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394 - 여수군수 오횡묵, 여수를 읊다-〈여수잡영〉 106수를 통해 본 1898년 문화 경관-

향토학인 2025. 5. 16. 18:30

인지의 즐거움394
 
 

여수군수 오횡묵 여수를 읊다
-〈여수잡영〉 106수를 통해 본 1898년 문화 경관-

 

김희태

 
 
으레 그렇듯 이거 저거 뒤적이다가 〈여수잡영(麗水雜詠)〉 시를 보게 되었다. 몇가지가 눈에 띄었다. 106절이라 하여 100수가 넘은 일종의 연작시라는 점, 여수군수가 지은 시인데 그 주인공이 초대 군수 오횡묵이라는 점, 시의 제목을 살펴 보니 모두가 여수의 문화경관이자 자연자원, 즉 문화유산과 관광 명소라는 점 등이다.
 
다시 생각하면서 몇가지를 더 얹혔다. 시를 지을 당시의 경관은 어땠고 이를 형상화한 시정(詩情)을 읽을 수 있을까. 서경(敍景)을 연상할 수 있을까. 그 제목으로 올린 개개 자원은 당시의 지역민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고, 그 인식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지금도 여수를 들어서면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을까. 혹여 현장은 없더라고 당시의 감흥을 되살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지역 자료로 책 한권 낼 때가 되지 않았냐 하는 주변의 권유도 뱅뱅거렸다.
 
그런데 이들은 ‘궁금증’이고 ‘바람’이었지, 그 어느 것도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선은 〈여수잡영〉이 ‘시(詩)’라는 점에서이다. 역사 공부를 해 오면서 ‘문화재’를 다루었던 터라 문학적 ‘감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시제나 형상화 된 시어를 통해 역사 현장이나 문화 경관을 읽어 내보려 하고는 있지만, 벽은 높았다. 여러 궁리 끝에 관심 가진 이들이 함께 한다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여수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오횡묵 군수의 정무기록이라 할 『여수총쇄록』의 국역과 해설 자료가 나온다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던 터이지만, 선 뜻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화사업은 행정기관에서 필요성을 인지하고 추켜들어야 하는데,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그마저도 길이 멀다.
 
“《여수총쇄록》 역주본 발간 보급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시작합시다.”
 
“〈여수잡영〉을 대상으로 먼저 풀어 나가 봅시다.”
 
“시는 시대로 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시제로 올라 있는 문화경관의 유래나 변천 등 문화재의 원형과 전승, 그리고 시가나 산천의 변화과정도 넣고 사진이나 지도 등 자료도 모아서 향토학 차원에서도 정리해 봅시다.”
 
“조사비는 우리가 나서면 될 것이고, 출판비는 나중에 생각하고 시작부터 해 봅시다.”
 
마치 ‘결의’라도 하듯 뜻이 모아졌다. 고전문학 한시를 전공한 김준옥 전남대학교 교수, 역사교사로서 지역문화 운동의 중심에 있는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문화재[국가유산]와 향토학을 아우르면서 현장을 넘나드는 김희태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마침 김준옥교수와 김희태는 정년을 앞두고 있던 터라 하나의 기념으로 삼을만 하였다. 여수의 옛과 오늘을 살피는 일이니 김병호 소장도 지역사회연구소가 할 일이라며 반겼다. 뒤에 이같은 소식을 듣고 출판비는 마한문화연구원(원장 조근우)에서 마련하기로 했다.
 
2018년 연말 안에 출판하기로 했다. 일종의 기념주년의 의미도 두었다. 〈여수잡영〉이 1898년경이니 그 2주갑 120년이 되는 시점에 여수의 옛과 오늘을 함께 살펴본다는 의미. 그리고 여수 인문학 진흥의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는 소망도 있었다. 2019년이면 여수에 전라좌수영이 들어선지 540년, 6주갑이 되는 시점인지라.
 
먼저 김준옥교수가 106수의 시를 번역 해설하였다. 김병호소장과 김희태는 시제와 관련된 문화자원의 자료를 모아갔다. 조선후기의 지리지와 읍지, 고지도, 근현대기의 자료와 하다못해 전하는 이야기도 살펴보았다.
 
이같은 분담이 바로 책의 편제에 반영되었다. 106수의 시 별로 국역과 원문, 시문의 해설, 관련 연혁과 변천, 예전 기록이나 지도와 현재의 사진이나 자료. 시 1편당 2쪽을 기준으로, 펼치면 시와 역주, 해설과 변천 자료를 한눈에 볼수 있도록 했다.
 
일부는 4쪽으로 편차하였다. 앞에 해제, 뒤에 색인을 넣고, 원문을 영인해 붙였다. 광주의 심미안(대표 송광룡)에서  《오횡묵의 「여수잡영」, 120년전 여수를 읊다》(300쪽)로 깔끔하게 다듬어 주었다.
 
2018년 12월 27일 출판 보고회를 열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주관하였고 장소는 여수문화원이었다. 너나 없이 반겨 주고 축하했다. 더 많은 인문학 활동이 이어지리라 기대했다. 출판 경과와 향토민속경관(김희태), 시문학적 의의(김준옥), 향토문화적 의미(김병호)를 보고했다.
 
이듬해 경사스런 소식이 전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매년 선정하는 교양부문 세종도서에 선정된 것이다. 500권이 전국 도서관에 돌려 졌다.
 
다소 길게 출판의 경과를 적었다. 고전은 그 자체로만 머무르지 않고, 찾아 알리고 읽혀지고 활용되어야 한다. 의지를 갖고 지혜를 모으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은 조선 후기~대한제국기의 학자이자 행정가이다. 1874년(고종 11) 41세에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섰다. 고성부사, 지도군수, 여수군수 등을 지내면서 시문과 함께 관청에서 중요하게 집행되었던 일과 내외에서 일어났던 중대한 일 등을 일기체로 엮은 『지도총쇄록』, 『고성총쇄록』, 『여수총쇄록』 등을 남겼다. 당대의 정무와 풍습, 사회현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여수군은 1897년 5월 16일 설군 칙령에 따라 6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관할 구역은 순천부 율촌, 여수, 삼일, 소라 4개면이었다. 초대 군수로 오횡묵이 부임하여 1899년 6월까지 재임하였다. 오횡묵이 정리한 『여수군총쇄록』은 일상생활과 지방 행정 전반에 걸친 기록과 관찰을 남기고 있다. 정무는 물론 지리, 물산, 풍습, 인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여수잡영(麗水雜詠 一百六截)〉은 여수의 각종 자연자원과 문화경관지에 대해서 읊은 106수의 연작시이다. 여수 지역의 관아, 향교, 누대, 재당, 정각, 정려, 비각, 사단, 사찰, 진보, 역참, 점, 봉수, 산천, 도서, 나루, 천지, 기암, 염전, 제언, 어기 따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시제 다음에 위치와 현상, 지명의 유래 등에 대해 세주로 보완 설명하고 있어 120년전 의 지명 유래, 명칭 변경 등 문화정보를 제공해 준다.
 
예를 들면, “경명문은 내삼문이다. 군명이 여수임으로 이 문을 출입하는 사람은 마음을 거울같이 밝게 하라는 뜻을 취했다.(鏡明門 內三門 以郡名麗水 而取出入此門者 持心如鏡之明云)”, “장군도는 일명 참경도이다. 남해 길목으로 옛날 이장군이 해적을 염려하여 돌을 쌓아 장군도가 되었다. 읍의 패인사로 삼았고 화살대가 난다.(將軍島 一名 斬鯨島 南海口 古有李將軍患海寇 築石爲島 於邑爲佩印砂 産箭竹)” 등이다.
 
시문학적인 면에서 보면, 120년 전의 여수 모습을 사실대로 고스란히 살필 수 있고, 당시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애틋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충효사상 고취, 민중계도, 비판적 풍자를 목적으로 하는 작품,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태도를 취하는 작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진남관의 정문인 〈진남문〉 시의 경우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삼도수군통제사영 본부인 전라좌수영성의 모습을 시로 그린 것이다. 감성은 담지 않고 경물적 태도가 드러나 있다.
 
수많은 화살 시위 어느 해에 진(陣)이 됐나  萬弩何年跡巳陣(만노하연적이진)
좌수영을 오늘에야 새로이 돌아 봤네   鎭南今日運回新(진남금일운회신)
천혜의 굴강 해자(垓字), 성 주변은 굳건하고  天將絶塹邊城固(천장절참변성고)
물 있고 바람 없어 중요한 해변 요새라네  積水無風要路濱(적수무풍요로빈)
 
〈여수잡영〉의 시제를 6개 분류, 31개 종별로 나누어 보았다. 먼저 관아는 당헌, 문루, 누대 등인데 그 위치나 규모는 여러 문헌을 통하여 상세히 알 수 있다. 관아 중 〈북장대〉 외에는 전라좌수영성 안에 있는 건물들로서 좌수영성을 복원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으며, 건물의 명칭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숙당〉, 〈내아〉, 〈여수 정당〉, 〈읍청헌〉, 〈종명각〉, 〈진남관〉, 〈찰미헌〉, 〈수죽당〉, 〈경명문〉, 〈영화문〉, 〈진남문〉, 〈총인문〉, 〈통의문〉 등이다.
 
유교와 관련된 시는 13수이다. 〈향교〉는 여수 유림의 한이 있어 설군과 동시에 주민들이 향교의 설립을 추진한다. 그 이전에는 〈종명재〉, 〈봉명재〉, 〈방해재〉 등 서당을 세워 꾸준히 인재를 양성했다. 전라좌수영 지역이라 무예 연마 정각이 많았지만 〈농구정〉, 〈만하정〉, 〈복파정〉은 분위기가 오히려 평화 지향적이다. ‘거북선과 놀다(弄龜).’라던가 ‘파도를 재운다(伏波)’ 라는 시제가 그렇다. 단묘는 〈둑당〉과 〈사직단〉, 〈성황단〉, 〈여제단〉이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군대와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사단으로 〈차문절공묘〉, 〈충무공영당〉, 〈충민사 옛터〉가 있다.
 
〈여수잡영〉의 시제 분류

분류 종별 제영
관아(官衙) 당헌 간숙당(簡肅堂), 내아(內衙), 여수 정당(政堂), 읍청헌(挹淸軒), 종명각(鍾鳴閣), 진남관(鎭南館), 찰미헌(察眉軒), 수죽당(水竹堂)
문루 경명문(鏡明門), 영화문(迎和門), 진남문(鎭南門), 총인문(摠仁門), 통의문(統義門)
누대(樓臺) 개문루(開門樓), 망해루(望海樓), 북장대(北將臺), 고소대(姑蘇臺), 주홀루(拄笏樓)
유교(儒敎) 향교(鄕校) 명륜당(明倫堂) 향교(鄕校)
재당(齋堂) 방해재(放海齋), 종명재(鍾鳴齋), 향사당(鄕射堂), 회유소(會儒所), 봉명재(鳳鳴齋)
정각(亭閣) 관덕정(觀德亭), 농구정(弄龜亭), 만하정(挽河亭), 복파정(伏波亭), 연무각(鍊武閣), 연처초연각(燕處超然閣)
정려(旌閭) 강씨김씨 효자정려(姜金兩孝旌閣), 충효열정각(忠孝烈旌閣)
단묘(壇廟) 제당(祭堂) 둑당(纛堂), 사직단(社禝壇), 성황단(城隍壇), 여제단(厲祭壇)
사단(祠壇) 차문절공묘(車文節公廟), 충무공 영당(忠武公影堂), 충민사 옛터(忠愍祠舊址)
불교(佛敎) 사암(寺庵) 석천사(石泉寺), 안심사 옛터(安心寺古基), 용문암(龍門庵), 한산사(寒山寺), 흥국사(興國寺)
부도(浮屠) 보조국사부도(普照國師浮屠)
석등(石燈) 장명등(長明燈),
전각(殿閣) 봉황루(鳳凰樓),
석조(石造) 석인(石人) 석인(石人)
석교(石橋) 연등석강[돌다리](蓮登石矼), 홍교(虹橋)
화대(火臺) 화대(火臺)
비각(碑閣) 유애비(遺愛碑), 충무공비각(忠武公碑閣)
시설(施設) 진보(鎭堡) 고돌산진(古突山鎭), 만리성(萬里城), 석보들판(石堡坪), 석창(石倉), 성첩(城堞), 참경도고성(斬鯨渡古城)
역참(驛站) 덕양역(德陽驛)
봉수(烽燧) 우산봉수(牛山烽燧)
목장(牧場) 어목문(禦牧門)
고분(古墓) 우배산 고분(牛背山古墓)
자연(自然) 산천(山川) 귀봉산(歸鳳山), 까치산(鵲山), 마래산(馬來山), 무선산(舞仙山), 부산(夫山), 부흥천(富興川), 비장산(飛將山), 앵무산(鸜武山), 영취산(靈鷲山), 산천(山川)예암산(隸巖山), 운곡(雲谷), 응봉(鷹峰), 전봉산(戰鳳山), 종명산(鍾鳴山), 척산(尺山), 취적산(吹笛山)
도서(島嶼) 오동도(梧桐島), 장군도(將軍島), 참경도바다(斬鯨島海)
나루(津浦) 당머리나루(堂頭津), 미두진(米頭津), 종포(宗浦)
천지(泉池) 석천(石泉), 주홀루 연못(拄笏樓方池), 유목천(柳木泉)
기암(奇巖) 쌍교암(雙轎巖), 여기암(女妓巖), 역의암(昜衣巖), 이별암(離別巖), 장군암(將軍巖), 짐대 동굴바위(金帶洞窟巖)
숲(藪) 장대 숲(將臺藪)
산업(産業 염전(鹽田) 염산(塩山), 중방 염전(中方塩田)
제언(堤堰) 가멍해언[걸망해제](巨望海堰), 달한포제언(達汗浦堤堰)
어기(漁磯) 국포[국개] 낚시터(菊浦漁磯)
장시(場市) 나지포 장시(羅支浦場市)
대장간(水鐵店) 대포 수철점[대장간](大浦水鐵店)
지소(紙所) 만흥지소(萬興紙所)
어살(土箭) 성원 토전[어살](星院土箭)
물레방아(水砧) 미평 수침[물레방아](米坪水砧)

 
불교 관련 시는 8수로 군내 절을 돌아보고 시를 남겼다. 특히 흥국사 〈보조국사부도〉의 가치를 알아보고 옥부도(玉浮屠)로 표현했다.
 
석조물에 대한 시는 6수로 역대 수사들의 〈유애비〉, 〈화대〉, 〈충무공대첩비〉, 〈석인〉, 〈연등돌다리〉 등이다. 시설에 관한 시는 10수로 군사 시설인 영(營)-〈성첩〉, 진(鎭)-〈고돌산진〉, 보(堡)-〈석창〉을 시제로 삼고 있다. 〈참경도고성〉은 장군도에 있는 고성(古城)으로 유일의 수중성이다. 역참과 봉수, 목장은 군사, 교통, 행정의 중요한 제도로 〈덕양역〉, 〈우산봉수〉, 〈어목문〉 등을 읊었다.
 
자연은 33수로 가장 많다. 산천과 섬, 나루, 샘, 기암, 숲 등이다. 지명은 지금과 거의 같거나 비슷하다. 〈미두진〉의 위치는 추정하기 어렵다. 〈장대숲(將臺藪)〉은 ‘솔밭거리’, ‘수동(樹洞)’라고 불리던 곳이다. 〈여기암〉 등 기암(奇巖)을 노래한 6수는 지금도 전설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시와 어우러지면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겠다.
 
산업은 염전, 제언, 어기, 장시, 대장간, 지소, 어살, 물레방아 등이다. 장타령이 전하고 있어 〈나지포장시〉의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처음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영 객사이던 진남관은 국보로 남아 있다. 망해루는 복원을 했고 고소대의 충무공비각에는 좌수영대첩비(보물)가 있다. 향교 명륜당은 지금도 윤리를 밝히고 있고, 삼도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모신 최초 사우 충민사는 〈여수잡영〉에서는 옛터[舊址]였지만, 복설되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흥국사에는 지정된 국가유산이 즐비하고 영취산 흥국사 일원은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석인은 진남관으로 옮겨져 전남 유형문화유산, 석창은 여수석보 명칭으로 국가 사적이 되었다.
 
〈여수잡영(麗水雜詠[一百六截])〉은 초대 여수군수 오횡묵이 남긴 연작 절구시이다. 형상화된 문학작품이지만, 경물과 현장과 사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여수군 시절이지만, 그 공간 자체가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사영의 역사성을 지닌 곳이다. 역사현장과 문화유산, 자연자원의 공간과 시간, 인간을 연계하고 오늘에 되살려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활용되리라 기대한다.

 

*출전 :  <고전사계>  2025년 봄호(통권 57)(고전기행),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사계 57, 2025년 봄호, 한국고전번역원

 

진남관과 동헌 운주헌 전경(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사진), 운주헌 고지도(전라좌수영지도/『호좌수영지』, 규장각 고9920-3, 1847년)
-진남관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동헌 간숙당은 남아 있지 않다. 원래 운주헌(運籌軒)이라 했는데, 오횡묵군수가 ‘일은 간편(簡)하게 처리하고 일하는 사람은 엄숙(肅)하게 일을 봐주어야 한다’는 뜻에서 간숙당(簡肅堂)이라 명명했다고 시제 다음에 적고 있다. 2018년 발굴조사에서 동헌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유애비〉- 오횡묵군수는 "선인들의 업적을 여기서 보면서 심신을 돌아보며 내 눈을 밝히네[前人偉蹟見於斯 自顧身心明是眼]”라 하였다. 역대 수군절도사 등의 유애비(송덕비)는 충무동 245번지 부근 ‘빗집거리’에 있었으나 소방도로 공사로 진남관 동쪽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진남관 바로 밖 서쪽에 있다. <전라좌수영> 지도에는 충무공비각과 함께 비각이 5개소가 보인다.

《오횡묵의 「여수잡영」, 120년전 여수를 읊다》 (심미안, 2019) - 2018년에 냈는데 <세종도서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2019년에 재판본을 내면서 표지에 <2019 세종도서> 표시가 들어갔다. 세종도서는 매년 교양부문 550종, 학술부문 400종을 선정하는데, 2019년에는 광주 전남 지역에서 2종이 선정되었다. 1종은 학술부문임으로 이 책은 유일한 교양부문 세종도서에 든 셈이다. 일종의 부상(800만원)으로 500권을 구입해 전국 도서관 등에 무료로 배부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