 향토사 연구현황」(1993) 등. 그리고 <향토사 이론관 실제>라는 일종의 개론서를 기획한 바도 있다. 경험과 견문은 공유되어야 하고, 거기에 ‘시대정신’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초로 하여 최근 발간 시·군지 사례를 살피면서 100여장(200자 원고지 기준) 적어 보내고 사진 자료 등을 활용하여 PPT로 설명하면서 발제의 소임을 했다.

 

 

 

장소는 순천시사편찬위원회 사무실. 2020년 1월 30일. 목요일 14시. 참여인은 편찬위TF팀이다. 조례상 25인으로 편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데, 상임위원과 위원, 시청 담당관 등으로 TF팀이 구성된 것. 인원이 적다는 미안함 섞인 요청을 들었지만, 오히려 차분하게 토론을 할 수 있기에 더 즐겨하는 방식이다.

 

신근홍(상임위원), 박병섭, 문수현, 김현진, 박혜강, 박소정선생, 강성호(연구원), 발제와 토론에 이어 기획위원회의도 들어 보았다. 순천시청 장여동(문화재활용팀장), 김상현(학예연구사)도 함께 했다. 오랫동안 문화재 업무로 손발을 맞춰왔던 장팀장이 학예사에서 승진한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시·군지 발간 동향과 과제> 발제 토론. 2020.1.30. 순천시사편위사무실(왼쪽부터 신근홍, 박혜강, 문수현, 박소정, 김현진, 김희태, 박병섭, 사진 강성호)

 

우선, 시·군지 발간 동향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전남 지역에서 시·군지 발간은 근래 들어 새로운 체제로 강진(2012, 3책), 화순(2012, 3책), 영광(2013, 5책), 보성(군사, 2015, 4책), 해남(2015, 4책) 군지가 발간되었다. 이어 신안(2017, 4책), 목포(2017, 5책) 시사, 곡성(군사, 2018, 5책) 군지가 간행되었다. ‘대형화’ 추세이다. ‘대형화’는 분량이 늘어나서이기도 하지만, 필진이나 예산, 기간 등도 전문성을 띄어 가는 추세를 대변하는 말이다.

 

타시도 사례를 경기도의 수원시사, 의왕시사, 시흥시사를 대상으로 살펴 보았다. 수원시사의 경우 2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5년이 넘는 사업이었다. 출판 당시에도 몇권은 참여 시민에게 증정하였고 20권 가운데 한권을 차지하는 사진을 전시하는 행사를 겸하여 시민들이 쉽게 다가 설수 있게 하였다.

 

과제는 크게 네가지를 예시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 시사나 군지 편찬사업은 일회성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장기 지속성을 지니고 상설기구화 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정확한 정보를 집대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현재성’도 중요하다는 점, 네 번째는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가면서 추진하자는 것이다.

 

<시·군지 발간 동향과 과제>로 보낸 글의 맺음말 부분이다. 과제는 몇 가지로 나누어 제시했지만, 꼭 구별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준비해간 사진으로 필자가 느낀 바를 말하면서 참여인들과 토론하였다. 우선은 필자가 궁금하게 여긴 점, 다시 생각하다가 찾아 본 점을 말하면서 장면 장면마다 되돌리기를 반복하면서 함께 사진을 ‘읽어’ 내려갔다. 서로가 새로운 인식을 더하게 되었다. 나중에 “집단지성”의 힘이 아닐까 라는 문자도 오갔다. 우선, 그 사례로 팔마비를 들었다.

 

八馬碑. 고려시대의 정사(正史)라 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올라 있는 만큼 순천 역사와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 팔마비의 유리건판 사진이 전해 온다. 그런데 막연히 1910년대의 사진으로만 알려져 왔다. 어떤 데는 1920년대 사진으로 설명하고 있는 곳도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진에 연월일이 표기되어 있다. 1914년 7월 4일.

 

유리건판 사진 윗부분에 글씨가 있어 사진 편집 프로그램(알씨)에서 "이미지반전"을 해보니 글씨가 바로 보였다.(❶) 다시 '90도 시계방향 회전'으로 하니 읽을 수 있었다.(❷) 1914년 7월 4일, 연월일이 확인된 것이다.(❸) 사진역사에 있어 비교적 이른 시기라 할 유린 건판 촬영 사진,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디지털 이미지'로 올려 놓으니 어디서나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웹사이트]

 

 

 

 

 

 

다시 그 '디지털 시대'의 편의성을 응용해 '반전', '회전'을 해보니 뚜럿한 문화정보를 읽을 수 있다. '옛'과 '이제'가 하나인 셈이다. '옛'이 '아나로그'라면 '이제'는 '디지털'이다. 그 '아나로그'와 '디지털'은 따로 일수가 없다는 것이다.

 

발제 중에 여러 사진을 보다가 선교사가 찍었다는 연자루와 옥천교 주변 사진에 석비가 보이는데 어쩌면 팔마비일 것 같다는 논의를 하였다. 그런데 1916~17년 사이 작성된 <전라남도 고적대장> 순천군편에 27개 고적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첫번째가 팔마비이다. 소재지가 순천읍 남문외 옥천교단(順天邑 南門外 玉川橋端)으로 표기되어 있다. 어쩌면 팔마비의 1914년 당시의 원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재의 원형 찾기의 일환이라 할까.

 

 

 

연자루와 옥천교 사진(선교사 촬영) 다리 한켠에 비석이 보인다. 오른쪽 아래 □ 부분. 어쩌면 <전라남도 고적대장>(1916-17년) 순천군편에서 비석 소재지로 표기한 '玉川橋端'일 것도 같다.

 

 

1872년 순천부지도(규장각 소장)의 '팔마비'도 남문 밖 하천 건너 연자교 끝자락에 있다. 연자교는 옥천교. 이 곳이 '옥천교단(玉川橋端)'을 말함이리라.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낸 <유리원판 목록집>Ⅰ-소판 1909~1930-(125쪽)에는 순천 팔마비(140204) 등 유리원판(건판) 사진 연대를 1914년으로 표기하고 있다.

 

 

 

최근 올린 디지털 이미지 사진의 개별 설명문에는 1915년으로 표기하고 있다. 사진에 든 정보만 제대로 읽어내도 이같은 혼란은 줄어들 것이다.(하)

 

어떤 자료이건 읽고 또 읽어내어 그 속에 든 문화정보를 알아내고 활용할 당시의 시대성(현재성)도 반영하여야 한다. 시군지 서술의 기본이 아닐까 한다.

 

앞에서든 과제 네가지, 상설화, 정확한 정보, 현재성, 쉬운 접근. 이 사진 한 장을 읽는 과정에 다 들어 있다.

 

우선은 사진을 다시 보면서 정확한 정보를 읽어 냈다. 그리고 그 정확한 정보로 인해 1914년 당시의 현장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역사현장으로 조선시대에 세운 팔마비의 사진으로 남은 현장으로서의 1914년 당시의 ‘현재성. 이는 다시 <순천시사>를 새로 편찬하려는 현재의 측면에서 정보의 추가 서술 필요. 이것 또한 ‘현재성’이다.

 

‘아나로그’시대 사진이지만 ‘디지털’시대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반전’, ‘회전’으로 정확한 정보를 읽어 냈고 이를 순천시사 편찬의 자료수집 등에 홍보자료로 활용한다면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에 빠져 있는 주민들이 ‘흥미’를 느끼고 오히려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발제와 토론을 한 뒤 더 자료를 찾다 보니, 예전에 저장해 둔 <전라남도고적대장>의 생각이 떠 올랐다. 군별로 되어 있는 1916년~1917년 사이의 일종의 문화유적총람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순천군편은 27개소. 그 첫 번째가 팔마비. 소재지는 옥천교단(玉川橋端). 1914년 사진의 위치를 정확히 말해준다.

 

그런데 순천시사편찬위TF팀에 제공하니 처음 접한다는 분들이 많았다. 이 같은 자료의 수집과 조사 정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편찬위원회는 전문성이 담보된 상설화가 꼭 필요한 일이다. 시사 책자 발간에 한정되는 일회성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975년 발간된 <순천승주향토지>(469쪽)와 1985년의 <승주군사>(1409쪽)가 ‘아나로그’였다면, 1997년의 <순천시사>(3책, 2448쪽)는 ‘아나로그’와 ‘디지털’의 경계 지점쯤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은 따로 일 수 없다. 그 편찬 정신을 이어 ‘디지털’ 시대의 <순천시사>가 편찬되기를 기대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http://www.museum.go.kr/dryplate/main.do)]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http://www.museum.go.kr/modern-history/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