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즐거움055
장흥 한방 특구의 역사적 배경
김희태
“장흥 한방(韓方) 특구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2006년 <정남진 장흥 생약초․한방 특구> 지정과 2009년 10월 16일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생약초․한우 특구> 확대 지정>, 2010년 10월 29일~11월 7일 열리는 <2010 통합의학박람회를 계기로 장흥문화관광해설협회(회장 김상찬)가 장흥군과 협의하여 마련한 ‘한방해설사’ 양성 교육과정의 하나였다. 교육기간은 2010년 10월 11일~10월 19일.
처음 강의 요청을 받았을 때는,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반 강제적(?)인 통보였던 터라 ‘준비 하련다’고 말을 했지만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역사’, ‘향토사’, ‘지역문화’, ‘문화유산’ 등에 대한 주제는 어느 경우든 꿰맞춰 왔는데, ‘한방(韓方)’과 ‘특구(特區)’로 하려니 난감해 졌다. 그래도 ‘장흥’과 ‘역사배경’이 주제에 포함되어 있으니, 물러설 수도 없고 하여, 예의 ‘기록 찾기’를 하고 정리해 글을 써 보았다. 그리고 사진과 자료들을 찾아 발표자료[프리젠테이션]를 만들어 강의를 하게 되었다.(김희태, “장흥 한방특구의 역사적 배경”, <한방해설사 양성교육>[강의교재], 장흥군․장흥문화관광해설협회, 2010.(2010.10.16, 장흥 청소년수련관), 149쪽~178쪽)
자료를 정리하면서 고향 장흥에 대한 또 다른 많은 기록을 찾을 수 있었고, 재해석을 통하여 의미부여를 해 보기도 하였다. 또한 ‘생약초’, ‘한방’, ‘한우’ 특구 제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장흥과의 연관성도 찾아 보려 하였다. 이런 과정에 느낀 아쉬움은 그야말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너무 검토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여 강의자료를 보완해 발표를 하게 되었고(김희태, “장흥 한방특구의 역사적 배경”, 장흥 향토사회 발표, 2010.11.06(토), 장흥청소년수련관), 앞으로도 조사를 진행하려 한다. 강의와 발표를 한 “장흥 한방 특구의 역사적 배경”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장흥 지역은 구석기유적부터 확인된다. 이 선사시대에는 많은 유물들이 있고 특히 토기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밥, 죽, 물, 술은 물론이고 차와 약에 이르기까지 용도가 다양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백제시대에 1품 좌평 벼슬의 흥수가 장흥의 고미지현으로 유배를 온다. 그리고 백제에서 의약을 다루는 기구는 약부가 있는데, 지역과는 관련이 있는지 자료 찾기가 계속되어져야 한다. 황칠도 지리적으로 연관이 있어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859년 여름에 보조선사에게 왕이 차와 약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보림사 보조선사탑비에서 확인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공예태후 임씨가 인종 왕비가 되면서 장흥부로 승격되면서 인근 고을을 현령관으로 거느린다. 이 무렵에 탐진현과 연고가 있는 최사전이 내의를 지내고 공신이 되기도 한다. 강진 월남사의 진각국사비에는 문하시중 최우와 고종이 수선사주 진각 혜심에게 다향(茶香)과 약품(藥品)을 보내거나 하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1240년에는 천관산 승려가 백련사 사주 정명국사 천인(1205∼1248)에게 척촉[躑躅, 철쭉]의 주장(柱杖)을 선사한다. 오래된 철쭉나무가 천관산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약재조항에 철쭉꽃이 있음도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말기에는 왜구로 인해 내천을 하였다가 1392년 현재의 장흥읍 자리로 다시 돌아 오면서 장흥부가 된다. 1430년 계수관이 되어 12개 군현을 관장하고, 벽사역은 장흥, 보성, 강진, 해남, 낙안, 고흥 등 10개 역을 관할하는 남해안 중심부로 기능한다. 남해안의 중심고을은 당연히 사람과 물산의 이동교류의 집산지가 되었을 것이다.
1454년의 <세종실록 지리지> 장흥조에는 10종의 약재가 기록되어 있다. 장흥의 가장 오래된 토산 약재 기록이다. 이와 함께 토의가 6종, 토공이 20종, 토산 3종 등 39종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550년이 된 장흥 토종 약재 10종에 대해서는 계승방안을 연구해야 하리라 여겨진다. 아울러 전라도 전체 지역의 기록에는 부세(賦稅) 9종, 공물(貢物) 137 종, 약재(藥材) 170종, 심는 약[種藥] 8종 등 324종이 보이는데 기본적으로 지역의 산물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장흥 지역에서도 이들 자원에 대한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하나 특기할 사항은, 최고의 약재로 치는 매향(埋香)을 기록한 용산면 덕암리 삼십포(침향포)의 1435년 암각문이다. 1470년 <조선왕조실록> 기록에는 장흥 내덕도의 소(牛) 목장에 대한 내용이 있다. 546년전이다. 인근 지역 기록을 보면 모두 말(馬) 목장인데, 장흥 만은 유독 소 목장인 것이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생약초․한우 특구>의 역사성을 증명해 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1478년 여름, 전라도 관찰사 김종직은 장흥을 찾아 그림 같은 풍광을 시로 읊는데 예양강가의 ‘흰 마름꽃’이 보인다. 그리고 추강 남효온은 1491년께 장흥에 우거하면서 장흥우음(偶吟) 21수를 남기는데 그 가운데 ‘포성주(浦城酒)’와 ‘쏘가리’가 보인다. 임란 공신으로 난중일기를 남긴 반곡 정경달은 봉명정 제영에서 ‘지초’와 ‘고사리’를 형상화 한다. 모두가 장흥의 산물이다.
1722년 천관산을 탐승한 담헌 이하곤의 <남행록>에는 천년되는 자단목이 있다는 기록도 있다. 1791년, 존재 위백규선생은 선비 일행 열두명과 사자산 등산을 하고 사자산동류기(獅子山同遊記)를 남긴다. 먹거리는 삼해주(三亥酒)와 구운 굴비, 청태(靑苔)에 백반이었다. 장흥 선비들의 삼해주, 그 역사성을 말해 준다.
장흥 선인들의 문집에 나타난 ‘약(藥)’ 관련 제영은 반곡 정경달, 청금 위정훈, 방호 김희조의 문집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약’ 관련하여 주목되는 기록이 은암 김몽룡(1708~1788)의 문집에 기록된 ‘벽사 방축내약국(碧沙防築內藥局)’과 ‘벽사 약방 주인어른 김경우(碧沙藥房主翁金慶瑀)’이다. 의약인은 전통적으로 신분이 달랐기 때문에 교류관계가 달라 문인들의 문집에서 확인된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깊다. 벽사역 부근인 장흥읍 축내리에 있던 약국과 그 주인 김경우, 조선시대 의약인으로서 구체적 장소와 인명이 확인된 것은 분명 중요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장흥 선인들의 문집에 나타난 ‘차(茶)’ 관련 제영은 고려시대 인물로 수령 고현 지역 출신인 원감국사 충지의 ‘금장 대선이 새 차를 보내 주어(謝金藏大禪惠新茶)’와 ‘최이가 다향을 보낸 것을(謝崔怡送茶香韻)’ , 2수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임진왜란기에 활동한 풍암 문위세(楓菴 文緯世, 1534~1600)의 문집에서 ‘다부(茶賦)’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기록은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 보다 200여년 앞서는 기록으로 동다부(東茶賦)라 할 수 있다. 장흥지역에서 전래되고 있는 청태전[떡차, 돈차]에 대해서 기록 찾기도 필요하다. 초의선사의 ‘동다송’ 가운데 ‘만금을 다 들여 백덩어리 떡차를 만들었나니[費盡萬金成百餠]라는 기록도 참고가 된다.
이어 기록상 확인되는 명의(名醫)들에 대해서도 살펴 보았다. 백제시대의 억인(億仁), 고려시대 탐진현 최사전, 조선시대의 허준과 허임 등이다. 현재의 장흥과 직접 연고가 있진 않지만, 이들의 교류관계를 살펴 보면서 장흥과 연고를 찾아 보는 일도 연구과제의 하나라고 본다. 그리고 전라도 군현의 산물 가운데 하나인 ‘울금’의 기록을 찾아 보면서 이를 해석하는 방안도 제시해 보았다. 일종의 스토리 텔링이라 하겠다.
이상에서 정리 한 것은, ‘정남진 장흥 생약초․한방특구’ 지정과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생약초․한우특구’ 확대 변경 지정관련 신청서류에도 다양한 기록과 자료, 분석이 뒤따르고 있지만, 시기별로 세밀한 검토는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살펴본 것이다. 고려시대 천관산의 ‘척촉(철쭉)‘이나 조선시대 ’매향암각’, 천관산의 ‘천년된 자단목’ 등은 생약초의 생태환경과 연계되어 함께 정리한 것이다. 초목(草木)이 따로 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선인들의 기문이나 기행기, 제영에 나타난 생약초 관련 기록도 찾아서 재해석하고 연구 개발해야 한다. 앞에서 본 예양강가의 흰 마름꽃․포성주․쏘가리, 봉명정의 지초와 고사리, 사자산의 삼해주가 그렇듯이...
생약초와 한방, 한우 등은 산업의 측면도 있지만, 생활사와 관련되기 때문에 뚜렷이 드러나는 역사 기록이나 유적, 유물 등 현장 자료는 많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부분적인 기록을 찾아서 이를 재해석하는 형식으로 정리를 하였지만, 미흡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과 현장 찾기는 계속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찾기’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가꾸고 알리기, 즉 연구 개발과 활용, 홍보 안내를 함께 하여야 한다, 생약초․한우 특구 관계기관이나 단체, 주민이나 해설사, 향토사가, 문화애호가 들이 ‘불이(不二)’인 이유이다.
* 출전
김희태, 장흥한방특구의 역사적 배경, <장흥문화> 제34호, 장흥문화원, 2012. 138~142쪽. 2010년 두 차례의 강의와 발표문을 보완하여 <장흥문화> 제34호(96~148쪽)에 실었고, 위 글은 맺음말 부분에 해당한다.
* <장흥신문> 제727호(2018.8.18일자 6면)에 특별기고-장흥 한방특구의 역사적 배경-으로 실렸다.
구산선문 가지산 보림사의 보조선사탑비(국가 보물 제158호, 884년 세움)에는 당시 국왕이 보조선사(804~880)에게 차(茶)와 약을 하사(859년, 헌안왕 3년 여름)한 기록이 보인다. 이같은 연고로 보조선사가 보림사에 오게 되는데, 차에 대한 현장 유물로서 가장 오랜 기록이며, 약을 국왕이 내려 보냈다는 기록이 장흥에 있다는 것도 "장흥 한방특구"와 관련 오랜 역사성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위 : 보조선사탑비와 보림사 전경 사진
아래 : "왕명으로 장사현(長沙縣) 부수(副守) 김언경(金彦卿)을 파견하여 차와 약을 보내고 맞이하게 하였다.(敎遣 長沙縣副守 金彦卿 賷茶藥迎之)"는 비문의 탁영문(동국대소장본)과 원문 사진
장흥 용산면 덕암리에 있는 매향명(埋香銘) 암각문(巖刻文) 조사(탁본). 이 일대는 삼십포(三十浦)로 불리는 포구로서 침향포(沈香浦)로도 부른다는 구전(설화)과 <장흥군향토지>(1976), <장흥읍지> 기록을 통해 1984년 8월 김희태가 처음 확인 하였고 그해 11월 4일에 이해준교수(목포대 사학과)가 조선시대 초기 1435년(세종 17) 매향 암각문임을 고증하였다. 이어 목포대 조사팀이 탁본 조사를 실시한다. 왼쪽(향좌) 김희태, 오른쪽 흰 상의 김삼기(현 문화재청 과장, 학예관). 발견경위와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준, 「전남지방의 새로운 매향 자료들」-장흥 매향비 발견을 통해 본-, 『장흥문화』 7호, 장흥문화원, 1985, 44쪽~56쪽 참조.
매향(埋香)이란 향나무[香木]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역에 오래 묻었다가 최고급 약재나 궁중이나 불교 의식용들로 썼으며, 그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한 것이 매향비(또는 암각)이다. 민간불교 신앙의례로서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1487년(성종 18) 여름무렵 장흥부를 순찰차 온 전라도 관찰사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은 장흥의 청정한 자연과 며느리 바위에 솟아 오르는 아침 해, 흰 마름꽃이 핀 예양강 등 천혜의 자연과 토산을 노래한다. “호남의 이 절도사[계동]가 관산 동정에 대한 네 수의 시를 부쳐 보여 주면서 화답하기를 요청하다(湖南李節度使 季仝 寄示冠山東亭四詩要和)”라는 제목의 24구 오언율시인데 그 일부이다. 마름(Trapa japonica)은 1년생초로 꽃은 흰색이며 7~8월에 물 위에 나와 있는 잎의 잎겨드랑이에 한송이씩 핀다. 마름의 열매를 물에서 나는 밤이라고 하여 '물밤'이라고 부르는데, 녹말과 지방이 많이 들어 있다. (오른쪽면[위] 일곱째줄과 여덟째줄이 이 시의 제목이다. 아홉째줄에 山川, 花月, 왼쪽면[아래] 둘째줄에 婦巖과 汭水 白蘋이 보인다.)
산과 냇물은 한없이 좋거니와/山川無限好
꽃과 달은 누구를 위해 고운고/花月爲誰姸
부암엔 아침 해가 비스듬히 비추고/婦巖紅日側
예양강엔 흰 마름꽃이 피었도다/汭水白蘋開
김종직의 문인이기도 한 추강 남효온(秋江 南孝溫, 1454~1492)은 생애 말년, 38세 되던 1491년 봄에 장흥을 찾는다. 가을까지 대략 5~6개월간 장흥 객사 별관에 기거하면서 지역 인사들과 교류한다. 특히, 장흥 우음(長興 偶吟) 21수 를 남기는데 그 가운데 18번째 수에 포성주(蒲城酒)와 쏘가리가 보인다. 팔월 한 여름이다. 포성주가 특산물을 재료로 한 술 이름인지 검토가 필요하지만, 그 특산 재료가 ‘蒲’와 연관하여 민들레(蒲公英, 蒲公丁)로도 볼 수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와 꽃피기 전의 전초(全草)를 포공영(蒲公英)이라 하며 해열·소염·이뇨·건위의 효능이 있다고 하여 약용으로 쓰이는 민들레, 우리 선조들은 이미 525년전 "약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팔월이라 드센 바람에 누른잎 날리고/八月風高黃葉飛
배 띄운 어부는 베옷을 동여매네/立船漁父裹布衣
아이 불러다 포성주 따르라 이르고/呼童命酌蒲城酒
식은재 저어보니 살찐 쏘가리 두마리/手撥寒灰雙鱖肥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성종실록>의 목장 기록(1570년). 당시 전국이 목장을 점검하는 내용인데, 전라도는 8개소(영광 진하산, 고이도, 강진 신지도, 흥양 도양곶이, 절이도, 장흥 내덕도, 해남 황원곶이, 진도 지력산) 목장이 언급되고 있다. 모두 말(馬)인데 장흥 내덕도(來德島) 목장만 소(牛) 188두를 방목했다고 기록(두번째 기록 일곱째줄 중간부분)하고 있어 "장흥지역"과 "소(牛)"의 오랜 역사성을 알 수 있다.
<장흥신문> 제727호 2016년 8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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